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태운 119 구급차가 부산의 한 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부산일보DB
부산 사하구에서 감기 치료를 위해 수액을 맞다가 쇼크 상태에 빠진 10세 아동이 상급 종합병원 12곳의 수용 거부 끝에 중태에 빠졌다. 지역 의사 부족과 응급 의료 체계 미비가 빚어낸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전 10시께 사하구 장림동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서 “10세 여아가 수액을 맞던 중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쇼크)가 발생해 발작과 의식 저하 상태에 빠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소방 당국은 상급 종합병원에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총 12곳의 병원에 연락을 취했지만 환자를 받아준 병원은 한 곳도 없었다.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소방 당국은 13번째 시도 끝에 온종합병원으로부터 ‘환자 수용은 어렵지만 응급처치는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동승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A 양에 대한 응급처치를 이어가며 소방 당국은 황급히 환자를 옮겼다.
그러나 구급대원 도착 후 병원 이송까지 40분이 걸렸고 그 사이 A 양은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A 양은 온종합병원에서 심장박동을 회복하고 기도 확보를 위한 삽관 처치를 받았다. 그러나 온종합병원에서는 A 양을 치료할 여력이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위해 재차 상급병원인 개금백병원으로 향했다.
A 양은 신고가 접수된 지 약 1시간 35분 만인 오전 11시 35분에서야 개금백병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A 양은 16일 현재 의식을 찾지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한 상태다. 뇌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A 양의 병원 수용 거부 사태를 두고 허술한 지역 응급의료 인프라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가 발생한 사하구와 인접한 서구에는 부산대병원·동아대병원·고신대병원 등 상급 종합병원이 밀집해 있다.
그럼에도 소아과 전문의 부족과 응급실 인력 공백으로 인해 소아 환자 수용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병원 수용 거부가 반복되고 있다. 앞서 지난 10월에도 부산 고등학생이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이 없어 끝내 숨을 거뒀다.
의료계에 따르면 수액 투여에 따른 알레르기 쇼크는 매우 드문 사례지만 발생할 수 있는 반응이다. 초기 대응이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면 회복이 가능하다.
이번 사건으로 지역 필수 의료 인력 부족도 확인됐다. 소아과 전문의 수급이 악화되고 필수 의료 인력의 인건비 상승이 지속되면서 응급 아동 환자와 중환자 진료를 담당할 의사가 태부족한 상태다.
필수 의료분야인 소아과의 경우 상급 종합병원은 신규 환자의 진료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환자단체는 적어도 환자가 병원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거리를 전전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병원이 환자를 거부하지 않고 진료에 착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병원은 여력이 부족하더라도 최대한 환자를 받아 치료에 나서야 하고, 혹시라도 환자 포화로 인해 의료 사고가 발생한다면 사후 책임을 면제하거나 해당 병원에 재정·인력을 지원하는 등 방안을 마련하는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