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 석포제련소 모습. 정종회 기자 jjh@ 2019.06.18 부산일보DB
영풍 오너 일가 3세인 영풍이앤이 장세환 부회장이 미국에서 공식 직책에는 없는 ‘영풍그룹 부회장’ 직함을 사용해 대외활동을 벌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너 일가가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경영자 행세만 하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지난 9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 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 관련 리셉션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장세환 부회장과 윤종하 MBK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장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영풍그룹 부회장’ 직함과 석포제련소를 운영하는 (주)영풍의 서울 강남 사무실 주소, 영풍 공식 이메일 주소가 기재된 명함을 관계자들에게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장 부회장이 (주)영풍의 등기·미등기 임원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영풍 장형진 고문의 차남으로, 서린상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내다 2024년 영풍이앤이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풍이앤이는 영풍그룹 소유 건물 관리를 주업무로 하는 비주력 계열사로, 지난해 매출 31억 원, 영업이익 1억 원을 냈다.
반면 명함에 적힌 (주)영풍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조 9000억 원, 자산 6조 원 규모의 영풍그룹 핵심 계열사다. 영풍이앤이의 소재지도 서울 종로구로, 명함에 적힌 (주)영풍 강남 사무실과는 다르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장 부회장의 부회장 직함이 계열사 이동과 무관하게 그룹 내에서 계속 유지돼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을 통상 ‘삼성 회장’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대외적으로 편의상 영풍그룹 부회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영풍 측은 또 이번 테네시 행사에는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법무 담당 임원이 회사 대표로 참석했고, 장 부회장은 영풍과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일원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린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시절 고려아연과 영풍의 비철금속 제품을 모두 다뤄본 경험을 살려 참석했다는 것이다.
장 부회장이 그룹을 대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열린 투자자 대상 프록시 토크에도 영풍 부회장 자격으로 참석해 주총 안건과 영풍의 경영 역량을 직접 설명한 바 있다.
이런 행보를 두고 업계에서는 장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오너 일가로서 권한을 행사해 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과거 중대재해 사고로 대표이사 등 임원이 구속됐다 보석으로 석방되는 등 최고경영진이 지속적인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왔다. 환경오염과 관련 회계처리 이슈도 끊이지 않아, 시민단체와 지역사회로부터 경영진은 물론 대주주 일가에 대한 비판이 이어져 왔다.
이에 장형진 고문의 경우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5년 퇴임 이후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위탁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여야 의원들은 장 고문의 실질적 영향력을 문제 삼으며 전문경영인 체제와 실제 역할 사이의 괴리를 집중적으로 따져 묻기도 했다.
한편 장 부회장은 리셉션에서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를 아연·납 생산 시설로 소개하며 석포제련소와 비교했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프로젝트 크루서블이 추진되는 미국 클락스빌 제련소가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지형이어서 석포제련소와 환경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의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 및 탈법 순환출자 형성 관련 공정위 조사 등 사법 리스크로 인한 프로젝트 차질 우려를 해소하고, 최대주주로서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참석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