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여자들 -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일과 삶>. 산지니 제공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명확한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 ‘여사님’, ‘아주머님’, ‘이모’ 같은 호칭이 일상이었다. 이들이 노동자로 인식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팽배했다. 2017년 한 정치인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에 대한 견해를 밝히며 ‘급식소에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 표현한 일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노동자로서 정당한 인식이 부족했던 탓에 1인당 수백 명의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업무 강도나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논의 역시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정다정 작가의 책 〈밥 짓는 여자들 -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일과 삶〉은 이러한 학교 급식 노동의 현실을 조명한다. 1990년대 학교 급식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시기부터 현재까지 급식 노동이 지닌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인식을 다각도로 짚어낸다. 특히 왜 학교 급식실에 기혼 여성이 많은지, 이들 노동이 사회적으로 어떤 시선 속에 놓여 있는지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급식 노동자의 딸이기도 한 정 작가는 직접 서울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배식 도우미로 일하며 현장을 경험했다. 책에는 급식 노동자의 일과가 시간대별로 촘촘하게 정리돼 있어 독자들이 현장의 노동 강도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책에 따르면 학교 급식은 처음부터 ‘괜찮은 주부 일자리’라는 성격을 띠고 출발했다. 1980~1990년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자녀 도시락 준비 부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 학교 급식이 확대됐다. 당시 정부는 집안일과 마찬가지로 요리를 한다는 점과 비교적 이른 퇴근 시간을 장점으로 내세워 전업주부의 재취업 기회를 강조했다. 실제로 2021년 기준 학교 급식 종사자의 여성 비율이 98%를 넘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출발점은 역설적으로 급식 노동을 ‘가사노동의 연장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 결과 노동의 전문성과 강도에 비해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는 것이 책의 지적이다. 인력 부족 속에서 업무 강도는 높아졌고, 현실적으로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점도 강조한다. 강한 소독제로 인한 화상, 수십 킬로그램에 이르는 식재료를 옮기며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 등 노동 현장의 위험도 조리실무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으로 전한다.
이 책은 문제 제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량 급식을 책임지는 조리실무사들의 전문성과 아이들이 먹는 음식을 만든다는 자부심도 함께 조명한다. 또한 노동조합 활동 등을 통해 노동 조건을 개선하려는 이들의 노력과 연대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다행히 지난 1월 29일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변화의 계기가 마련됐다. 법 개정을 통해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에게 ‘조리사’ 또는 ‘조리실무사’라는 공식 명칭이 부여됐다. 이들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노동자로 인정받게 되면서 향후 노동권 개선과 제도적 보호도 점차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학교 급식 조리사의 폐암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법원 판결도 잇따르고 있다.
정 작가는 좋은 급식 일자리를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학교 급식도 지속될 수 있다고 당부한다. 책은 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받아온 한 끼 뒤에 어떤 노동이 있었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든다. 정다정 지음/산지니/208쪽/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