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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주말] 망한 세상이 주는 고민거리…‘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좀비버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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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넷플릭스 예능 ‘좀비버스’. 롯데엔터테인먼트·넷플릭스 제공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넷플릭스 예능 ‘좀비버스’. 롯데엔터테인먼트·넷플릭스 제공

자연재해로 모든 것이 붕괴된 한국.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일입니다. 지난 9일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바로 그런 세상을 그립니다. 생존 앞에서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한국’을 적나라하게 구현해냈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 여름 최고 기대작 중 하나로 꼽히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극장에서 만났습니다.

지난 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좀비버스’도 비슷한 장르입니다. 출연진은 좀비가 가득한 한국에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해 살아남아야 합니다. 각본 없이 상황 설정만 주어져 출연진의 행동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던진다는 점은 예상 밖입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세상과 함께 무너져내린 인간성...‘콘크리트 유토피아’

초거대 지진으로 모든 건물과 사회 시스템이 붕괴된 한국.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딱 하나의 아파트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철근을 빼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는 아닌가 봅니다. 한겨울 맹추위의 유일한 대피처가 된 ‘황궁아파트’는 마치 콘크리트로 세운 유토피아처럼 보입니다.

아파트는 몰려든 생존자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한동안 외지인들과 함께 살던 입주민들은 점점 생각이 달라집니다. 물자가 부족해지고 외지인들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자 이들을 몰아내자는 의견이 우세해집니다. 부녀회장 ‘금애’(김선영)를 중심으로 모여든 입주민들은 아파트 화재를 진압할 때 놀라운 희생정신을 보여줬던 ‘영탁’(이병헌)을 대표로 선출합니다.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고 말주변도 없던 영탁은 탁월한 리더로 거듭나지만, 그의 카리스마는 이내 광기로 변합니다.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김숭늉 작가의 인기 웹툰인 ‘유쾌한 왕따’ 2부인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합니다. 영화는 종말 이후의 세상을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블랙코미디, 디스토피아, 비극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관람 포인트는 평범한 아저씨에서 모순 가득한 독재자로 변해가는 영탁의 모습입니다.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의 감정연기는 영화의 장르를 마구 바꿔버릴 정도로 강렬합니다.

영탁은 입주민 대표로 뽑힌 직후 또다시 희생정신을 발휘, 거세게 저항하는 외부인들을 바깥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외부인들과 공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온건파’ 입주민들도 있습니다. 엄동설한에 아파트 바깥으로 쫓겨나면 그대로 동사하기 십상입니다. 간호사인 ‘명화’(박보영)도 온건파지만, 비상 상황인 만큼 다수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 남편 ‘민성’(박서준)도 심성은 착하지만, 조금 더 현실적인 편입니다. 위험할 때 자신을 구해주기도 했던 영탁을 적극적으로 따르며 방범대원으로 맹활약합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방범대원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외부에 나가 생필품을 구하는 겁니다. 영화는 문명이 파괴된 서울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구현했습니다. 의상과 구조물 등 디테일한 미장센에도 신경 썼습니다. 세피아 톤 화면에 망가진 자동차 몇 대로 어설프게 흉내만 낸 몇몇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입니다. 땅이 용솟음치고 쓰나미처럼 일렁이는 초대형 지진 장면의 시각특수효과(VFX)도 뛰어납니다.

더 사실적으로 구현된 것은 한국 사회 인간군상입니다.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흥선대원군 못지않은 쇄국정책을 추구합니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원칙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살아남은 외부인들은 ‘바퀴벌레’라 부릅니다. 영탁과 방범대원들은 생필품을 구하는 과정에서 ‘바퀴벌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생존을 위해 눈감아 줍니다. 음식이 풍족해 주민들이 잔치를 벌일 정도로 황궁아파트는 ‘유토피아’가 되어갑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입니다. 물자가 떨어지면서 주민들 사이에 불만과 불안감이 퍼집니다. 일한 만큼 받도록 한 ‘차등 배급’에 불만을 품는 주민도 있습니다. 이런 형편에도 온건파 주민 몇몇은 외부인을 몰래 집에 숨겨 돕습니다. 이를 눈치챈 주민들은 또 불만을 품습니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보이던 유토피아에 점점 금이 갑니다.

영화 초반 복선으로 깔린 영탁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로는 긴장감이 극대화됩니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던 이병헌은 그야말로 광기에 사로잡힌 ‘미친’ 연기를 펼칩니다. 이병헌 스스로도 “‘와, 나한테 이런 얼굴이 있었나’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제가 보는데도 제 모습이 무서웠다”고 합니다.

주연급 비중인 박서준과 박보영의 연기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은 영탁을 따라 점점 ‘흑화’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입체적인 캐릭터인데, 과하거나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없었습니다. 관객이 민성의 심리에 자연스레 이입할 수 있게끔 호연을 펼쳤습니다.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수준급 연기가 나왔습니다.

주로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맡았던 박보영은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를 억척스럽게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됐습니다. 그가 연기한 명화는 영탁의 정체를 과감하게 폭로하는 용감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박보영 스스로는 “이 한 작품으로 이미지를 변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초췌한 얼굴과 살벌한 눈빛 연기의 조화를 본 관객 입장에선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기적이지만 현실적인 부녀회장을 맡은 김선영, 대표적인 온건파 주민을 연기한 김도윤 등 조연들의 명연기도 몰입을 돕습니다. 조명과 클로즈업 등을 적절히 활용한 연출은 배우들의 연기를 더욱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최근 부진한 성적을 거둔 한국 영화들에서 봤던 촌스러운 연출이나 신파는 볼 수 없었습니다. 통렬한 풍자가 섞인 블랙코미디로 쓴웃음을 자아내고, 서늘한 서스펜스로 스릴감과 공포감을 안깁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가진 가장 큰 차별점은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메시지입니다. 아파트가 자산을 넘어 일종의 ‘계급’이 된 현실을 녹여낸 대사들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극중 외부인들은 ‘아파트 주민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파트가 사람을 잡아먹은 형국입니다.

이방인을 철저히 배제하는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한국 사회의 못난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순혈주의, 난민 혐오, 제노포비아, 이기주의, 권위주의 등 산적해 있는 한국 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지, 절대적인 악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이 생존을 지향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한 뒤로는 온갖 악행이 벌어집니다. 괴물이 된 주민들을 보는 관객은 윤리의 마지노선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민성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저 상황에서 명화처럼 관대할 수 있을까’ 자문하게끔 합니다. 점점 독재자가 되어가는 영탁과 주민들의 광기에 동화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 심연을 마주한 듯 불쾌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악인처럼 보이는 인물들도 결국 생존이라는 목표에 매몰돼 버둥거리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연민이 듭니다.

다만 내내 어두운 분위기 탓인지, ‘불호’를 선언하는 관객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일 오전 현재 CGV 실관람객 만족도를 나타내는 ‘골든에그’ 지수는 88%에 머물러 있습니다. 혹평을 살펴보면 “결말이 예측 가능하다” “박진감이 없어 지루하고 몰입이 되지 않는다” “영화가 너무 어둡다” 등 지적이 많습니다. 인상적인 혹평은 “그래서 뭘 어쩌라는거냐” 였습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교훈점이 명확한 상업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반면 다양한 시사점을 담아 고민거리를 안기는 정적인 디스토피아 장르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을 겁니다.


넷플릭스 예능 ‘좀비버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예능 ‘좀비버스’. 넷플릭스 제공

신선한 생존 버라이어티 ‘좀비버스’

넷플릭스가 지난 8일 공개한 ‘좀비버스’는 출연진이 어느 날 좀비 세상으로 변한 한국에서 생존하는 게임 예능입니다.

배우 이시영, 방송인 노홍철, 코미디언 박나래, 가수 딘딘, 그룹 빌리의 츠키, 전 야구선수 유희관, 조나단·파트리샤 남매, 의사 꽈추형(홍성우), 해군 특수전전단(UDT) 출신 유튜버 덱스가 출연합니다. 이들은 곳곳에서 달려드는 좀비 떼 사이에서 끝까지 생존하고, 최종적으론 월미도에서 탈출선을 타야 합니다.

좀비에게 물어뜯긴 출연진은 물린 정도에 따라 즉사해 좀비가 될 수도 있고, 의식이 있는 채로 서서히 좀비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 좀비가 될지 모를 ‘반좀비’들과의 동행 여부는 동료 출연진이 선택해야 합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박진경 책임피디(CP)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문상돈 PD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좀비버스’는 1시간 내외 분량의 에피소드 8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영화 못지않은 액션과 리얼한 연출로 시작하는 1화는 일단 흥미를 끌기에 충분합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서울 모처 연애 프로그램 녹화현장에 노홍철, 박나래, 이시영, 딘딘, 츠키 등 연예인 출연진이 모였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안색이 좋지 않던 일반인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의 목을 물어뜯고,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남은 생존자들은 좀비 세상에서 순간의 판단과 선택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대본 없이 상황에 던져진 출연자들은 좀비가 자신들에게 달려들자 혼비백산해 달아납니다. 겁에 질린 출연진들의 표정과 몸동작은 연기가 아닙니다.

간신히 촬영장에서 빠져나온 출연진은 생존을 위해 여러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주유소에서 좀비를 피해 주유하기, 좀비가 가득한 대형 마트에서 생존 물품 구하기, 놀이공원 안에서 생존자 구하기 등 다양한 미션이 각 에피소드마다 펼쳐집니다.

좀비버스는 15세 관람가인 만큼 지나치게 공포스럽거나 잔인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연출은 대체로 스토리 게임 인터페이스를 연상시키며, 나레이션과 자막은 웃음에 욕심을 뒀습니다. 덕분에 그로테스크한 ‘고어물’을 보지 못하는 기자도 큰 거부감 없이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정교한 특수분장과 몸을 사리지 않는 스턴트 연기로 무장한 좀비들은 아주 현실적입니다. 제작진은 눈앞에서 움직이던 좀비 스턴트맨이 차에 치이게 하는 등 사실적이고 화려한 액션을 구현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좀비들이 사실은 분장한 연기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출연진은 물론 시청자 입장에서도 화들짝 놀라게 되는 포인트입니다. 반대로 좀비 연기자들이 사람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해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 기법의 활용도 적절합니다.

극단적 상황에서 각 출연자의 특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노홍철은 MBC예능 ‘무한도전’에서 보여줬던 ‘무한 이기주의’ 컨셉에 충실해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합니다. 잔뼈 굵은 예능인들도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습니다. 반면 이시영, 덱스 등은 위험한 상황에서 희생정신과 용기를 발휘해 카리스마를 뽐냅니다. 위험한 미션을 누가 수행할 것인지를 놓고 벌이는 말다툼은 출연진의 ‘과몰입’을 부르기도 합니다. 기존 예능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출연자 간 케미도 다양합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좀비에 물리는 출연자가 생기고, 이들과 동료들이 갈등을 빚는 모습에서 자연스레 긴장감이 연출됩니다.

아쉬운 점들도 있긴 합니다. 초반엔 좀비들이 애써 출연진을 붙잡지 않고 억지로 미션을 깨도록 하는 것 같은 인상이 들어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일부 단역과 엑스트라의 연기가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2화의 경우 위기를 자초하는 비현실적인 상황 설정으로 몰입감이 확 떨어졌습니다.

또 출연진들이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서도 좀비 연기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거나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좀비물인데 좀비를 공격할 수 없으니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실제 좀비영화를 방불케 하는 스릴 넘치고 현실적인 서바이벌 예능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나름의 반전도 있는데, 일부는 다소 작위적인 느낌입니다.

일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좀비버스가 적당한 긴장감과 유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신선한 장르의 예능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겠습니다. 후반부에는 기존의 B급 좀비영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황당한 유머 코드를 잘 살려 웃음을 유발합니다. 의외의 인물이 보여 주는 감동포인트를 잡아내는 연출 방식도 기억에 남습니다.

‘좀비버스’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공동체가 ‘낙오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남기기도 합니다. 다수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쓸모가 덜한 소수의 낙오자는 배제해도 되는가 하는 고민 말입니다. 소수자를 포용하는 대신 배제하는 쪽을 택하는 모습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닮아있습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나 조현병 환자가 사건사고를 일으켰다는 기사엔 어김없이 혐오표현이 포함된 댓글이 이어집니다. 이들이 모두 ‘아프다’는 것은 물론,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잊은 듯 거친 표현이 쏟아집니다. 물론 발달 장애인과 정신질환자 등의 돌발행동으로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서도 안 될 일입니다. 다수가 소수를 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이제는 정부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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