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의 균형잡기는 인생에도 통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발레의 균형잡기는 인생에도 통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발레의 균형잡기는 인생에도 통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발레의 균형잡기는 인생에도 통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발레의 균형잡기는 인생에도 통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요즘 젊은 세대가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워라밸’을 따지면, 기자라는 직업은 최악에 속한다. 공휴일은 물론이고 한밤중에 생기는 사건 사고도 챙겨야 한다. 동창회 날짜를 정할 때면 기자 직업을 가진 친구는 자주 밉상이 된다. 이번에는 꼭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생긴 사건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가는 경우가 생긴다.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수업이 있는 취미반 역시 대다수 기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등록해놓고 몇 번 가지 못하고 돈만 날리는 경험을 한 번 하면 그 후론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20여 년 넘는 기자 생활동안 정신없이 살았을 것이다. 빌 게이츠와 미국 최초 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자크 로게 IOC위원장을 단독 인터뷰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긴박했던 정상회담 현장을 취재했다니, 얼마나 바쁘게 살았을지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래도록 취미로 발레를 배워 그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책 표지 제목 아래에는 ‘발레를 배우며 발견한 삶의 균형 감각’이라는 작은 문구가 있다. 이 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사실 저자가 발레에서 어떤 삶의 지혜를 배웠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나게 바쁘게 사는 기자가 어떻게 꾸준히 취미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아쉽게도 어떻게 기자가 정기적으로 발레 강습에 갈 여유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 책에 언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 전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발레에 대한 저자의 지극한 애정을 느끼다보니, 발레라는 취미가 저자의 바쁘고 힘든 일상을 버티게 해 주는 힘이 되는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인생의 중심을 잃고 바닥을 쳤을 때, 우연히 발레를 만났다고 말한다. 한 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균형을 잡기 위해 용을 쓰는 날이 시작됐다. “여러분, 중심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내 중심은 내가 책임져야 해요, 몸의 축을 세워서 중심을 잡으세요.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은 계속 목 놓아 외쳤지만, 하릴없이 무너지는 날이 이어진다. 발끝으로 서 있는 순간은 0.3초 정도 됐을까 싶다.
중심은 참 얄궂다. 중심을 잡고 몸을 세우는 것은 무척 어려운데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는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자태를 떠올리지만,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민망하다. 하지만 저자는 계속 하고 싶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된다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 되던 게 손쉽게 되리라는 기대는 언감생심이다. 안 되는 건 계속 안 되는데, 되던 것마저 안 되는 날이 허다하다. 중요한 건 안 되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되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묵묵히 다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0.3초도 못 버티던 저자가 2초, 3초, 5초로 버티는 시간이 늘었다. 발레는 결국 최선을 쌓아 올리는 빌드 업의 과정이었고, 발레에도, 인생에도 역시나 지름길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책에 나오는 발레 강습의 핵심은 중심과 바닥이다. 바닥을 믿고 바닥을 잘 눌러야 중심이 잡힌다. 바닥이 준 힘을 느끼고 바닥을 쳐야 날아오를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발레가 아닌 인생에도 딱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발레 선생님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지침이 있다. 틀렸어도 마무리포즈는 자신있게 정확하게 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잘했어도 마무리 포즈가 엉망이면 춤이 엉망이 되고, 아무리 못했어도 마무리 포즈라도 잘 잡았으면 최선을 다했다는 진심이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그 어떤 실수도, 실패도 더 좋은 마무리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책 곳곳에 나오는 발레 선생님의 잔소리는 인생의 가르침과 닮아있다.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다음에 향할 곳, 스팟을 찍어 미리 거길 보세요” “잘 할 때까지 하면 잘 할 수 있어요” “돌려고 하지 마세요! 일단 제대로 서세요” “예쁜 동작을 위해선 안 예쁜 동작을 많이 해야 해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요” “지금의 힘듦, 영원하지 않아요! 끝나요!”
몸과 마음이 굳어진 것 같으면 발레를 배우러 가야할 것 같다. 전수진 지음/북라이프/256쪽/1만 7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