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주류 언론의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 인해 미국 정치와 국제 정세에 큰 변화가 예상되며, 특히 한국은 트럼프 재선이 가져올 파장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은 트럼프 재선의 주요 이유로 ‘고립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꼽는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속내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미국 유권자들이 마음에 둔 두 가지 주요 코드가 드러난다. 첫째는 ‘생존’에 대한 열망, 둘째는 ‘회귀 본능’이다.
자유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중국의 급부상, 불법 이민 증가에 따른 일자리 위협,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신산업 시대의 도래로 인한 인간 소외에 대한 두려움 등은 미국인들의 생존에 대한 불안감을 촉발시켰다. 트럼프는 이러한 불안을 정확히 파악하고, ‘미국 우선주의’라는 처방전을 내걸었다. 반면 카멀라 해리스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성소수자 권익, 임신중절 등과 같은 ‘한가한’ 사회문제에 집중함으로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는데 실패했다.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각종 유세에 적극 참여한 것은 AI와 기술혁신이 가져올 인간 소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문화적 접목의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코드는 ‘회귀 본능’이다. 트럼프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의 방점은 ‘다시’라는 단어에 있다. 이는 과거 미국이 누렸던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고, ‘언덕 위의 집’으로 상징되는 풍요로 왔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국민의 염원을 반영한다. 특히 영향력을 더해가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미국의 전통적 기독교 보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과거의 가치로 돌아가자는 회귀 본능을 자극했다.
이러한 미국민의 코드가 반영된 트럼프 재선은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트럼프는 북한 문제에 있어 미국의 직접적 ‘생존’ 보장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에 무게를 둘 것이다. 즉, 미국 본토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에는 강경 대응할 것이나, 상대적 위협이 덜한 북핵 문제는 김정은과의 ‘세기적 협상’을 즐기기 위한 ‘놀이’ 대상 정도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척에서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과 큰 인식 차이를 노정한다. 이에 한국은 북핵 문제가 미국의 생존 이익과도 직결된다는 점을 납득시켜 한미 간의 군사 협력 강화를 유도하고,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재정 부담 증가 요구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또한, 트럼프는 세계 최강국가로의 ‘회귀’를 위해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적극 저지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차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거론 되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의 지론인 ‘거부 전략’(Strategy of Denial)과 맞닿아 있다. 이 전략은 미국이 유럽이나 중동에서 자원을 낭비하지 말고 중국의 패권 확장을 저지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한국의 대중 외교 정책에도 새로운 압박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경제 협력과 안보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균형 있게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외교적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회귀 본능’ 코드는 경제 분야에서도 강력히 적용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지 투자와 생산을 보다 확대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했던 한국 기업의 미국 현지 공장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 이에 더해 기술 동맹에서 중국을 배제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경우, 이를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의 재선을 가능케 한 이러한 코드로 인해 국제 질서의 급변이 예고된 가운데, 현실적으로 한국은 단독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효과적인 결과를 얻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 대미 교섭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윤석열 정부 이후 회복된 한일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