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할 때 연극 한 편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큰 기둥 같은 분들과 함께 하니 평소보다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영화 ‘서울의 봄’에 출연한 배우 박해준의 말이다. 박해준은 이 작품에서 하나회 2인자이자 9사단장 노태건을 연기했는데 그 모습이 흥미롭다. 신군부 세력 핵심인 전두광의 최측근으로서 중요한 순간마다 사실상 ‘키맨’(key man) 역할을 하는데 표정 하나, 대사 하나까지 잘 그려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준은 “초반에 리허설을 정말 많이 한 작품”이라며 “동료들의 좋은 기운에 올라타서 같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봄’은 19일 기준 누적 관객 908만 명을 동원해 ‘천만 영화’를 앞두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배우들의 호연과 짜임새 있는 연출이 호평을 받으며 입소문이 났고, 빠른 속도로 관객을 모았다. 1979년 12월 12일 일어난 군사 반란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박해준이 연기한 노태건 역시 실제로 있었던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
박해준은 “처음엔 부담이 있어서 (김성수) 감독님을 만났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담감이 좀 풀어졌다”고 했다. 그는 “전두광이 폭주기관차라면, 노태건은 그 속도를 조율하는 기관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전두광의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하진 않고, 그의 신뢰를 조금씩 이용하는 인물로 보이고 싶었어요. 마지막에게 전두광에게 ‘우리 아직 친구 맞제?’라고 확인하는 부분도 나의 존재를 굳히는 말들이었죠.”
박해준은 이 작품을 하면서 동료 배우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을 비롯해 하나회 일원인 안내상 등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현장에 있을 때 흥미로웠다”며 “다들 그 순간에는 연기밖에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니 놀랄 정도로 집중이 잘 됐다”고 회상했다. 박해준은 “정신을 차려야 했다”고 웃은 뒤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들이 현장에서 나오곤 해서 놀랐다”고 털어놨다.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만들어가더라고요. 저도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그래서 맨날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산에서 나고 자라 박해준은 여전히 편한 자리에선 정겨운 부산 말씨가 나오는 부산 사나이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의 권유로 연기의 꿈을 꿨다는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며 서울로 상경했다. 무언극과 연극 무대를 거쳐 영화 ‘4등’과 ‘화차’, 드라마 ‘미생’ ‘부부의 세계’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연기 생활을 해오고 있다. 차기작도 여러 편이다. 영화 ‘정가네 목장’과 한재림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 등도 공개를 앞두고 있다.
박해준은 “지금도 내가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참 신기하다”고 웃었다. 그는 “매 작품 새로운 얼굴을 잘 변신해서 관객이 못 알아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예전에는 내 식대로 하려고 했는데, 이젠 주변 이야기도 많이 들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다시 배워가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부산에 가면 해운대도 좋고 어디든 좋아요. 근데 저는 제가 놀던 동네가 제일 좋더라고요. 고향에 갈 때마다 초량동, 수정동으로 해서 산복도로 이쪽으로 차를 타고 지나갔다가 와요. 남포동도 좋아하고요. 영도다리 건너는 자갈치 시장 뒤편에서 밤에 친구랑 회 사다가 앉아서 먹던 기억도 나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