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나흘 간의 ‘칩거’를 깨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시종일관 비상 계엄 목적이 거대 야당의 권한 남용을 막고, 또 대통령 고유의 통치행위 범위에서 이뤄졌다며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마치 최후변론을 하는 듯한 다급함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계엄 선포 배경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의 붕괴를 막고,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고 내란죄 혐의에 대한 치열한 법리 다툼을 예고했다.
계엄에 대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는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헌법재판소 심리나 수사기관의 수사에 대비해 방어 논리를 미리 구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느냐”며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이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은 또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며 “나라를 살리려는 비상 조치를 나라를 망치려는 내란 행위로 보는 것은 우리 헌법과 법체계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법이론상 ‘통치행위’는 고도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국가 행위 또는 국가적 이해에 직접 관계되는 사항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행위를 말한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가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 통치행위 개념을 끌어온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의회 독재와 폭거로 국정이 마비된 상황을 ‘사회 교란으로 인한 행정 사법의 국가 기능 붕괴 상태’로 판단해 대통령으로서 통치 행위로 계엄령을 발동했다고 밝혔다. 또 부정 선거설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산 시스템이 ‘엉터리’였다며 계엄 때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 점검을 지시했다고 했다. 극우 정치 성향 인사들이 제기하는 ‘부정 선거’ 음모론에 동조됐음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여권에서 거론된 특정 시점의 자진 사퇴를 통한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론’을 거부한 것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필요성과 고유의 통치행위라는 점을 들어 탄핵 심판과 수사에 법률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계엄 선포 방송을 본 국회 관계자와 시민들이 대거 몰릴 것을 대비해 질서 유지를 하기 위한 것이지,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됐다”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 등 자극적 언어를 동원했다.
비상계엄 선포로 빚어진 사회 혼란에 대해서는 담화 말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계엄으로 놀라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 뜨거운 충정을 믿어 달라”며 담화를 마쳤다.
한편,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률안 21건과 대통령령(시행령) 21건을 재가했다고 법제처가 12일 밝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는 등 잇따라 인사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통과 안건을 재가하며 행정권까지 행사한 것이다. 이는 자진 사퇴를 거부하고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