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산권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부산 사상구는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세대교체’와 ‘보수 분열’이라는 두 갈래 변수의 한복판에 섰다. 대통령 참모 출신의 40대 여야 정치인이 맞붙는 가운데, 현역 구청장까지 무소속으로 가세하면서 사상구 선거는 ‘낙동강 벨트’의 최대 혼전지 중 한곳으로 부상했다. 쇠락한 도시를 일으켜 세울 적임자가 누군인지, 유권자들의 선택에 지역 정치권의 관심이 쏠린다.
■“인구 20만 무너진 쇠락 도시”
사상구는 서부산권 산업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노후 공업도시 이미지가 짙다. 인구 감소와 산업 침체, 부족한 생활·문화 인프라 문제가 겹치면서 “도시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거세다. 사상구 괘법동에 거주하는 30대 유 모 씨는 “청년들이 남을 만한 일자리는 사라졌고, 공원이나 생활·문화 인프라도 없다. 남은 건 교통 뿐”이라며 “시민들이 체감하는 일자리와 먹고 사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인물이 당선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40대 손 모 씨는 “장기적 비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중기 계획이라도 세워 인구 20만 명 선이 무너진 사상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며 “지역의 특성과 산업 구조를 깊이 이해하는 구청장이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덕포동에 거주하는 60대 김 모 씨는 “사상이 도시 활력을 잃은 데는 정치 영역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측면도 컸다”며 “당을 떠나 추진력 있게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대통령 참모 출신 40대 기수 맞대결
이번 사상구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여야 모두 대통령 참모 출신의 40대 정치인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지역 정치권에서 상징성이 큰 인물들의 정치적 후계자들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서태경 전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후보로 내세웠다. 서 후보는 사상구를 서울 성수동처럼 ‘힙(젊고 감각적인)’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앞세웠다. 그는 이른바 ‘걷는 구청장 프로젝트’를 통해 현장 밀착형 선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구민들의 민원을 그 자리에서 직접 메모해 정책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그가 어깨에 메고 다니는 사서함을 통해 150건이 넘는 정책 제안을 접수했고 이 가운데 일부를 실제 공약으로 승화시켰다. 서 후보는 “구청장의 집무실은 구청 건물이 아니라 골목과 버스정류장”이라며 “차량 대신 두 발과 대중 교통으로 지역을 돌아다니며 주민 목소리를 듣겠다”고 말했다.
그는 괘법동 카페거리 조성, 리버페스티벌 개최, 일몰 트레킹 코스 개발 등 참신한 아이디어를 접목해 사상구를 젊게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청와대 경험을 통한 중앙정부 네트워크와 집권 여당 프리미엄 역시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민의힘 이대훈 후보는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과 장제원 전 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이 후보는 자신이 장 전 의원 시절 추진했던 ‘사상 발전 완성 프로젝트’의 실무 책임자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사상 발전의 큰 그림과 세부 과제는 물론 이미 시작한 사업들의 맥락과 추진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모라초·중학교를 졸업한, 지역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내세운다. 여기에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상무이사 경력을 바탕으로 미래 산업과 비즈니스 감각까지 갖춘 후보라는 점도 부각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사상 국회의원을 지낸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장제원 전 의원의 정치적 자산을 각각 이어받은 두 후보의 대결을 두고 ‘부산 40대 기수론의 맞대결’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무소속 조병길 변수… 보수 표심 갈릴까
이번 선거 최대 변수는 무소속 조병길 현 구청장의 출마다. 조 구청장은 재개발 관련 정보를 사전에 취득해 주택을 매입했다는 의혹으로 지난해 국민의힘에서 제명됐지만, 출마 의지를 꺾지 않았다.
여야 후보 모두 선출직 경험이 없는 정치 신인인 반면, 조 구청장은 사상구에서 정년 퇴임을 한 공직자 출신으로 구의회 의장도 거친 경험이 있다. 조 구청장은 “사상에서 9급 공무원부터 구청장까지 지냈다. 경험과 경륜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출신인 조 구청장이 완주한다면 보수 표심이 갈라지면서 민주당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 사례가 2018년 동래구청장 선거로, 당시 자유한국당(39.0%)과 바른미래당(10.0%)으로 보수 표심이 나뉘면서 민주당이 48.5% 득표율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보수 진영의 득표율을 합하면 0.05%포인트가량 앞섰지만, 승리는 민주당이 가져갔다.
다만 사상구는 낙동강 벨트 내에서 국민의힘 지지세가 만만치 않은 곳이다. 장제원 전 의원이 18· 20·21대 총선에서 당선을 거머쥔 지역구라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지역 내에서는 여전히 장 전 의원의 영향력과 콘크리트 지지층이 남아 있는 만큼 선거 결과는 속단하기 어렵다.
지역에서 상징적인 정치인들의 참모 역할을 했던 40대 젊은 정치인들과 현역 프리미엄을 가진 무소속 후보 간 3자 구도가 형성되면서 사상구 선거는 끝까지 예측불허로 흐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