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김희갑은 60년 동안 3000여 곡을 탄생시키며 한국 대중음악의 한 획을 그었다. 욱희씨네마, 판시네마
‘매월 만나는 인생 명작 부일시네마’(이하 부일시네마)가 지난 27일 영화를 사랑하는 〈부산일보〉 독자들을 초대해 시즌3 다섯 번째 상영회를 마무리했다.
부일시네마는 전문가가 엄선한 숨은 명작을 매달 함께 관람하고 감상을 나누는 참여형 문화 행사다. 이번 상영작은 ‘바람이 전하는 말’로, 한국 대중가요의 거장 작곡가 김희갑과 그의 동반자이자 작사가인 양인자의 음악 여정을 조명했다.
영화는 김희갑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그의 음악 인생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중 월남한 그는 미8군 '에이원 쇼(A1 Show)'의 악단장이자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서며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는 '키보이스'의 음반을 지휘하며 한국 록 밴드 음악의 기틀을 닦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서정적인 포크와 팝으로 장르를 넓혀 양희은의 '하얀 목련', 혜은이의 '열정' 같은 시대의 노래들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작곡가 김희갑은 작사가이자 동반자인 양인자를 만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냈다. 욱희씨네마, 판시네마
그의 음악은 작사가 양인자를 만나며 한층 깊어졌다. 소설가이자 드라마 작가였던 양인자의 노랫말은 한 편의 문학작품과도 같아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김희갑의 선율과 양인자의 글이 만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이라는 불후의 명곡으로 피어났다.
그의 도전은 가요계에 머무르지 않았다. 한국 창작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낯설던 시절, 뮤지컬 '명성황후'를 맡아 5년간 독학하며 한국 뮤지컬의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영화는 조용필, 양희은, 혜은이, 장사익 등 김희갑과 호흡했던 가수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빌려와 그가 왜 반세기 넘도록 한국 대중음악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증명해 보인다.
영화 상영 후에는 모퉁이극장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인 관객 토크 ‘소감 한토막’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자리를 지키며 큰 박수를 보냈다.
토크의 문을 연 소리연구회 소리 숲 김지윤 대표는 “품격 있는 대중음악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김희갑이라는 이름 자체가 독보적인 장르”라고 운을 뗐다.
관객들의 소감도 이어졌다. 한 70대 관객은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나도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장르를 배우고 도전했던 열정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가 생전 음악을 하셨다는 또 다른 관객은 “어릴 적 집에 큰 전축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애창곡들이 알고 보니 다 김희갑 작곡가의 노래였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르는 정말 따뜻하고 뭉클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음악의 품격은 장르가 아니라 사람의 깊은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김희갑 작곡가의 음악이 잘 보여준다”며 “인공지능(AI)이 몇 분 만에 노래를 만들어내는 시대이지만, 수십 년간 자기만의 세계를 지키며 3000여 곡을 성실하게 작업해 온 태도야말로 진정한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가 남긴 수많은 명곡은 앞으로도 50년, 100년 넘게 대중의 곁에서 불릴 것”이라며 토크를 마무리했다.
현장에서 진심 어린 감상을 공유한 관객 5명에게는 영화 포스터 등 소정의 경품이 증정됐다. 행사에 참여하고 소중한 소감을 나누는 관객들을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경품 혜택과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BNK부산은행이 후원하는 부일시네마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모퉁이극장에서 열린다. 부산닷컴 문화 이벤트 공간인 ‘해피존플러스’(hzplus.busan.com)를 통해 관람 신청이 가능하다. 신청자 중 추첨을 통해 1인당 입장권 2장을 제공한다.
부일시네마의 내달 상영작은 배우 심은경이 출연한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2025)이다.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가 설국 산속 여관에 머물며 주인 '벤조'와 얽히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제7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