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최대 노조를 이끄는 최승호 노조위원장을 둘러싼 이른바 ‘호화 투쟁’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회사의 미래 경쟁력과 대내외 불확실성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수십조 원 규모의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며 ‘노동자 권리’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국민은 물론 조합원 눈높이와도 괴리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명분도 공감도 잃은 지도부의 행태가 파업 정당성까지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2년간 7차례 해외여행…절반 이상 비즈니스석
‘호화 투쟁’ 논란은 최 위원장이 지난달 23일 평택에서 열린 파업 결의대회 직후 태국으로 휴가를 떠난 사실이 알려지며 본격화됐다. 특히 휴가지에서 파업 불참자를 겨냥한 강경 메시지를 내놓은 사실까지 전해지며 내부 반발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최 위원장은 2024년부터 올해 4월까지 약 2년 동안 태국·베트남 등 6개국을 7차례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이 직접 SNS에 여행 사진을 게시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노조가 총파업 명분으로 ‘생존권’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 대표가 비즈니스석을 타고 동남아 휴양지를 오간 행보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 주주 수만 461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노조 지도부가 기업 가치와 국가 산업에 미칠 파장을 외면한 채 개인 행보에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쟁의 명분은 결국 리더의 솔선수범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비즈니스석을 타고 해외를 오가며 SNS에 여행 사진을 올리는 모습은 위원장 리더십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산업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서 개인 휴가를 우선하는 모습으로는 사회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논란의 핵심은 최 위원장이 회사와의 협상 국면에서 장기간 휴가를 떠난 동시에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그는 태국 체류 중 노조 홈페이지에 “다가올 총파업에서 끝내 사측 편에 서서 동료들의 헌신을 방해한다면 더 이상 동료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며 파업 불참자를 강하게 압박해 논란을 빚었다.
이를 두고 사내 안팎에서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동료가 아니라며 압박하면서 정작 본인은 해외 휴양지에서 휴식을 즐기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견제 없는 구조”…노조 내부서도 우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호화 투쟁’ 논란 배경에 삼성전자 초기업노조의 기형적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초기업노조는 약 7만6000명 규모의 국내 최대 단일 노조지만, 2023년 출범 이후 현재까지 대의원 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통상 수천 명 규모 노조도 집행부 견제를 위해 대의원 체계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사실상 위원장 중심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노조 내부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전삼노에 따르면 한 노조 간부는 “지금 최 위원장은 DS 부문에서 사실상 교주처럼 보호받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현실적으로 견제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불거진 직원 ‘블랙리스트’ 논란 역시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월 31일 특정 부서 사내 메신저방에서 직원들의 부서명·성명·사번·노조 가입 여부 등이 담긴 명단 파일이 공유된 사실이 확인됐고, 회사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가능성을 이유로 경찰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파업 불참자를 가려내 압박하려는 시도 자체가 내부 견제 장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가 열리는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노조의 집회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결의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기부 취소 릴레이까지…도덕성 논란 확산
노조 지도부를 둘러싼 논란은 최근 조합원들의 ‘기부 약정 취소’ 움직임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직원 수백 명은 최근 희귀질환 아동 등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사내 기부 약정을 잇달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의 매칭그랜트 제도는 임직원 기부금만큼 회사가 동일 금액을 추가 지원하는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이 “회사가 매칭하는 비용이 아깝다”는 취지의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린 뒤 비슷한 취소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며 논란이 커졌다.
재계 관계자는 “수억 원대 성과급 요구는 당연한 권리처럼 주장하면서 정작 어려운 이웃을 위한 소액 기부는 회사 돈이 아깝다며 단체 취소에 나서는 모습은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학계·주주도 반발…“정당성 확보 어려워”
학계에서도 노조 요구의 정당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지난 6일 열린 사단법인 이해관계자경영학회 세미나에서 노조의 ‘영업이익 15% 성과급 정률 배분’ 요구에 대해 “주주의 잔여청구권을 침해하는 사실상 선배당 개념”이라며 “노조의 준주주화 시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어 “주주의 잔여청구권 이론, 대리인 이론, 계약 이론, 공정성 이론 등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삼성전자 주주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총파업으로 회사를 흔드는 것은 결국 기업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자해 행위와 다름없다”며 “노조 역시 책임 있는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