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초등학교 1학년들이 저자가 일하는 은모래마을책방을 방문했다. 저자 제공
2024년 7월 남해 상주에서 문을 연 은모래마을책방의 개업식 모습. 실처럼 가래떡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었다. 저자 제공
남해군 상주면 은모래해변은 저자와 반려견 몽덕이가 자주 산책하는 곳이다. 저자 제공
전 한겨레 신문 기자이자 국제구호개발NGO활동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해온 저자. 3년 전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의 이종수 이사장을 인터뷰하며 함께 하는 즐거움을 꿈꾸는 공동체를 만난다. 평생 서울에서 살며 외롭고 지쳐가던 저자는 ‘여기서 살면 안 외롭고 행복해질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1년 후 이종수 이사장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마을 활동가, 연구자들과 돈을 모아 ‘삶전환연구소’를 만들고, 연구소의 후원으로 남해 상주면에 은모래마을책방을 열 계획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저자는 책방에서 알바를 하겠다며 반려견 몽덕이와 남해로 이사한다. ‘책방에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오후엔 바다에서 수영도 해야지’라는 야무진 꿈도 꾼다.
꿈은 꿈일 뿐, 현실은 잔인했다. 커피는 정신을 두드려 깨우려고 퍼마셨고, 책은커녕 뉴스도 못 봤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의 낡은 공간을 꾸미는 것부터 회계, 마케팅, 영업까지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었다.
책은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평온을 되찾는 도시 여자의 아름다운 서사가 결코 아니다. 혼자 살기 싫어 이곳으로 왔지만, 정작 하루에도 몇 번씩 ‘제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툭하면 참견하는 이웃들, 뜻대로 되지 않는 책방 운영, 사소한 일로 틀어졌다가도 어느새 다시 얽히는 관계들, 외로워서 사람을 찾아왔는데 정작 사람 때문에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서로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열 번 거절해도 열한 번째 노크하는 이웃, 손을 맞잡는 놀이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게 애증이 교차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성가신지, 그럼에도 왜 서로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주게 되는지 저자는 특유의 솔직하고 유머 있는 문장으로 전달한다. 개성 넘치는 이웃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면 연신 웃음이 터진다. 새박사, 콩풀, 인간AI, 준, 모안대(모든 돈 안되는 것들의 대표), 신발달인, 도장 장인, 여성농민회 어벤져스, 유기견인 진수 다금이 귀남이 등 실제 이런 사람, 동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각자의 사연은 재미있고 때로는 아프다.
저자는 타인의 호의와 도움을 경험하며 서로의 독립성을 유지하되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느슨한 공동체의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한다. 책방을 돌보고 사람들과 밥을 나누며 사랑이란 거창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을 기꺼어 내어주는 구체적인 행동임을 깨닫는다.
가능성은 찾았지만 동시에 저자의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 남해에 내려올 때는 임금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타’가 왔다. 월 60만 원이라는 적은 임금조차 책방 운영에 큰 짐이 되는 것 같았고, 동시에 자신의 노동이 싸구려 취급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매출은 성적표처럼 느껴졌고, 이는 곧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을 증명하는 수치로 다가와 불안하기도 했다.
외롭지 않으려 떠난 남해에서 저자는 사람 때문에 더 자주 화를 내고, 더 많이 웃고, 더 깊이 흔들린다. 그렇게 자신이 알지 못했던 타인의 세계를 만나고, 새로운 자기 모습도 본다.
책 제목은 남해 생활에서 찾은 저자의 깨달음이다. 6년 3개월 전 태어난 지 두 달 된 개 몽덕이를 만난 순간을 떠올린다. 몽덕이가 처음 왔을 때 산책 나가기를 거부했다. 작은 개에게 세상은 무서웠던 것이다. 간식을 깔아놔도 현관문 밖으로 한 발도 내디디려 하지 않았다. 결국 저자는 현관문 앞에 가부좌로 앉으니 몽덕이가 그 안으로 들어왔다. 앉은 채 엉덩이로 밀려 조금씩 복도 쪽으로 이동했고 몽덕이는 저자의 무릎에 의지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몽덕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다른 존재의 무릎이 필요한 것이다. 남쪽 끝에서 만난 애증의 무릎들은 자아의 감옥에 갇힌 저자를 바깥에서 꺼내준 것이다. 처음 타인을 따라 하며 말을 배우듯, 밖에서 열린 문을 지나 두려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자기 안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이 책은 바깥의 노크가 될 것 같다. 김소민 지음/한겨레출판/294쪽/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