아이에스동서(주)가 이기대 경관을 가리는 고층 아파트 건설 사업을 전격 철회했다. ‘경관은 공공의 자산’이라는 시민 의식이 발동돼 경관을 지켜낸 부산 첫 사례다. 경관 자원이 공공재라는 인식이 커지지만 이를 지킬 제도적 장치는 아직 충분치 않다. 부산 해안가에 ‘아파트 병풍’이 쳐진 이유다. 이번 ‘이기대 아파트 사태’는 부산 경관을 지켜내기 위한 논의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부산은 공공 자산인 경관에 무심한 도시였다. ‘바다 조망’을 프리미엄으로 치는 시대는 부산 해안가를 아파트 병풍으로 뒤덮는 난맥상을 낳았다. 그동안 지자체들은 “법적 문제가 없다면 못 막는다”는 핑계 뒤에 숨어 있었다.
올 2월 이기대를 가리는 아이에스동서 아파트 건설 사업이 부산시 심의에서 통과된 후 심의 참석자들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면 심의를 통과시켜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경관을 무시해 온 부산 건축 행정 현주소다.
현행 부산 지자체 심의에서는 경관 보존 의지 내지는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기대 아파트 심의 때도 건물 유리 색상, 야간 조명 정도만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단적인 사례로 부산시 도시계획과의 경관 훼손에 대한 검토 의견은 깡그리 무시됐다.
당시 해당 부서는 ‘수변 친수공간 전환을 위한 다양한 계획들이 진행 중임을 감안해 주변 경관 훼손이 없도록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사업자와 남구청은 ‘동산교 도로 확폭을 통해 분포로와 차량의 동선이 연계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음’이라고 동문서답을 했다.
부산시와 부산 남구청 등에는 경관 심의 관련 조례가 있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정부와 부산 각 지자체도 경관 자원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실질적인 보존 의지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부산시가 수립한 ‘부산광역시 경관계획 재정비’ 보고서에 따르면 이기대, 오륙도, 동백섬, 태종대, 가덕도, 몰운대, 청사포 등 7곳이 수변 끝단 해안 경관 자원으로 지정됐다. 시는 “유무형 자원과 연계돼 경관적으로 우수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관광자원으로서 잠재적 가치가 큰 자원”이라고 정의했다. 현행 경관법에도 경관은 자연, 인공 요소와 주민 생활상 등으로 이뤄진 일단의 지역 환경적 특징으로 규정한다. 실제 행정에서 이런 정책 방향은 단순히 구호에 그쳤다.
하지만 시민 인식은 달랐다. 시민들은 부산이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어느덧 금정산 백양산 등 진산들을 아파트들이 에워쌌고, 달맞이언덕 해운대 광안리를 따라 아파트들이 진을 친 모습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이런 시도가 이기대에 가 닿자 시민들도 참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시민들은 지난 6월 7일 ‘이기대 고층 아파트 심의, 업자 편만 들다 끝났다’는 본보 기사가 나간 후 질타를 쏟아냈다. 해당 기사에는 ‘진짜 아까운 자리를 또 아파트에 내줬다’ ‘또 하나의 휴식 공간, 아름다운 풍광이 사라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20세 이상 일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관이 공공재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95.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행정기관이 법 타령을 하며 민간 건설사 이익에 더 신경을 쏟는 동안, 시민들 사이에는 경관이 공공재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고, 경관 훼손 시도에 적극 저항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게 됐다. 경성대 도시계획학과 강동진 교수는 "부산 305km 해안선은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부산의 엄청난 경쟁력인 만큼 이를 사익에 넘겨줘서는 안 되며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일은 부산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산 경관을 지켜나가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시스템 구축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