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늦은 오후 부산항 북항 앞바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부산역과 북항친수공원 사이에 있는 쌍둥이 주상복합빌딩 ‘협성마리나G7’ 1층 어딘가에서 감미로운 선율의 재즈음악이 흘러나왔다. 100여 명의 관객은 5인조 재즈 밴드 ‘리치파이’의 반주에 맞춰 마이클 잭슨의 노래 ‘Love never felt so good’을 흥얼거렸다. 소극장이나 카페가 있는 건 아닐까 살짝 안을 들여다 보자 놀랄만한 공간이 펼쳐졌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거대한 둥근 책장에 수많은 책들이 꽂혀있는 이곳은 도서관이다.
□관광객도 즐겨 찾는 도서관
‘북두칠성 도서관’은 부산에 사는 사람들이나 부산을 찾은 관광객들에겐 특별한 도서관이다. 밤하늘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큰곰자리’ 처럼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껴안아 준다. ‘책이 사람을 만나 빛이 되고 길이 되는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북항 재개발 사업과 함께 세워진 이 주상복합빌딩의 시공사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역에서 북항으로 이어진 보행덱을 통해 G7 빌딩으로 이동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면 정문이 보인다. 얼마 전 개장해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북항친수공원에서는 횡단보도를 이용해 이순신대로를 건너면 바로 만날 수 있다.
입구부터 펼쳐진 원형의 서가는 일반적인 일자(ㅡ) 형 서가와는 다르다. 북두칠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별자리 모양을 모티브로 설계된 이 서가들은 각기 다른 주제를 담고 있는 독특한 구조다. 책 분류도 십진법을 따르지 않았다. △문학 △예술·기술과학 △테마 서가 △언어·자연과학 △유아·아동 △철학·사회과학 △역사·여행 등 7개 분야로 분류됐다.
장서는 대략 1만 6000여권. 열람만 가능하고 대출은 되지 않는다. 유료 멤버십인 폴라리스 멤버십에 가입하면 오리지널 굿즈 제공과 함께 도서 대출이 가능하다. 음식물 반입과 반려동물 출입은 금지돼 있다.
□테마 서가·관광 기념품 판매도
북두칠성 도서관의 가장 핵심공간은 테마 서가이다. 역시 7개의 공간(별 하나~별 일곱)으로 책이 비치됐다. △별 하나, 지식을 넓히는 인문교양 △별 둘, 감수성을 키우는 문학 △별 셋, 사람을 키우는 교육 △별 넷, 마음을 치유하는 심리 △별 다섯, 지구를 살리는 에코 △별 여섯, 세상을 바꾸는 젠더수업 △별 일곱, 인생을 배우는 모험 등으로 구성됐다. 이곳의 북큐레이팅에는 김미향 작가(인문교양), 김경집 교수(교육), 정선영 교수(심리), 이윤숙 에코페미니스트(에코), 정희진 박사(젠더수업), 이다혜 작가(모험) 등이 참여하고 있다.
‘달빛 서가’는 달의 모양이 조금씩 변하듯 매월 주제를 바꿔가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달 주제는 '우정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얼굴'이다. 이제는 멀어져 버린 친구에 대한 기억을 통해 마음을 위로받고 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
또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을 위해 판타지부터 포근한 일상 힐링 만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준비했다. 현실을 잠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이들을 만화 속 세계로 초대한다.
열람실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아니 도서관 전체가 열람실이라고 해야 할까. 도서관 구석구석에 놓인 커다란 방석에 몸을 묻거나 반쯤 기대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계단형 서가인 ‘책오름 광장’에서 책을 읽는 모습도 눈에 띈다. 계단과 아담한 광장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강연과 공연 등의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평소에는 편하게 독서할 수 있는 장소이다.
‘글길학당’과 ‘글고운학당’은 독서 소모임과 토론·세미나가 열리는 소통과 배움의 공간이다. ‘아트 홀’은 연주회나 전시 등의 소규모 문화 이벤트가 열린다. 행사가 없을 때는 캠핑 의자에 앉아 독서를 즐기면 된다.
‘꿈틀이방’은 책과 함께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이 자라나는 성장의 공간이다. 아이를 데려온 부모를 위한 개인 사물함과 모유 수유실도 마련돼 있다.
도서관 입구 쪽에 마련된 탁자에는 북두칠성 도서관 굿즈를 볼 수 있다. 책과 함께 한 특별한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도서관이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굿즈가 준비돼 있다. 그 옆에는 부산 지역 작가와 청년작가, 마을주민, 관광객들이 함께 개발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오랜지 바다’라는 공간도 있다. 오랜지 바다는 이런 일을 하는 마을기업의 이름이기도 하다.
□4년 동안 18만 명 다녀가
2021년 5월 개관한 이후 꾸준히 방문객들이 늘어 올해 11월 기준으로 연인원 18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평일에는 어린이를 데리고 오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고, 주말에는 절반 가량이 관광객이라고 한다. 부산역이나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대기 시간을 이용해 찾기도 하고, SNS 등에서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방문하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로도 입소문이 났다.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도담도담 아카데미’에는 지금까지 1만 4500여 명이 찾았다. ‘찐영어 잘하는 언니와 동화·게임 속으로 풍덩’, ‘북두칠성도서관으로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모두 841회에 걸쳐 진행됐다.
‘해질녘 콘서트’도 인기 있는 이벤트이다. 매월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에 열린 해질녘 콘서트에선 재즈 밴드 ‘리치파이’가 정통 재즈곡과 함께 팝 음악을 편곡해 들려줘 갈채를 받았다.
해질녘 콘서트는 싱어송라이터, 밴드, 클래식, 성악, 국악 등 다앙한 장르의 음악가들이 초청돼 매달 한 차례 열렸다. 지금까지 53차례의 콘서트가 열려 6200여 명이 찾았다.
부산 동구 협성마리나G7 1층 북두칠성 도서관. 이재찬 기자 chan@
독서클럽 ‘싱글남녀 연애이야기’는 ‘솔로’인 남녀 각 6~7인으로 꾸린다. 한 달에 네 번 열린다. 지금까지 40기, 560명의 미혼남녀가 참여했다. 20~30대의 독서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독서토론 뿐만 아니라 심리상담, 성격검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끈다. 독서클럽을 통해 사귀거나 약혼을 한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엔 결혼에 골인했다고 자진신고한 커플도 나왔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성인 클래스’에는 퍼스널컬러, 미술심리, 와인, 명리학, 조향, 메이크업, 체형진단 등 다양한 주제로 92개의 프로그램이 개설돼 1130여 명이 수강했다. 이번 달에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말차’에 대해 공부하는 클래스(17일 오후 7시 30분)를 준비했다. 차 전문가인 이영희 뷰티풀차문예당 대표가 강연자로 나선다.
개관 때부터 사서로 일하고 있는 이혜민 씨는 “북항 재개발 지역에 세워진 빌딩이 단순한 상업적 공간을 넘어서 문화와 지식의 가교 역할을 하고,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문화와 여가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