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10만 원 상당의 명절 선물을 정규직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고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자에는 제공하지 않아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로부터 ‘차별’ 판정을 받았다. 영업이익 2조 원대 규모의 기업이 명절 복리후생 대상에 기간제 계약직을 제외한 것이 문제가 되자 거액을 들여 대형 로펌을 선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영진의 대응 방식이 비난을 사고 있다.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강조해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도 배치하는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 지노위·중노위 ‘차별 인정’
1일 바이오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중노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제기한 재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심과 같은 ‘차별’ 판정을 내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명절 선물인 과일 세트를 지급했으나, 기간제 계약직은 대상에서 제외해 문제가 됐다. 중노위의 판정 결과는 판정서 송달 전 양측에 통보됐다.
앞서 인천지방노동위원회(이하 인천 지노위)는 이번 사안을 명백한 차별적 처우로 봤다. 인천 지노위는 명절 선물의 경우 업무의 난이도나 책임의 정도와 관계없이 소속 근로자에게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복리후생적 혜택이라고 판단했다. 정규직과 계약직 간에 직무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그런 차이가 복리후생 성격의 금품 지급까지 배제할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사측이 주장한 ‘근로계약서상 미지급 명시’에 대해서도 노동법상 차별 금지 원칙을 우선시했다. 계약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법령이 금지하는 불합리한 차별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봤다.
한 기간제 근로자는 인천 지노위 심문회의에서 “정규직 근로자와 권한 범위와 책임에 차이가 있을 뿐 업무의 본질적인 내용은 모니터링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며 “기간제 근로자가 퇴근하거나 자리를 비울 경우 정규직 근로자가 샘플러 업무를 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그간 사용자 답변서와 재심 이유서 등에서 이번 사안이 법적 차별 시정 대상이 아님을 주장해왔다. 사측 주장의 핵심은 ‘업무의 상이함’과 ‘계약의 자발적 동의’다. 정규직 엔지니어와 단기 계약직 샘플러의 업무 유사성이 극히 낮아 비교 대상군이 될 수 없으며, 이런 명절 복리후생은 개별 근로계약서상에 이미 명시돼 근로자가 이에 동의했다는 논리다.
또한 명절 선물은 경영진의 재량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시혜적 금품’이며, 인사 운영과 복리후생 설계는 기업 고유의 자율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사측은 단기 계약직의 경우 명절 시점의 재직 여부가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특정 시기에 근무 중인 인원에게 선물을 지급할 경우 오히려 전체 단기 계약직 간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대형 로펌 선임했지만…‘배보다 배꼽 큰’ 대응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지노위의 차별 인정 판정 이후에는 대형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선임해 재심 신청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지노위에 대응하기 위해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했다. 두 곳 모두 국내 로펌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로펌이다.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자에게 명절 선물 세트를 미지급한 게 문제가 되자 법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막대한 대응 비용을 투입한 셈이다.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은 행정심판 단계의 최종 결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에 불복할 경우 더 이상의 상급 행정기관을 통한 구제 절차는 없다. 만약 사측이 이번 판정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판정서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서울행정법원에 ‘재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인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는 행정소송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다만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중노위의 판정 효력은 확정판결 전까지 유지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중노위로부터 인천 지노위 결과 유지로 통보받았다”며 “아직 정식 판정문을 받기 이전이라 받은 이후에 회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라면 추가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지급된 명절 선물은 계약직 전원에게 지급하였으며 앞으로도 계속 차등없이 지급하겠다”고 덧붙였다.
■ESG 실효성 지적…노동계·학계도 ‘비판’
이번 사안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공표해 온 ESG 경영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회사는 그간 대외적으로 인권 경영과 상생을 강조해 왔으나, 이번 차별 판정은 ESG 경영 가치와 배치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특히 10만 원 상당의 명절 선물을 두고 정규직과 계약직을 구분 지은 이번 사안은 “삼성의 성공은 우리 사회와 함께 만든 것”이라며 상생을 강조해 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철학이 현장 실무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시선도 있다. 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회사는 관련 법령과 제도에 따라 임직원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노동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두고 전근대적인 처사라며 비판했다. 시민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차헌호 공동 소집권자는 “액수나 선물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상품을 제조하는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상처가 정말 크다”면서 “제도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김성희 교수는 “근로자에 대한 차별없고 공정한 인사 관행을 갖추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기업이 이렇게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우를 하는 건 ESG 경영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