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신선대부두, 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4주째에 접어들면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동남권 산업계도 시름이 깊어진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길어지고 원료 수급 중단과 물류대란이 계속된다면 중소 제조업부터 조업 중단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2일 울산 정유·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대한유화 온산공장으로 들어오는 중동발 나프타 선박은 지난주를 끝으로 입항이 종료됐다. 중동 물량이 아예 끊기면서 대한유화는 주요 공정 가동률을 70% 수준까지 낮췄다. 다만, 위기 타개를 위해 현재 미국발 선박 1척을 들여오는 등 중동 외 수입처 다변화에 나선 상태다.
나프타 수급 차질은 에틸렌 부족으로 이어져 지역 제조 업계를 옥죄고 있다. 에틸렌 파생 원료를 공급받아 자동차 내장재와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하는 지역 중소·영세 업체들은 원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선박 건조 시 용접과 강판 절단 작업에 에틸렌 가스를 필수로 사용하는 지역 조선소들 역시 수급 차질 우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유를 직접 들여오는 정유 업계도 위기감이 높다. 에쓰오일은 40일가량 원유 재고를 비축하고 있어 당장 공장 가동에는 무리가 없으나 사태 장기화 시 우회 노선 이용에 따른 물류비와 시간 증가를 우려한다. SK에너지 역시 상업용 원료 재고가 한 달 치 수준이다. 원유 정제 부문보다 가공 후 원료를 넘겨받는 석유화학 부문의 타격이 훨씬 심각하다.
동남권 제조업은 중동 석유 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더욱 크다.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부산의 A사는 산업유는 30% 이상, 중동행 운임은 5배 이상 뛰어 겹악재를 맞은 경우다. A사 대표는 “산업유 가격이 15~20% 더 오른다는데, 그마저도 공급이 제한적이고 두세 달이면 재고가 동나서 일부 업계는 조업 단축을 검토한다고 한다”며 “사태가 장기화되면 유럽이나 중국·인도와 경쟁하는 국제 시장에서 타격이 크고, 30년 이상 개척한 해외 공급망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5배 이상 뛴 물류비를 지급하더라도 제품이 안전하게 도착할지조차 미지수다. 사우디 등 7개국에 현지 법인을 둔 김해 B사 대표는 “비용을 들여 제품을 만들었는데 보내질 못하니 자금 압박을 받는다. 선박 선적이 안 돼 이달부터 수출이 전부 멈춘 상태”라며 “대기업이 타격을 받으니, 이곳에 납품하는 작은 업체들은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제조업 전반에 사용되는 비철금속 거래가 막히면서 지역 간판 제조업도 비상이 걸렸다. 두바이에서 알루미늄을 수입해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부산의 C사는 “알루미늄 가격이 이미 30~40% 올랐는데, 당장 대기업 납품가에 반영하기는 어려우니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공급이 제한되다 보니 규모가 작은 협력사들은 부품 공급을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어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업연구원은 22일 업종별 전문가들을 상대로 조사한 전문가 서베이 지수(PSI)에서 4월 제조업 업황 전망이 88을 기록해 10개월 만에 기준치인 100 밑으로 내려갔다고 밝혔다. 중동 사태 여파로 전월(117)보다 29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업종별로는 화학이 3월 121에서 4월 53으로 폭락했고, 자동차(122→70), 기계(106→69), 철강(133→100) 등에서 악화 우려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