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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주말] 안티페미는 기겁할 ‘바비’…좋은 부모에 대한 고찰 ‘더 썬’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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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비’가 페미니즘 영화인 줄은 몰랐습니다. 예고편만 보면 ‘바비랜드’에서 살던 바비 인형이 현실 세계로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좌충우돌 코믹 장르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러나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는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깨부숩니다. “여성인권을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온 바비 인형을 통해 페미니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합니다.

같은 날 개봉한 영화 ‘더 썬’은 비교적 관심을 덜 받는 모양새입니다. 상영관도 적지만, 휴 잭맨 주연에 바네사 커비, 앤서니 홉킨스 등 유명배우들이 나선 웰메이드 드라마입니다.


영화 ‘바비’와 ‘더 썬’. 워너브라더스 코리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바비’와 ‘더 썬’. 워너브라더스 코리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페미니즘 후퇴’ 바비로 페미니즘을 외치다

지난 18일 여성가족부는 공공부문 성별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발표했습니다.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정부 고위 공무원 여성 비율은 평균 37.1%인 데 한국은 8.5%에 불과합니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이라는 구조적 장벽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비율입니다. 일각에서 ‘역차별’을 호소하지만, 객관적인 통계 자료들은 사회를 지배하는 쪽이 여전히 남성이라고 말합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OECD 회원국 중 2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11년 연속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바비 인형들이 모여 사는 영화 ‘바비’ 속 가상세계 ‘바비랜드’는 정반대입니다. 여성이 최고인 바비랜드에서 바비들은 인종에 관계없이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흑인 여성이 대통령이고, 대법관 전원이 여성이고, 노벨상도 여성이 휩씁니다. 바비 인형들은 다양성을 갖춘 자신들의 모습이 현실 세계의 페미니즘과 성평등 문제도 해결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반면 남자인 ‘켄’들은 바비를 위해 존재하는 장식품 같은 존재입니다. 바비들이 배구 경기를 할 때면 경기장 옆에서 발랄하게 점프를 하며 치어리더 역할을 하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영화 주인공인 ‘전형적인 바비’(마고 로비)는 이곳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슬픔이나 괴로움 따위는 모르는 바비들은 매일 밤 파자마 파티를 열고 즐거운 인생을 만끽합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바비(이하 마고 바비)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날부터 몸에 이상이 생깁니다. 자고 일어나니 입냄새가 나고 하이힐 모양대로 까치발 상태였던 발이 평평해집니다. 게다가 허벅지엔 셀룰라이트까지. 완벽한 바비 인형에서 점점 불완전한 인간처럼 변해갑니다.

마고 바비는 ‘이상한 바비’(케이트 맥키넌)를 찾아가 원인을 알게 됩니다. 현실 세계에서 마고 바비를 가지고 놀던 주인과 자신이 점점 강하게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마고 바비는 원래대로 돌아가려면 현실 세계로 가서 주인을 만나야 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마고 바비는 현실의 미국으로 향합니다. 막무가내로 동행한 ‘무늬만’ 남자친구 켄(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기묘한 모험이 시작됩니다.


영화 ‘바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바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마고 바비의 기대와 달리 현실의 미국은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올해 발표된 ‘유리천장 지수’에서 미국은 OECD 조사대상 29개국 중 19위로 평균 이하에 머물렀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꼬았습니다. 전형적인 바비 인형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마고 바비에게 남자들은 추파를 던지고, 희롱하고, 추행합니다. 여기서 멋진 일들은 모두 남성의 차지입니다. 바비 제조사인 ‘마텔’의 경영진도 모두 남자였습니다. 마고 바비는 ‘전형적인 바비’의 등장이 성 상품화와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등 여성인권의 후퇴를 불렀다는 지적을 듣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반면 라이언 고슬링 켄(이하 고슬링 켄)은 가부장제에 눈을 뜨고 환희합니다. 요직을 남자들이 꿰찬 세상, 남성적인 것이 멋진 것으로 그려지는 세상은 켄에게 유토피아입니다. 물론 여성도 능력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금융권에 종사하는 한 엘리트는 켄에게 “가부장제가 아닌 척 하는 것”이라고 귀띔합니다.

고슬링 켄은 남자가 대접받는 세상에서 너무 신난 나머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려 하지만, 무능하기 때문에 의사도, 경영인도, 구조대원도 될 수 없습니다.

켄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설치고 다니는 동안 마고 바비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진짜 주인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를 만나고, 원래의 ‘전형적인 바비’로 돌아가기 위해 글로리아 모녀와 함께 바비랜드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마고 바비보다 먼저 도착한 켄 때문에 바비랜드는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켄이 뿌린 가부장제에 가스라이팅을 당한 바비들이 켄들을 모시고 살고 있는 겁니다. 켄들은 헌법을 바꿔 바비랜드를 ‘켄덤’(켄과 킹덤의 합성어)으로 바꾸려 합니다. 이에 바비와 글로리아 모녀는 여성이 주체성을 가지고 살던 바비랜드를 되찾기 위해 힘을 합칩니다.

영화는 만화적 연출과 경쾌한 음악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뮤지컬 영화 못지않은 군무와 파스텔톤을 적극 활용한 미장센으로 독특한 영상미도 선사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 주제가 페미니즘이라는 점에서 관객의 성향에 따라 호오가 갈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배우 출신 그레타 거윅 감독은 여성을 주연으로 한 여성 서사 영화들로 평단의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작은 아씨들’(2020)이나 ‘레이디 버드’(2018) 등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익숙한 수작을 만들어내며 여성주의 감독의 대표주자로 발돋움했습니다.


영화 ‘바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바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거윅은 이번 작품에서는 작심하고 페미니즘 메시지를 설파합니다. 현실에서 여성이 당하는 차별을 각종 은유로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대사와 행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강조합니다. 글로리아가 가부장제에 세뇌당한 바비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며 여성에게 요구되는 자기검열과 압박, 온갖 모순을 지적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주인공인 마고 바비는 점차 페미니즘을 깨달아가는 캐릭터입니다. 페미니스트 관객이라면 자기혐오와 코르셋 때문에 무기력과 우울에 빠진 마고 바비가 주체성을 찾아간다는 계몽적인 스토리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남성성의 ‘찌질함’도 꼬집었습니다. 멋진 척, 잘난 척, 아는 척하며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켄들의 모습을 하찮게 묘사해 실소가 터져 나오게 합니다. 그중에서도 마초와 가부장제를 추구하는 ‘고슬링 켄’은 완벽한 완급조절 연기로 전형적인 ‘인셀’(incel·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을 연상케 해 웃음을 유발합니다. 머저리처럼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유치한 고슬링 켄이 백래시를 주도한다는 설정에서 안티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거윅 감독의 시선이 엿보입니다. 이러한 시선은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백래시 물결에 동참한 켄들은 사실 여성인 바비들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랐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만 거윅 감독은 현실 속 켄에게 위로와 화해의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바비 없이는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던 켄은 주체성을 가진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고슬링 켄을 못난 남자로 묘사하는 한편, 순수한 면이 있어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페미니즘의 당위성을 주창하는 영화의 전체 흐름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비에 대한 평가는 ‘성편견 심화 1위’ 국가인 한국에서 특히 극단적입니다. 지난 6월 유엔 산하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간한 젠더사회규범지수(GSNI)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37개국 중 한국은 성평등에 대한 인식 수준이 가장 많이 후퇴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일부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바비를 겨냥한 날선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극단적 페미니즘 영화’라며 별점 테러도 자행합니다.

해외에서의 평가는 좀 더 다양합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그레타 거윅과 마고 로비의 기적에 가까운 업적”이라며 5점 만점에 5점을 매겼습니다.

그러나 타임지는 “바비는 아주 예쁘지만 아주 깊은 내용은 아니다”고 혹평했습니다. 이같은 기사를 소개하는 타임지의 인스타그램에는 “누가 바비 영화가 진지하길 원하겠냐” “진지한걸 원하면 오펜하이머를 봤어야지” 등 비판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한 누리꾼은 “나는 어렸을 때 바비를 좋아했고, 지금은 직장에서 리더 자리에 있다”며 “이 영화는 노스탤지어(향수)와 현대 여성인권 향상의 균형을 완벽하게 잡았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휴 잭맨 열연 돋보이는 가족 드라마 ‘더 썬’

아카데미 2관왕 ‘더 파더’(2021)의 감독 플로리안 젤레르가 또 다시 아버지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19일 개봉한 ‘더 썬’은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미국 뉴욕에서 잘 나가는 50대 변호사 피터(휴 잭맨)입니다. 한참 어린 미인 베스(버네사 커비)와 재혼한 뒤 아들 테오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피터에게 어느 날 전처 케이트(로라 던)가 찾아옵니다. 17살이 된 아들 니콜라스(젠 맥그라스)가 학교를 한 달째 안 나가고, 자신과는 말도 하지 않는다는 소식입니다.

피터가 찾아가자 니콜라스는 받아들이기 힘든 호소를 합니다. 엄마와 함께 사는 집에선 나쁜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겁니다.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던 피터는 아내 베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니콜라스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기로 합니다.

피터와 베스는 니콜라스에게 애정을 쏟지만, 니콜라스는 좀처럼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특히 아버지가 베스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수록 니콜라스는 불행해집니다.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즐거워하다가도, 베스가 합류해 피터와 춤을 추자 안색이 어두워집니다. 침대 매트리스 밑에 칼을 숨겨놓고 팔에 상처를 내는가 하면, 학교에 가지 않고 피터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습니다. 베스가 그런 니콜라스를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일에 치여 사는 피터는 유능한 심리 상담사를 니콜라스에게 붙여주고 틈날 때마다 아들과 대화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성공가도를 걸어온 피터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학업에 지나치게 신경 씁니다. 수학 시험을 잘 봤다는 거짓말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사실 니콜라스가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렇게 살다 뭐가 될래”라고 다그치고, 책임감이 없다며 강압적으로 아들을 몰아붙입니다.

니콜라스도 할 말이 있습니다. 인생이 버겁게 느껴지고, 나쁜 생각들이 떠오르는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모두 아버지 때문이라고 쏘아붙입니다. 엄마와 나를 쓰레기처럼 버렸다며 원망합니다.

그러자 피터는 폭발해버립니다. “나도 내 인생이 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냐”며 설전의 상대가 아들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 분노를 쏟아냅니다. 이내 선을 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피터는 사과하지만 겁에 질린 니콜라스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피터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야망을 좇느라 가족에게 무심하던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려 했지만, “그렇게 살다 뭐가 될래”라며 아들을 몰아세우는 아버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니콜라스에게 토하듯 뱉어낸 변명도 자기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영화는 다소 투박하면서도 현실적인 연출에 휴 잭맨의 열연이 더해져 몰입감이 상당합니다. 감독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배역을 따낸 휴 잭맨은 딜레마에 빠져 갈등하는 내면연기부터 감정을 터트리는 연기까지 완벽한 완급조절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더 썬’은 젤레르 감독의 ‘가족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인 ‘더 파더’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 호평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중년 남성의 발버둥을 현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더 파더’에서 주인공이었던 앤소니 홉킨스는 차기작에서 피터가 증오하는 이기적인 아버지로 특별출연했습니다. 젤레르 감독 양아들인 가브리엘의 경험도 영화에 녹아있습니다. 극중 프랑스인 인턴으로 잠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가브리엘입니다.

영화는 여러 화두를 던지며 생각을 자극합니다. 반전영화가 전쟁의 참혹함을 다룬다면, ‘더 썬’은 이혼 가정의 참혹함을 다루는 ‘반이혼영화’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당화 할 수 없던 것들이 점점 ‘권리’로 인정되는 세상에 의문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가족관계가 주는 압박감을 비롯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더 썬’의 엔딩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면서도 충격적인데, 마냥 비현실적이지는 않아 긴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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