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거리 두기’ 방침에도 ‘조기 대선’을 겨냥한 국민의힘 차기 대권주자들의 물밑 경쟁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한동훈 전 대표가 16일 “머지않아 찾아뵙겠다”며 정치 일선 복귀를 예고하면서 오세훈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의원과의 ‘중원 싸움’이 본격화될 조짐이고, 강성 보수 지지층을 대변하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탄핵 반대 국면에서 여권 주자 중 1위로 올라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을 공개적으로 저격하며 ‘보수 적자’ 경쟁에 불을 붙이려는 모습이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지난 두 달 동안 많은 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며 조만간 공개 활동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16일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두 달 만에 정치 행보 재개를 알린 것이다. 그는 또 ”책을 한 권 쓰고 있다”고도 했다. 책에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표직을 지내며 느낀 소회와 앞으로의 정치 비전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한 전 대표는 지난달 설 연휴 전후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 등 여야 원로들을 잇달아 만나며 정치 행보와 관련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 당시 당의 계엄 해제 투표 참여를 주도했고, 이후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힌 한 전 대표는 당내 주자들 중에서도 오 시장, 유 전 의원 등과 ‘중도 확장’ 능력을 두고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오 시장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저격’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16일 페이스북에서 ‘한국의 유력 차기 지도자는 중국·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미 워싱턴포스트의 이 대표 인터뷰 기사를 거론하며 “이 대표가 과거 발언까지 부정하며 ‘친미 구애’에 나섰지만, 미 언론은 이재명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며 “조변석개(朝變夕改)가 실용이면 사기꾼도 경제인이라 불러야 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전날에는 민주당의 35조 원 규모 추경안과 관련, “민생회복 지원금을 소비쿠폰으로 이름만 바꿔서 다시 들고나왔다”며 “기술기업을 살리는 진짜 경제는 뒷전이고, 모든 것이 자신의 생존에 맞춰진 이재명의 ‘국민기만경제’”라고 비판했다. 선명한 ‘반 이재명’ 노선으로 상대적으로 지지세가 약한 강성 지지층까지 포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홍 시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김구 선생의 국적을 중국이라고 기상천외한 답변을 하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라며 김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일제 시대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국적이 뭔가’라는 민주당 의원 질문에 “안중근 의사는 조선 국적이고, 김구 선생은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국사 학자들이 다 연구해 놓은 게 있다”고 말했다. 홍 시장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국민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일제의 식민 사관으로, 그렇게 보면 일제 하 독립운동은 내란이 된다”며 “일제시대에 국민은 있었으나 영토와 주권을 빼앗겨 당시 우리 국민들은 국내나 해외에서 모두 무국적 상태로 산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차기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본격화되면서 윤 대통령 파면을 전제로 조기 대선에 선을 긋고 있는 여당 지도부도 선거 전략을 두고 물밑 작업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다음 달 초·중순 내려질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그때 탄핵이 인용될 경우 곧바로 60일의 초단기 대권 레이스에 돌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탄핵심판 선고를 전후해 당이 취할 입장과 노선,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당내 절대 다수인 친윤(친윤석열)계는 계엄 이후 단기간에 회복된 당 지지율을 근거로 대권 레이스가 시작되더라도 현 기조대로 강성 지지층의 ‘화력’을 바탕으로 야당에 맞서야 한다고 본다. 한 중진 의원은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중간이 없고 좌우만 있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우리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움직일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막상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단기전인 만큼 태세 전환이 어려운 데다, 여야의 지지율이 팽팽한 상황에서 승부의 열쇠는 중도층·수도권·청년층, 이른바 ‘중·수·청’이 쥘 가능성이 큰 만큼 지금부터라도 외연 확장 노선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최근 당 지도부가 정책·쇄신 행보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