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관중 1200만 명 시대.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홈 그라운드 중 가장 뜨거운 사직야구장. 사직의 그라운드를 가장 먼저 밟고 그라운드에서 가장 늦게 발을 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경기가 끝나야 ‘플레이 볼’이 되고 그들이 그라운드로 나서야 내일의 경기가 열린다. 야구장을 보듬고 지키는 사람들 그라운드키퍼다.
경기의 시작과 끝에서 매일의 새로운 경기를 준비하는 그라운드키퍼. 사직야구장의 그라운드 키퍼들. 김종진 기자 kjj1761@
경기 뒤 마운드를 정비하는 일, 잔디 길이를 유지하는 일, 경기 시작 1시간 전 그라운드의 흙을 고르고 선을 긋는 일, 모두 그라운드키퍼의 일이다. 불규칙 바운드에 자책하고 공이 곧바로 흘러가는 것에 안도하며 경기 내내 그라운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그라운드키퍼의 일이다. 경기 전후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그라운드키퍼의 치열한 경기를 따라가봤다.
경기 전 홈 플레이트를 정비하는 그라운드키퍼들. 롯데 자이언츠 제공
■다지고, 긁고, 뿌리자
9회말이 끝나고 선수단이 관중석에 인사를 마치면 관중들은 썰물처럼 야구장을 빠져나간다. 경기마다 다르지만 대략 평일 기준 오후 9시 30분~10시 30분 사이. 경기 종료 아웃 콜과 함께 그라운드키퍼의 경기는 시작된다. 3~4명의 그라운드키퍼들은 경기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운드와 타석으로 향한다.
‘쾅! 쾅!’
마운드와 타석의 흙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큰 망치를 두드리면서 나는 소리. 탬핑 작업이다. 마운드는 투수들이 경기 평균 수백 번 발을 내딛고 온 몸의 힘을 쓰는 공간이다. 지름 5.48m인 마운드 위에서 양 팀 투수가 던지는 공은 한 경기에 보통 300개 정도다. 투수의 구위는 발디딤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야구장의 어떤 공간보다도 단단히 투수들을 지탱해야한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스파이크에 차이고 파이기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마운드는 흙이 가장 심하게 손상된다. 흙이 많이 패인 곳에는 새 흙을 보충한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마운드 상태를 확인하고 다른 그라운드키퍼가 흙을 긁어내거나 단단하게 다지는 식으로 마운드를 다진다.
투구판의 높이는 규정을 따라야한다. 마운드의 경사도 KBO리그 규격대로 잡아야한다. 이에 따르면 높이는 25.4cm(10인치) 이내, 경사는 30.5cm(1피트)당 2.54cm(1인치)로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라운드키퍼가 모든 정비를 마치고 그라운드에 물을 뿌리면 사직야구장의 문도 닫힌다.
사직야구장 그라운드키퍼인 카람의 정용규 본부장은 “스파이크가 박혀서 부상이 생길 수 있고 마운드 상태에 따라 투수가 힘을 실어 던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경기 시작 전 훈련이 시작되면 마운드는 정비가 힘든 부분이어서 경기 끝나고 항상 경기 전과 같은 상태로 정비한다”고 말했다.
경기 전 그라운드키퍼들은 타석을 반듯하게 그린 뒤 마운드와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지 체크한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다르게 자라는 내·외야
프로야구는 평일 오후 6시 30분, 토요일은 오후 5시, 일요일은 오후 2시 시작된다. 그라운드키퍼의 경기는 경기 시작 6시간 전부터 펼쳐진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잔디 관리다. 선수들이 최적의 플레이를 하기 좋은 잔디 길이는 25mm다. 매일이 25mm를 사수하기 위한 전쟁이 펼쳐진다. 잔디를 다듬고 영양제도 공급한다.
사직야구장의 내야, 외야는 잔디 관리 방식이 다르다. 선수들의 발자국이 많이 닿는 내야 잔디는 외야 잔디보다 생육 상태가 좋지 못하다. 내야 잔디들은 최적의 환경을 위해 영양제로 관리한다. 외야보다 영양제를 더 많이 투입한다. 외야 잔디들은 영양제를 많이 먹으면 웃자라 내야만큼 영양제를 주지 않는다.
영양제를 공급할 잔디와 아닌 잔디를 나누고 많이 자란 잔디는 제초한다. 잔디 정비가 끝날 무렵 어느덧 시간은 선수들이 훈련을 시작하는 2시가 된다.
김재홍 팀장은 “날씨에 따라 잔디가 영향을 많이 받고 내,외야 잔디 상태도 다른만큼 원정, 비시즌 할 것 없이 잔디를 매일 살펴야한다”며 “특히 잔디와 흙이 맞닿는 부분은 공이 크게 튀어 경기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만큼 더욱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전 그라운드키퍼들이 내야 잔디와 흙에 물을 뿌리고 있다. 롯데자이언츠 제공
흙을 고르는 일은 불규칙 바운드를 막고 선수 부상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칼 각’ 50분
홈팀과 원정팀의 훈련이 끝나는 건 경기 시작 1시간 여 전. 그라운드키퍼의 2차전이 시작된다. 주어진 시간 50분. 8명의 그라운드키퍼들이 정비에 투입된다. 주요 공략 지점은 마운드, 내야다.
경기에 앞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운드 흙의 점성을 손으로 만지며 확인한다. 점성이 부족하면 물도 뿌리고 흙이 부족하면 흙도 붓는다.1루, 2루, 3루, 홈플레이트를 모두 뽑은 뒤 물을 뿌리고 흙도 다진다. 2~3인 1개조로 물조, 정비조가 역할을 나눠 맡는다.
정비가 끝나면 반듯한 그라운드를 실로 3루와 홈을 잇고 선을 긋는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칼 각’으로 반듯 반듯하게 그라운드에 선이 그어진다. 잘 정돈된 흙, 물을 적당히 머금은 잔디, 반듯한 내·외야 경계선. 홈플레이트 앞 선명한 타석선. ‘플레이 볼’ 준비가 끝났다. 매 경기 직접 선을 긋는 정 본부장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라운드를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정용규 본부장은 “정비가 끝나고 잘 정돈된 경기장을 보면서 오늘도 선수들이 다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사직야구장 그라운드 관리사 카람의 정용규 본부장이 1루 내야선을 그리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라운드키퍼가 가장 바쁜 날은 비가 온 다음 날이다. 그라운드에 물이 고이면 물을 퍼내고 말려야한다. 배수 시설로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기에 선풍기, 온풍기, 환풍기 모든 ‘바람 장비’가 동원된다. 특수 제작된 흙을 깔아 물을 빼내기도 한다. 비가 온다고 무작정 잔디 위에 방수포를 덮어서도 안 된다. 방수포를 덮은 상태에서 해가 나면 지열이 가해져 잔디가 살지 못한다.
무작정 잔디와 흙을 바짝 말릴 수도 없다. 적절한 수분이 유지돼야한다. 야수들은 수분이 많은 그라운드를 선호한다. 흙에 수분이 너무 많으면 땅이 미끄러워 공의 바운드가 죽고, 반대로 수분이 너무 적으면 바운드가 크게 튀어 오른다. 야수 입장에선 흙에 습도가 부족하면 불규칙 바운드가 나오거나 타구가 빨라져 수비하기가 어려워진다.
매일의 경기를 가능하게 하는 그라운드키퍼들. 그라운드키퍼가 있어 선수들의 열정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다. 김종진 기자 kjj1761@
■10곳 밖에 없는 직업
김 팀장은 어린 시절 야구장에서 일하는게 꿈이었다. 구단 프런트를 지망했지만 그라운드키퍼로 꿈을 이뤘다. 3년 째 사직야구장에서 일하고 있다. 김 팀장은 우리나라에 10개 밖에 일터가 없는 직업이라는 데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김 팀장은 “선수들과 수 만명의 팬들의 눈이 모이는 그라운드를 직접 정비하고 그 속에서 선수들이 최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롯데의 연패가 길어지면 내 탓인 거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잔디만 30년 넘게 관리한 잔디 관리 분야 베테랑이다. 사직야구장에서 일하기 이전에는 골프장을 주로 관리했다. 매일 잔디 상태가 경기 결과와 연동되는 야구장 관리에 더욱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 노후한 사직야구장 환경도 그의 잔디 관리 노하우로 이겨내고 있다.
정 본부장은 “프로야구 10개 팀에만 있는 직업이라는 자부심이 크다”며 “음지에서 선수들이 최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게 우리의 역할이고 자부심이다”며 웃어보였다.
환호와 아쉬움이 뒤덮이는 그라운드에는 선수들말고도 많은 사람이 뛰고 있다. 팬들의 함성이 더 커질 수 있도록, 선수들의 플레이가 더 화려해질 수 있기 위해 오늘도 그라운드키퍼는 그라운드를 지킨다. 그라운드키퍼의 맹활약 속에 오늘도 경기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