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적인 정비사업장 가운데 하나인 부산시민공원 주변 재정비촉진지구 촉진3구역이 시공사와 공사비 인상 문제를 두고 갈등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서 계약 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 원자잿값 급등에 부동산 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부산의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의 갈등이 연이어 불거진다.
28일 촉진3구역 조합에 따르면 시공사인 DL이앤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표준사업약정서’에 날인을 거부하고 있다. 이 약정서에 시공사가 날인을 하지 않으면 HUG의 보증 승인을 받은 사업비를 사용할 수 없어 조합은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진다.
촉진3구역은 지난 5월 부산시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뒤 현재 이주 절차가 진행 중이다. 조합원들의 약 70%가 이주를 마쳤고 나머지 30%에 이주비를 지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금 조달이 막히면서 조합이 지난 22일부터 이주비를 지급할 수 없어 이주 절차가 중단됐다.
촉진3구역 최금성 조합장은 “DL이앤씨가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며 도급 계약을 맺었을 당시 계약 사항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한다. 심지어 착공 이후에도 매달 공사비를 협의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도 나온다”며 “지난 21일까지 표준사업약정서에 날인을 하라고 마지막 통보를 했지만 시공사는 이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당초 DL이앤씨가 제안한 평(3.3㎡)당 공사비는 765만 원이다. DL이앤씨는 촉진3구역에 지하 6층~지상 60층, 18개 동에 3550세대가 들어설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다.
자사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한 ‘아크로 라로체’를 선보인다며 조합원들에게 홍보했지만, 착공을 1년여 앞두고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조합 측은 이를 시공사의 횡포라 규정하고 법률 자문을 거쳐 손해배상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또 연내 시공사 해지 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의사를 확인한 뒤, DL이앤씨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시공사를 찾을 방침이다.
앞서 인근에 위치한 시민공원 촉진4구역 재개발 조합 역시 시공사와 공사비 인상 갈등을 겪다 결국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촉진4구역 시공을 맡았던 현대엔지니어링이 당초 계약에서 2.5배나 인상한 평당 1100만 원이 넘는 공사비를 요구하자 조합은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진구 범천1-1구역 역시 현대건설이 공사비를 540만 원에서 926만 원으로 증액을 요청하면서 조합장이 해임되는 등 내홍을 겪었다.
건설업계는 원자잿값 인상과 고금리 장기화 등으로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합 입장에서는 시공사가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의 인상액을 들이밀고, 동의하지 않으면 사업의 발목을 잡는 형태로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본다. 부동산 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시공사와 조합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며, 조합원들은 ‘희망 고문’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부동산서베이 이영래 대표는 “시공 계약을 한 이후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날 때까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 같은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가 부동산원 등을 통해 중재 대책을 만들고는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해 공사비 갈등은 앞으로도 정비사업장들의 암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