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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그때 그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 아버지 '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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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JK필름 제공

"영자야, 니 네 어릴 적 꿈이 뭔지 아나?"

부산항을 내려다 보며 마주 앉은 노부부. 백발의 할아버지가 말을 건넨다. 할머니가 "뭔데요?"라고 조용히 묻는다.

6.25 난리때 큰 배를 얻어 타고 부산으로 피난왔던 할아버지는 오대양을 누비는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족' 때문에 꿈을 잊고 살 수 밖에 없었다.

흥남철수·파독·월남·이산가족찾기
4개 키워드로 푼 한 남자의 일생
황정민 20대서 70대까지 연기 돋봬

■전쟁통에 생이별 부친 "가장 역할하라"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은 포기해야만 했던 이 노인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막을 올린다. 그리곤 백발과 주름이 가득한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흥남. 중공군에 밀려 철수하는 미군은 군사장비를 버리고 피난민을 배에 태운다. 아버지와 막내 여동생은 끝내 배에 오르지 못해 가족은 생이별을 한다. 아버지는 어린 덕수에게 "니가 맏이니까 가장 역할을 하라"고 당부한다. 어렵사리 부산에 도착한 덕수네 가족은 전쟁통에서 고모가 운영하는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 창고 한켠에 겨우 잠자리를 마련한다.

어느 덧 성인이 된 덕수는 명문대에 입학한 남동생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파독 광부'를 자청해 떠난다. 때마침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됐던 영자(김윤진)와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덕수는 이젠 가정을 일구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막내 여동생의 결혼과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이번엔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 기술근로자로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TV에서 이산가족찾기 방송이 시작된다. 덕수네 가족도 잃어버린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기 위해 나서는데… 영화는 이렇듯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4개 키워드로 푼 한 평범한 남자의 일생

'해운대' 이후 5년만에 선보이는 윤 감독의 '국제시장'은 불과 2시간의 상영시간 임에도 펼쳐지는 이야기는 어마어마하다. 흥남철수와 서독, 월남, 이산가족 찾기 등 4개의 키워드로 풀어나가면서 각각이 영화 한편이라 느껴질 만큼 공을 들였다. 역사의 뒤안길에 접어든 이름없는 한 평범한 남자의 일생을 관통해 보여주기에 자칫 이야기가 복잡하게 그려질 수 있었지만, 윤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거대한 이야기를 부드럽게 담아냈다.

극초반 흥남철수 장면은 웬만한 전쟁영화 못지않게 스케일이 크다. 또 덕수가 파독광부 시절 광산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맞는 장면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지만 이곳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영자를 만나 풀어내는 러브스토리는 싱그럽다. 이어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 목숨을 내걸고 다시 가족을 위해 월남 전쟁터로 떠나야만 했던 고달픈 삶은 다시 눈물겹게 만든다. 이 와중에 정주영,앙드레김, 남진, 이만기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거인들이 우연처럼 스쳐 지나간다. 근현대사를 연신 스크린에 옮겨 담고 있어 마치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처럼 느껴진다.

최고의 명장면은 이산가족 상봉이 아닐까 한다. 1983년 6월 KBS TV에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타이틀로 방송됐던 이산가족찾기 현장을 스크린 속에 생생하게 재현해낸 것. 신파로 버무려낸 영화는 곳곳에 수없는 눈물폭탄을 심어놓았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기 위해 TV에 출연한 덕수를 통해 끝없는 감동을 자아낸다.

국제시장 JK필름 제공

■눈물바다 이루는 구구절절한 감동의 사연

'국제시장'은 한국 격동기의 고단한 삶 속에서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가족애, 그중에서도 부성애라는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피란길에 생이별해야 했던 가족의 비극과 식구를 위해 목숨을 내건 가장의 사투, 수십 년 만에 헤어진 동생과 만나게 되는 절절한 사연은 시종 눈물바다를 이룬다. 손수건 없이는 보기 힘든 영화다.

배우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독보적인 연기력을 과시해온 황정민이 20대부터 70대까지 한 남자로 변신해 한국전쟁 때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덕수 역을 맡았고, 국내는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윤진이 덕수의 동반자 영자 역을 통해 황정민과 연기호흡을 맞췄다. 또 덕수와 함께 하며 극에 생기를 부여하는 오달수의 감초연기는 살갑고 아버지 정진영, 어머니 장영남, 고모 라미란으로 이어지는 명품배우 라인은 극의 품격을 높였다.

영화는 '아버지' 혹은 '가장'이라는 이름에 짓눌려 있었던 덕수의 고단한 삶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현대사를 일깨워준다. 볼거리도 넉넉히 젊은 관객들의 구미에도 맞을 듯하다. 아무튼 기분 좋은 웃음과 애잔한 눈물이 공존하는 '국제시장'은 연말 연시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 같다. 17일 개봉.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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