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배너
배너

[해양문학 공모전-일반부 해양수필 최우수상] 닻 / 이승형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페이스북
트위터

아버지는 나를 못 알아볼 때가 있다.

아들인 걸 알다가도 갑자기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그러다 또 안다. 알츠하이머가 그렇다고 했다. 왔다 갔다 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좋아졌다 싶으면 나빠지고, 나빠졌다 싶으면 또 괜찮아지고. 아버지 기억을 말하면서 내 기억도 헷갈리는 게 이상하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더 있다. 아버지는 TV 속 부산항만큼은 늘 알아본다.

뉴스에서 북항 재개발이 나와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갈치시장이 스쳐 지나가도, 드라마 배경에 광안대교가 살짝 걸치기만 해도 아버지는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입을 연다. 어눌하다. 혀가 굳은 것처럼, 말이 입안에서 뭉쳐서 나오는 것처럼.

"그때 우리 배가."

말끝이 흐려진다. 문장이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늘 그렇다. 시작은 하는데 끝을 못 맺는다.

나는 그 이야기를 수십 번 들었다. 아니, 수백 번인지도 모른다. 같은 이야기가 같은 순서로 흘러나오고, 같은 데서 막히고, 같은 데서 웃는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표정으로.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가 채널을 돌릴까, 생각한다. 돌리면 아버지가 입을 다문다. 그게 편할 때도 있다. 솔직히 자주 그랬다.

오늘은 돌리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화면을 본다. 북항의 크레인들이 불빛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고, 컨테이너가 탑처럼 쌓여 있다. 예전엔 저게 다 없었다고 아버지가 말한 적 있다.

"거기 내가."

아버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또 문장이 끊겼다. 내가 뭘 했는지,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끝이 안 나온다.

나는 마흔이다. 1985년생. 아버지가 부산에서 일할 때 나는 김해의 초등학생이었고, 부산은 지금보다 훨씬 먼 도시였다. 지금이야 삼십 분이면 닿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새벽에 나가면 밤늦게야 돌아왔고, 나는 아버지 얼굴보다 아버지가 두고 간 것들을 더 자주 봤다.

지갑이 그랬다.

거실 장롱 위에 아버지 지갑이 늘 있었다. 갈색 가죽에 닳은 자국이 있었고, 열면 만 원짜리가 두둑하게 들어 있었다. 어렸을 때 몰래 열어본 적 있다. 세어보려다 포기했다. 너무 많아서. 그 돈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해서 저만큼 버는 건지, 그때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신발도 못 벗고 일했어."

아버지가 중얼거린다. TV를 보면서. 나한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신발. 그 얘기도 여러 번 들었다. 사무실이랑 부두를 하루 종일 뛰어다녀서 신발 벗을 틈이 없었다고, 그래서 무좀이 심했다고, 발가락 사이가 허옇게 일어나고 갈라지고 긁으면 피가 맺혔다고. 나는 아버지 발을 본 적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동네 목욕탕에서. 다른 아버지들 발은 그냥 발이었는데, 우리 아버지 발은 달랐다. 뭔가 상한 것 같았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바다였다. 아버지 발에 새겨진 바다. 신발 속에 갇혀서 썩어가던 바다.

TV에서 컨테이너선 한 척이 화면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크다. 아버지가 다루던 배도 저랬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배는 더 작았어."

아버지가 대답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밖이 어둡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서, 다섯 시인데 벌써 깜깜하다. 거실에 불을 안 켜서 TV 빛만 아버지 얼굴 위를 흘러 다닌다. 파란빛. 아버지가 늙었다. 언제 이렇게 늙었는지, 그것도 기억이 잘 안 난다.

나는 바다가 싫다.

이 말을 아버지한테 한 적 없다. 할 수도 없다. 아버지한테 바다는 전부였으니까, 지금도 그러니까. 모든 걸 잊어가면서도 바다만큼은 놓지 않으니까.

그게 싫다. 그게 슬프다. 둘 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그 회사에 다녔는지 정확히 모른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거기 사람이었다. 외국계 선박 무역회사. 이름은 기억 안 난다. 확실한 건 아버지가 거기서 오래 일했다는 것, 그리고 잘 벌었다는 것.

김해에서 그 정도 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 집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가난하지도 않았다. 동네에서 먼저 컬러TV를 샀고, 나는 학교에서 "너희 집 잘 산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게 아버지가 부산에서 벌어온 돈이라는 걸, 그때는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본 적 없다. 선박 무역이라는 게 어떤 건지 상상이 안 됐다. 아버지한테 물어봐야 했는데, 안 물어봤다. 저녁에 지쳐서 들어오면 밥 먹고 씻고 자는 게 전부였으니까.

아버지는 배를 타지 않았다. 그런데 바다 사람이었다.

매일 부산항을 봤다. 사무실 창문으로, 부두를 오가며, 서류 위에 적힌 배 이름과 항구 이름으로.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걸 지켜봤다. 직접 바다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서, 바다로 먹고살았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나는 모른다.

"신발을 못 벗고 일했어."

아버지가 또 그 얘기를 한다. TV 속 부산항을 보면서. 목소리가 느리다. 한 단어씩 꺼내는 것처럼.

하루 종일 신발을 신고 있어야 했다고. 사무실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고. 배가 들어오면 부두로 나가고, 서류가 밀리면 사무실로 뛰어오고. 여름에는 발이 땀에 젖어서 쉰내가 났다고. 양말이 살에 달라붙었다고.

만 원짜리가 지갑에 두둑했던 이유. 아버지 발이 그 모양이 된 이유. 같은 이유였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지갑 속의 돈과 아버지 발 사이에 선이 있다는 걸. 돈이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빠져나온다는 걸. 아버지 몸에서.

엄마가 가끔 그랬다. "아버지가 고생 많이 한다"라고. 그 말이 뭔 뜻인지 몰랐다. 고생이 뭔지 몰랐으니까. 아버지의 고생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 김해를 떠나 밤에 돌아오는 사이, 거기서 뭘 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아버지가 TV를 보면서 말하고 있다. 그때 얘기를. 보이지 않았던 시간 속 얘기를.

"배가 들어오면 밤새워 일했어."

큰 배가 들어오면 서류가 밀렸다고. 선하증권, 통관 서류, 화물 목록. 틀리면 안 됐다고. 숫자 하나 틀리면 컨테이너가 묶인다고. 그래서 밤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고. 아버지가 말을 잠시 멈춘다.

"그래도 좋았어."

좋았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

왜 좋았을까. 돈을 많이 벌어서? 인정받아서? 아니면 그냥, 바다 가까이 있어서?

아버지는 배를 타지 않았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바다를 봤다. 배가 떠나는 걸 봤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걸 봤다. 자기는 거기 남아서.

"배가 떠날 때."

아버지가 말하다 멈춘다. 눈이 TV를 보고 있지만, 보는 게 아닌 것 같다. 더 먼 데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삼십 년 전 부산항 부두를.

"뱃고동 소리가 길었어."

그 소리가 좋았다고. 배가 떠날 때, 부우우 하고 길게 울리는 소리가. 부두에 서서 그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했다고.

나는 그 소리를 들어본 적 있을까. 기억 안 난다. 부산항에 가본 적은 있는데, 뱃고동 소리를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들었어도 그게 뭔지 몰랐을 것이다. 아버지한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으니까.

아버지가 웃는다. 또 그 표정.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

"그때는 내가 젊었지."

그랬겠지. 아버지도 젊었겠지. 지금 TV 빛에 비친 이 얼굴이 아니라, 팽팽하고 검게 탄 얼굴이었겠지. 부두에서 햇볕 맞으며 뛰어다녔을 테니까.

아버지의 전성기. 그 시절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가 부산항에서 빛나던 시절. 뱃고동 소리에 가슴이 뭉클했던 시절.

그 시절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TV 화면에서 배가 또 지나간다. 컨테이너를 가득 싣고. 아버지는 그 배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가 화면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1997년.

그해 겨울이 유난히 추웠는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기억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열두 살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TV에서 맨날 무슨 얘기가 나왔다. IMF. 어른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 세 글자를 말했다.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단어는 들렸는데 뜻은 몰랐다.

아버지가 평소보다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래도 늦었지만, 더 늦어졌다. 밤 열 시, 열한 시. 가끔은 자정이 넘어서. 엄마가 아버지 밥을 데워놓고 기다렸다. 나는 자라고 해서 방에 들어갔는데, 잠이 안 와서 문틈으로 거실을 봤다. 아버지가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 말없이.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다.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외환위기가 터지니까 환율이 치솟았고, 무역이 막혔고, 배가 안 들어왔다. 회사가 버틸 수 없었다.

감원하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 얘기를 한 건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그때 처음 들었다. 회사에서 사람을 자르라고 했다고. 아버지가 관리자였으니까. 후배들 명단을 만들라고 했다고.

아버지는 못 했다고 했다.

같이 일한 사람들이라고. 몇 년을 같이 뛰어다닌 사람들이라고. 부두에서 같이 땀 흘리고, 밤새 서류 정리하고, 새벽에 같이 라면 끓여 먹은 사람들이라고. 그 사람들 이름을 명단에 적을 수가 없었다고.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웃었다. 그때도 씁쓸하게 웃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

"내가 나왔지."

그 한마디였다. 내가 나왔지. 다른 설명 없이. 아버지는 술잔을 비우고 다른 얘기를 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열두 살 때로 돌아간다.

1997년 겨울 어느 날, 아버지가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다. 그게 이상했다. 아버지가 해가 있을 때 집에 온 적이 없었으니까. 그날은 다섯 시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숙제를 하다가 현관문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가 신발을 벗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신발 끈을 푸는데 손이 떨리는 것 같았다. 아닌가. 그건 내가 나중에 덧붙인 기억일 수도 있다. 하여튼 아버지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왔다.

저녁 먹을 때 밥상이 조용했다.

원래도 조용한 집이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숟가락 소리만 났다. 아버지가 밥을 반도 안 먹고 수저를 놓았다. "배불러서 그래."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아버지는 출근을 안 했다.

하루, 이틀. 사흘. 아버지가 집에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에 앉아 있었다. TV를 보거나, 안 보거나. 창밖을 보거나. 그냥 앉아 있었다. 엄마가 뭐라고 하면 대답은 했는데, 짧았다. 응. 아니. 괜찮아.

나는 무서웠다.

아버지가 무섭다는 게 아니라, 상황이 무서웠다. 뭔가 잘못됐다는 건 알겠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다.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학교 갔다 오고, 숙제하고, 밥 먹고, 잤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다른 일을 알아봤다고. 다른 선박회사에도 넣어보고, 무역회사에도 넣어봤다고. 그런데 안 됐다고. 1997년 말, 1998년. 그때 누가 사람을 뽑았겠나.

결국 아버지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한 번의 선택. 후배들 이름을 명단에 적지 않겠다는 그 선택. 그게 아버지의 바다를 끝냈다.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자기 바다를 닫았다.

그걸 후회했을까. 아버지한테 물어본 적 없다.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묻나. 후회하세요? 그때 그냥 명단을 적을 걸 그랬어요? 그런 말을 어떻게 하나.

그때부터 아버지가 달라졌다는 걸. 바다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그 이후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 같았다는 걸. 정확히 뭐가 달랐는지 말하기 어렵다.

확실한 건 하나. 나는 그때부터 바다가 싫어졌다.

열두 살 겨울. 아버지가 신발을 천천히 벗던 그날. 밥상이 조용했던 그날. 바다가 아버지한테서 뭔가를 빼앗아 갔다. 아니, 바다가 아니라 바다 쪽에 있는 무언가가. 회사. 돈. 시대. 아버지의 바다를 막아버렸다.

그래서 바다가 싫었다.

마흔이 됐는데도. 아버지가 바다를 떠난 지 거의 삼십 년이 됐는데도. 바다를 보면 여전히 그 겨울이 떠오른다. 신발 벗는 아버지. 조용한 밥상. TV에서 흘러나오던 IMF라는 세 글자.

그리고 아버지의 뒷모습. 방으로 들어가는.

김해에서 부산까지 십 년 넘게 다녔다. 대학교 4년, 대학원 4년, 그리고 직장. 그 길에 바다가 있었다.

하단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낙동강 하구가 보였다. 강인지 바다인지 헷갈리는 그 물. 나는 그쪽을 안 봤다.

창가에 앉으면 반대쪽을 봤다. 아니면 책을 폈다. 이어폰을 꽂았다. 바다가 보이는 쪽에 앉게 되면 커튼을 쳤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바다를 안 보려고 노력했다.

왜 그랬을까. 설명하기 어렵다. 바다가 무섭진 않았다. 그냥 보기 싫었다. 보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괜히 우울해졌다. 아버지 생각이 났고, 그러면 열두 살 그 겨울이 떠올랐고, 그러면 하루 종일 무거웠다.

그게 싫어서 안 봤다.

한번은 피할 수 없었다. 영도에 있는 대학교에 자리가 났다. 교육 쪽 일이었다. 괜찮은 기회였다. 망설이다가 갔다.

첫날, 버스가 영도대교를 건넜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남항. 자갈치.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부산항이 저쪽에 있었다. 아버지가 일했던 곳이 저 어딘가. 다리 위에서 사방이 물이었다.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영도는 섬이었다. 어디를 봐도 바다가 있었다. 학교 건물에서 창문을 열면 바다 냄새가 났다. 짠 내. 비린내. 쉴 시간에 밖에 나가면 갈매기 소리가 들렸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석 달을 버텼다.

아니, 버틴 게 아니라 견뎠다. 출근할 때마다 영도대교를 건너면서 숨을 참았다. 점심시간에 밖에 안 나갔다. 창문을 등지고 앉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지쳐 있었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힘들었다.

석 달 만에 그만뒀다.

다른 이유를 댔다. 개인 사정이라고. 적성에 안 맞는다고. 진짜 이유는 말할 수 없었다. 바다 때문에 못 다니겠다고, 그런 말을 어떻게 하나.

영도대교를 마지막으로 건너던 날. 창밖을 봤다. 처음으로 제대로. 바다가 있었다. 남항의 배들. 자갈치의 좌판들. 멀리 부산항 크레인이 보였다. 아버지가 저기서 일했구나. 저 바다를 매일 봤구나.

눈물이 날 뻔했다.

왜인지 모르겠다. 슬프다기보다 억울했다. 뭐가 억울한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억울했다. 아버지한테도, 바다에도, 나한테도. 창문을 닫고 눈을 감았다.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그 후로 영도에 안 갔다. 갈 일도 없었지만, 일부러 피했다. 자갈치도 안 갔다. 부산항 근처도 안 갔다. 부산에 있으면서 부산의 바다를 전부 지웠다.

아버지는 반대였다. 바다를 떠났는데, 바다를 그리워했다. 김해 집에서 부산항은 안 보인다. 그래도 아버지는 가끔 동쪽을 바라봤다. 부산 쪽을. 볼 수 없는 바다를 보는 것처럼.

한번은 물어봤다. "아버지, 바다 다시 가고 싶어요?"

아버지가 잠깐 멈칫했다. 그러더니 웃었다. 씁쓸하게.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안 웃는 그런 웃음.

"못 가지."

그 한마디만 하고 술잔을 들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영도에서 도망친 후로. 바다 앞에 못 섰다. 아버지는 가고 싶은데, 못 가고 나는 갈 수 있는데 안 갔다. 같은 "못 가지"인데, 무게가 달랐다. 아버지 쪽이 더 무거웠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건 2년 전이었다.

아버지가 이상해진 건 그 전부터였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물건을 둔 곳을 잊어버리고, 가스불을 끄지 않고 나가고. 처음에는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심해졌다.

병원에서 검사받았다. 의사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 약으로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고. 천천히 나빠질 거라고. 기억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엄마가 울었다. 나는 멍했다.

아버지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기억이 안 난다. 아니, 기억하기 싫은 건지도 모른다. 진단받던 날 아버지 얼굴을. 나는 그때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안 봤다. 못 봤다.

그 후로 아버지가 조금씩 멀어졌다. 아들인 걸 알다가 모르고, 집을 알다가 모르고, 자기 이름도 가끔 헷갈렸다. 삼십 년 전 일은 기억하면서 어제 일은 까먹었다. 시간이 뒤죽박죽 섞였다. 아버지 안에서 현재가 녹아내리고, 과거만 남았다.

그런데 바다는 남았다.

모든 게 흐려지는 와중에, 바다만 선명했다. TV에서 부산항이 나오면 아버지가 깨어났다.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입이 열렸다. 그때 우리 배가, 신발도 못 벗고, 뱃고동 소리가.

그날도 그랬다.

TV에서 부산항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개항 150주년 특집이었나. 오래된 흑백 사진들이 나왔다. 옛날 부두. 옛날 배들. 지게를 진 노동자들.

아버지가 화면에 손을 뻗었다.

처음 보는 행동이었다. TV를 보다가 손을 드는 건 처음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 속 흑백 사진을 가리키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저기."

목소리가 갈라졌다. 떨렸다.

"저기 내가 있었어."

나는 화면을 봤다. 1970년대 부산항.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 거기에 아버지가 있었을 리 없다. 흑백 사진 속 인물들은 아버지보다 더 옛날 사람들이었다. 시대가 안 맞았다. 아버지가 착각한 거다. 기억이 뒤섞인 거다.

그런데 아버지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저기서 일했어."

아버지가 반복했다. 화면을 보면서. 손은 여전히 들려 있었다. 떨리면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게 정확한지 아닌지, 그게 중요한가. 저 화면 속 어딘가에 아버지가 있었다고 아버지가 믿는 것. 그게 진짜 아버지의 기억 아닌가. 흑백 사진이 1970년대든 1980년대든, 아버지한테는 그게 자기 바다인 것.

아버지가 손을 내렸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아버지는 닦지 않았다. 그냥 흘러내리게 뒀다. TV는 계속 나왔다.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손을 들지 않았다. 그냥 물끄러미 봤다.

그때 알았다.

바다가 아버지를 붙잡고 있다는 걸. 내가 그렇게 싫어하고, 그렇게 피하던 바다가. 아버지가 다 잊어가는 와중에, 바다만큼은 아버지를 놓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가 바다를 놓지 않은 건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둘이 연결되어 있었다. 삼십 년을 떨어져 있었는데도.

나는 아버지한테서 바다를 빼앗긴 줄 알았다.

IMF가, 회사가, 시대가 아버지의 바다를 가져갔다고. 그래서 바다가 미웠다. 바다가 아버지를 망가뜨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바다는 여전히 아버지 안에 있었다. 회사는 사라지고,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이름도 기억 못 하게 됐지만. 바다만큼은 아버지 안에 남아 있었다.

그게 아버지의 닻이었다.

모든 게 흘러가는 와중에, 아버지를 붙잡아 두는 것. 기억이 빠져나가도 끝까지 남는 것. 아버지 삶의 가장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것. 그게 바다였다.

나는 그걸 싫어했다. 삼십 년을. 아버지를 붙잡아 주는 걸 싫어했다.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걸 외면했다. 영도에서 도망쳤다. 창문을 등졌다. 눈을 감았다. 아버지 바다를 내 바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TV가 꺼졌다.

다큐멘터리가 끝났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 아버지 얼굴에 비치던 푸른빛이 사라졌다. 거실이 어두워졌다. 아버지는 여전히 화면을 보고 있었다. 꺼진 화면을. 거기 뭐가 보이는 것처럼.

"아버지."

내가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봤다. 나를 봤다. 오늘은 아들인 걸 아는 눈이었다.

"응."

"바다 얘기해 주세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한 번도 안 해본 말이었다. 채널을 돌리고, 안 듣는 척하고, 피해 다니기만 했는데. 갑자기 듣고 싶었다. 아버지 입으로 직접. 그 바다가 어땠는지.

아버지가 웃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이 아니었다. 그냥 웃음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래. 그때 말이야."

아버지가 말을 시작했다. 나는 들었다.

TV는 꺼져 있었다. 거실에 불도 안 켰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아버지 얼굴을 비췄다.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말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들었다.

"그때는 배가 많이 들어왔어. 새벽에 출근하면 항구에 배가 줄 서 있었어. 큰 배, 작은 배. 깃발이 다 달랐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깃발 보면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두웠으니까.

"여름에는 새벽에도 더웠어. 셔츠가 등에 달라붙었어. 부두에 서 있으면 바다 냄새가 났어. 짠 내. 기름 냄새도 섞여 있었고."

짠 내. 기름 냄새. 내가 영도에서 맡았던 그 냄새. 나한테는 도망치고 싶은 냄새였는데, 아버지한테는 어떤 냄새였을까.

"겨울에는 손이 시렸어. 장갑을 껴도 소용없었어. 서류 넘기다가 손가락이 갈라졌어. 피가 났는데 그냥 일했어. 멈출 수가 없었어."

아버지 손을 봤다.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주름지고 마른 손. 그 손이 서류를 넘기고, 피가 나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힘들었어요?"

내가 물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잠깐 멈췄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힘들었지. 근데 좋았어."

왜 좋았냐고 물으려다 멈췄다.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배가 떠날 때. 부두에 서서 봤어. 배가 천천히 움직여. 뱃고동이 울려. 부우우. 길게. 그 소리 들으면 가슴이 벅찼어."

벅찼다. 아버지가 그 단어를 썼다.

"배는 가는데 나는 남아 있잖아. 그게 좀 그랬어. 부러웠나. 아쉬웠나. 그런 거였어."

배는 가는데 나는 남아 있다. 그 말이 가슴에 걸렸다. 아버지는 평생 그랬구나. 배를 보내고, 자기는 부두에 남고. 떠나는 것들을 지켜보고, 자기는 거기 서 있고. 서류를 정리하고, 손가락에 피가 나도 멈추지 않고. 그러면서 바다를 사랑했구나.

"아버지."

"응."

"그때 왜 회사 나왔어요?"

물어보고 나서 후회했다. 이 질문을 지금 해도 되는 건가. 아버지가 기억하기는 하는 건가.

아버지가 오래 침묵했다. 나는 기다렸다. 대답이 안 나오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사람들. 같이 일한 사람들이 있었어."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름은 지금 잘 기억 안 나. 얼굴도 흐릿해. 근데 그 사람들이 있었어. 매일 얼굴 보고, 같이 밥 먹고, 야근하고. 그런 사람들이었어."

아버지가 손을 내려다봤다. 어둠 속에서.

"그 사람들 자르라고 했어. 회사에서. 명단 만들라고."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대학생 때 술자리에서 들었던. 그런데 다시 들으니까 달랐다. 아버지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까.

"못 했어. 이름을 적을 수가 없었어. 펜을 들었는데 안 써졌어. 그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어. 가족이 있는 사람도 있었어."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봤다. 오늘은 아들인 걸 아는 눈이었다.

"그래서 나왔어. 내가."

아버지의 선택. 후배들 대신 자기가 나온 것.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아버지도 모를 것이다. 다만 아버지는 그렇게 했다. 그게 아버지였다.

"후회해요?"

내가 물었다. 또 물어보고 나서 후회했다.

아버지가 웃었다. 그 웃음.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이 아니었다. 그냥 담담한 웃음이었다.

"모르겠어. 그때는 그게 맞는 것 같았어.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기도 해. 나 나오고 나서 그 사람들도 얼마 안 가서 다 잘렸어. 회사가 망했으니까."

아버지가 창밖을 다시 봤다.

"근데 그때 명단 적었으면 내가 못 살았을 것 같아. 평생 그 얼굴들 보면서. 그건 못 했을 것 같아."

나는 아무 말 안 했다. 아버지의 선택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회사는 망했고, 사람들은 다 잘렸다. 아버지만 먼저 나왔을 뿐이다. 의미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게 아니었으면 못 살았을 거라고 했다.

그게 아버지였다. 바다에서 일하면서, 배를 보내면서, 부두에 남아서. 서류에 피 묻혀가며 일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사람을 택한 것. 그게 아버지의 바다였다.

"아버지."

"응."

"저 바다 싫어했어요."

말하고 나서 심장이 뛰었다. 삼십 년 동안 안 한 말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봤다. 표정이 안 보였다. 어두워서.

"알아."

아버지가 말했다.

"알고 있었어?"

"응. 너 바다 얘기하면 안 들으려고 했잖아. 채널 돌리고."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왜 싫었어?"

아버지가 물었다. 나한테.

왜 싫었을까. 바다가 아버지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다. 바다 때문에 아버지가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맞는 말인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싫었어요. 아버지가 바다 이야기할 때마다 슬펐어요. 왜인지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더 묻지 않았다.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거실이 조용했다. 창밖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버지."

"응."

"나중에 바다 한번 같이 가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삼십 년 동안 피하기만 했는데. 영도에서 도망쳤는데. 창문을 등지고 앉았는데. 갑자기 그런 말이 나왔다.

아버지가 한참 대답을 안 했다. 혹시 못 들은 건가 싶었다. 아니면 잊어버린 건가. 다시 말하려는데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 가자."

짧은 대답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한 건지도 모른다. 정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그때까지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다 앞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말했다. 가자고. 그게 시작인 것 같았다.

지금 아버지는 잠들어 있다. 저녁에 바다 얘기를 많이 해서 피곤했는지 일찍 주무셨다. 나는 거실에 혼자 앉아 있다. TV는 꺼져 있다. 휴대폰을 꺼내서 녹음 앱을 열었다.

오늘 아버지가 한 이야기를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단어 몇 개, 문장 몇 개만 남아 있다. 배가 줄 서 있었다. 깃발이 다 달랐다. 손가락이 갈라졌다. 뱃고동 소리. 부우우. 가슴이 벅찼다. 배는 가는데 나는 남아 있다.

다음에 아버지가 이야기하면 녹음해야겠다. 아버지가 잊기 전에. 아버지 목소리로, 아버지 말투로, 아버지의 바다를 남겨놔야겠다. 언젠가 아버지가 다 잊어버리면, 그때 내가 다시 들려줄 수 있게. 아버지한테. 아버지가 못 알아들어도.

창밖이 어둡다. 김해 밤하늘. 별은 안 보인다. 도시라서. 부산 쪽 하늘이 조금 밝다. 불빛 때문에.

저기 어딘가에 바다가 있다.

아버지가 이십 년 넘게 다녔던 바다. 새벽에 나가서 밤에 돌아오던 그 길 끝에 있던 바다. 아버지 발을 망가뜨리고, 손가락을 갈라지게 하고, 그래도 아버지가 사랑했던 바다.

언젠가 가봐야겠다. 아버지랑 같이. 아버지가 일하던 부두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회사 이름도 모르고, 건물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가봐야겠다. 부산항 어딘가에 서서, 아버지가 보던 바다를 봐야겠다.

볼 수 있을까. 내가 그 바다를 볼 수 있을까. 삼십 년 동안 외면했는데. 아버지가 그때까지 기억이 있을까. 같이 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가고 싶다. 처음으로.

아버지 방에서 소리가 났다. 뭔가 중얼거리는 소리. 잠꼬대인 것 같았다. 가만히 들었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한 단어가 들렸다.

배.

아버지가 잠결에 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바다에 있는 거다. 아버지는.

나는 거실에 앉아서 그 소리를 들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 가끔 들리는 단어들. 배. 부두. 이름 같은 것.

아버지의 닻. 그게 아버지를 붙잡고 있다. 깨어 있을 때도, 잠들어 있을 때도. 기억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을 것. 아버지를 아버지로 만드는 것.

나한테도 그런 게 있을까. 마흔까지 살면서, 나를 붙잡아 주는 닻이 있었던가. 잘 모르겠다. 아직 모르겠다.

아버지 방에서 소리가 멈췄다.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일어나서 아버지 방문을 살짝 열었다. 아버지가 자고 있었다. 숨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문을 닫았다. 거실로 돌아와서 창밖을 봤다. 부산 쪽 하늘. 희미한 불빛.

바다가 거기 있다.

관련기사

라이브리 댓글

닥터 Q

부산일보가 선정한 건강상담사

부산성모안과병원

썸네일 더보기

톡한방

부산일보가 선정한 디지털 한방병원

태흥당한의원

썸네일 더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