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봉준호 감독. 우리나라 영화감독 중 봉준호만큼 예술성과 오락성, 독창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이가 몇이나 될까. 과거에도 드물었고, 앞으로는 더더욱 장담할 수 없는 캐릭터임을 부정할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단순히 그가 2019년 연출한 영화 ‘기생충’으로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벌써 5년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도 있지만, 오리지널 한국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는다는 것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에 비견될 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에 국제장편영화상까지 4관왕을 차지한 것만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 봉준호는 아시아 변방 국가인 한국의 소프트파워로 대변되는 글로벌 K컬처 열풍에서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개척자이다. 2018년 대만 출장 중 만난 외국 기자와 대화하면서 K컬처, 구체적으론 K무비의 대명사로 봉준호의 ‘국제적 위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당시 10여 국가 출신 기자와 일주일가량 동행하면서 가장 많이 질문을 받은 인물은 단연코 방탄소년단 BTS였다. 출신 국가와 나이가 제각각이었지만 BTS에 대한 호기심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현지 노래방에선 떼 지어 부르기 쉬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BTS를 압도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선 영화에 관한 질문을 적지 않게 받았다. 유럽 기자들의 관심이 특히 컸는데, 박찬욱과 봉준호 두 감독에 집중됐다. 박찬욱 감독에 대해서는 2004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올드보이’가 주로 거론됐는데, 대부분 산낙지를 통째로 씹어먹는 장면을 본 충격과 소감, 그리고 한국의 (다소 야만적으로 보이는)식문화에 한정된 질문이 많았다.
단편적 기억이긴 하지만, 봉준호 감독에 대해서는 작품세계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간단한 의식주 욕구만 겨우 해결할 정도의 영어 실력 때문에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사실 더 뼈저리게 느꼈던 건 따로 있었다. 외국인이 저렇게 관심을 가질 정도의 글로벌 위상을 갖춘 봉준호 감독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건 뭘까.
7년 전 해외 출장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다시 떠올리게 한 책이 출간됐다. 영화평론가 두 명이 쓴 <봉준호 되기>라는 책이다. ‘봉준호를 만든 교과서와 스승들’이라는 작은 제목이 책의 성격과 내용을 간명하게 안내한다. 가령 ‘마더’(2009)에서 형사 송새벽이 뜬금없이 세팍타크로 강의를 늘어놓다 돌연 용의자 원빈의 입에 물린 사과를 돌려찰 때, 혹은 ‘기생충’에서 지하실 남자가 벽에 머리를 박다가 충혈된 눈을 부라리며 “리스펙”이라고 소리를 지를 때 봉준호는 어떻게 그런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영화 평론가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던지, 저자들 역시 봉준호의 머릿속을 탐험해 보기로 작정하고 네 차례에 걸쳐 봉준호를 인터뷰했다. 그리곤 그의 영화 세계를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된 텍스트들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그러니 책은 일종의 ‘봉준호 월드 가이드북’인 셈이다. 봉준호 감독과의 대화록(2부)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살인의 추억’에 관해 진행한 강연록(부록)이 더해진 건 가이드북의 또 다른 매력이다. 마지막 열여덟 페이지는 찾아보기로 돼 있다. 봉준호를 말하기 위해 언급한 인물과 작품이 그만큼 넓고 깊다. 남다은·정한석 지음/도서출판 강/329쪽/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