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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 혀 절단 사건’ 최말자, 재심 촉구 마지막 1인 시위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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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성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고의에 의한 상해'로 구속 수사 및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 씨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탄원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64년 성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고의에 의한 상해'로 구속 수사 및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 씨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탄원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최말자(77) 씨가 2020년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 이후 지난달 31일 마지막 재심 촉구 1인 시위를 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최 씨는 지난달 31일 낮 12시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한 후 최 씨와 최 씨 가족·지인 20명의 자필 탄원서와 시민 참여 서명지 1만 5685장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최 씨의 사건은 1964년 5월 6일 오후 8시 경남 김해의 한 마을에서 벌어졌다.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을 데려다주려다 집 앞을 서성이던 21세 노 모 씨와 마주쳤다. 친구들이 노 씨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자, 최 씨는 친구들이 편히 집에 갈 수 있도록 노 씨를 다른 길로 유인했다. 으슥한 밤길에 둘만 남게 되자, 노 씨는 최 씨를 뒤에서 덮쳤다. 노 씨는 성폭행을 시도했고, 최 씨는 입안에 들어온 노 씨의 혀를 깨물며 저항했다. 노 씨의 혀 1.5cm가 잘렸다.

최 씨는 황당하게도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중상해 가해자로 몰렸다. 수사는 강압적으로 진행됐다. 검찰은 최 씨를 구속하고, 최 씨에게 중상해 혐의를 씌워 가해자로 몰아갔다. 정작 노 씨에게는 강간 미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됐다. 노 씨는 사건 이후에도 당당했다. 친구들과 최 씨 집에 몰려와 흉기를 들고 행패를 부리는가 하면, 최 씨에게 결혼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혼하지 않을 거면 돈을 달라’는 억지까지 부렸다.

수사기관은 최 씨에게 ‘둘이 결혼하면 간단히 끝나지 않느냐’며 결혼을 부추겼다. 재판부마저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며 결혼을 권했다. 이듬해 열린 1심 재판에서 최 씨는 중상해죄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 씨에게는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죄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의 선고가 내려졌다. 구속수사를 받은 최 씨만 6개월간 구치소 생활을 해야 했던 셈이다.

최말자 씨가 제출한 자필 탄원서.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최말자 씨가 제출한 자필 탄원서.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최 씨는 이로부터 56년만인 지난해 5월 재심을 청구했으나 부산지법과 부산고등법원은 “반세기 전 사건을 성차별 인식과 가치관이 변화된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고,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최 씨는 이날 제출한 탄원서에서 부산지법의 재심 청구 기각에 대해 “모든 재판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법원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법 체제를 스스로 인정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사건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며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은 평생 죄인이라는 꼬리표로 저를 따라다녔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제 사건의 재심을 다시 열어 명백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시 정의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해 구시대적인 법 기준을 바꿔야만 여성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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