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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광판 보러 해운대 간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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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채널을 돌리고, 유튜브는 건너뛰기라도 하면 된다. 해운대 ‘그랜드조선 미디어’ 앞을 지날 때면 대형 전광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옥외광고를 피하려 눈을 감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옥외광고는 시각적 스캔들(Visual Scandal)이다’라는 말 그대로였다. 디지털 기술로 급속히 발전한 요즘 옥외광고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 3월에 서울에서 열린 BTS(방탄소년단) 복귀 무대는 옥외광고의 경연장이자, 서울을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였다. 6월로 예정된 BTS의 부산 공연에서 우리 부산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궁금해진다.


‘미디어 타워’를 통해 해변에서 전시, 공연, 영화 감상이 가능해진다. 현대퓨처넷 제공 ‘미디어 타워’를 통해 해변에서 전시, 공연, 영화 감상이 가능해진다. 현대퓨처넷 제공

■광화문과 명동, 거대한 스테이지 변신

지난 3월 ‘BTS 컴백 라이브:아리랑’이 열렸을 때 서울 광화문 빌딩들은 무대를 둘러싼 배경이자 화려한 병풍으로 변신했다. 교보빌딩에는 ‘나에게서 시작한 이야기가 온 세상을 울릴 때까지’라는 메시지가 새겨졌다. 세종문화회관, KT 광화문빌딩,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광화문광장 주변 대형 옥외 전광판 10곳에는 공연 전후로 BTS의 메시지가 흘렀다. 공연장 인근에 사옥을 가진 대기업들은 BTS의 노래 가사를 활용한 대형 광고물로 응원에 동참했다. 공연 당일 일대의 대형 전광판은 일제히 보랏빛으로 변한 뒤 실시간 공연 모습과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은 미디어 아트를 내보냈다.


지난 3월 BTS 컴백 공연 당일 서울 광화문 일대 빌딩 대형 전광판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BTS 컴백 공연 당일 서울 광화문 일대 빌딩 대형 전광판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연합뉴스

광화문과 조금 떨어진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초대형 LED 스크린은 BTS 멤버들이 화면 밖으로 손을 뻗는 듯한 고화질 3D 아나모픽 영상을 상영했다. 3D 아나모픽은 착시 현상으로 인해 입체로 보이는 영상이다.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보이는 BTS 멤버들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명동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명동 곳곳의 ‘스마트 미디어 폴’에서는 팬들이 메시지를 남기면 화면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참여형 광고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가로등을 대신한 이 미디어 폴은 평소에는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 날씨 정보, 각종 행사 정보를 제공한다.

광화문과 명동은 2024년 1월 부산 해운대와 함께 옥외광고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됐다. 한국에도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영국 런던 피카딜리서커스, 일본 오사카의 도톤보리와 같은 세계적 광고 명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덕분에 BTS 공연 때 광화문과 명동의 옥외광고 자유표시구역은 서울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거대한 스테이지 역할을 했다.


■타임스스퀘어·도톤보리는 어떻게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새해맞이 행사 ‘볼드랍(Ball Drop)’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새해맞이 행사 ‘볼드랍(Ball Drop)’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뉴욕 타임스스퀘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고판이다. 하지만 이 타임스스퀘어도 1970~80년대 뉴욕에서 가장 위험하고 낙후된 구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타임스스퀘어의 부활은 광고판이 이끌었다. 1987년 뉴욕시가 이 지역 건물주들에게 ‘최소한의 밝기와 크기를 갖춘 광고판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라는 조례를 만든 것이다. 규제가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니 건물주도 반발할 이유가 없었다.

광고 자체가 관광 자원이 된 덕분에 타임스스퀘어는 경제 위기가 닥쳐도 화려한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2012년 미국 연방 정부는 “도로 미관법상 주요 도로변에 너무 큰 광고판은 불법이다”라며 타임스스퀘어 광고판을 철거하라고 압박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뉴욕시가 “이곳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이자 광고판은 뉴욕의 정체성이다”라고 맞서 예외를 인정받았다. 타임스스퀘어의 광고판 규제는 민관이 합의한 도시 브랜딩 전략이었다.


오사카 사람들은 도톤보리의 화려함이 상업 도시의 활력이라고 생각한다. 현대퓨처넷 제공 오사카 사람들은 도톤보리의 화려함이 상업 도시의 활력이라고 생각한다. 현대퓨처넷 제공

오사카 도톤보리는 달리고 있는 ‘글리코맨’부터 생각나는 옥외광고의 성지다. 일본의 도시들도 경관 보호를 위해 광고물의 크기나 색상을 엄격히 규제하지만, 오사카 도톤보리는 예외인 덕분이다. 오사카시는 2000년대 초부터 도톤보리 주변을 도시경관 형성 지역으로 지정했는데, 지정 목적이 뜻밖에도 도톤보리다운 화려함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오사카시와 지역 상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어떤 간판이 들어와야 도톤보리의 가치가 올라갈까’를 함께 고민했다.

빨강·노랑 등 원색 사용과 점멸하는 조명에 대해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고, 입체 조형물이나 움직이는 광고에 대해서도 당국이 적극 지원했다. ‘게 간판’이나 ‘북 치는 인형’ 같은 창의적인 광고물이 들어선 까닭이다. 도톤보리를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조명 밝기에 대한 제한도 풀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거리의 가로등 역할을 대신하도록 했다. 도톤보리의 화려함이 상업 도시 오사카의 활력이라고 본 것이다.


런던시는 피카딜리 옥외광고를 도시 재생 정책의 일환으로 본다. 현대퓨처넷 제공 런던시는 피카딜리 옥외광고를 도시 재생 정책의 일환으로 본다. 현대퓨처넷 제공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는 특정 브랜드들이 수십 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세계적인 옥외광고의 명소다. 윈스턴 처칠과 다이애나비의 장례식, 202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때처럼 국가적인 추모가 필요한 순간에는 불을 꺼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영국은 역사적 건축물 보존에 매우 엄격하지만, 피카딜리에 대해서는 상업적 활력을 위한 특별 통제 구역으로 정해 특수성을 인정한 것이다.

2017년에는 기존의 파편화된 광고판들을 하나의 거대한 곡면 LED 스크린으로 통합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역사적 장소라 반대에 부딪힐 수 있었으나, 런던시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유산’이라며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런던시는 대신 광고 상영 시간 중 일정 비율을 반드시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공익적 메시지에 할당하도록 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전광판에 상영해 광장 전체를 거대한 야외 미술관으로 바꾸는 식이다. 런던시가 피카딜리 옥외광고를 야간 경제 활성화와 도시 재생 정책의 일환으로 본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디어 타워’서 새해 카운트 다운 기대

부산시는 BTS 부산 공연이 열리는 6월 12일~13일 전후로 미디어파사드가 가능한 부산역의 미디어아트월과 광안대교, 그랜드조선 미디어 등 3곳에서 BTS 팬클럽 ‘아미(ARMY)’를 맞이하는 영상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운대와 광안리의 해변 두 곳이라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산에는 서울처럼 대기업 빌딩이 많지 않지만, 대신 바다가 있었다.

지난해 6월에 첫 공개된 그랜드조선 미디어는 이미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실제 구조대원을 모델로 한 3D 아나몰픽 영상 ‘세상에서 가장 큰 라이프가드’ 캠페인은 2025 대한민국 광고대상 옥외광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구남로, 해운대해수욕장 이벤트광장, 관광안내소 일대가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됐다. 부산시와 해운대구는 이 일대를 ‘해운대 스퀘어’로 명명하고 문화·예술·미디어가 어우러진 복합관광 공간으로 발전시켜 글로벌 관광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랜드조선 미디어의 ‘세상에서 가장 큰 라이프가드’ 캠페인은 2025 대한민국 광고대상 옥외광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연합뉴스 그랜드조선 미디어의 ‘세상에서 가장 큰 라이프가드’ 캠페인은 2025 대한민국 광고대상 옥외광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연합뉴스

그랜드조선 미디어에 이어 해운대해수욕장 입구에는 높이 29m, 폭 14.5m에 달하는 ‘미디어 타워’가 올해 말까지 세워질 계획이다. 미디어 타워는 광고판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해변에서 K팝 아티스트의 음악 공연을 보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실시간 반응도 보내 반영할 수 있다. 바다 바람을 느끼고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영화 감상도 가능하다. 타임스스퀘어나 피카딜리처럼 매일 특정 시간에는 예술 작품 전시도 준비 중이다. 해운대 해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콘텐츠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해운대 스퀘어 특수목적법인(SPC)인 해운대미디어플러스 이승철 대표는 “미디어 타워는 12월 24일에 점등해서 해운대의 랜드마크로 만들 계획으로 추진 중이다. 타임스스퀘어나 도톤보리처럼 지역 상권이 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해운대구 역시 해운대 스퀘어 활성화를 위해 지난달에 ‘대학생 해운대 스퀘어 미디어 탐사단’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연구원은 지난달 BDI 정책포커스 ‘선셋 투 선라이즈-부산의 새로운 태양, 나이트노믹스’를 발간하면서 “세계적 관광도시들은 나이트노믹스(Night-nomics) 정책을 통해 내외국인의 야간 활동을 유도함으로써 야간 관광 활성화 뿐만 아니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타임스스퀘어에는 유명한 새해맞이 행사 ‘볼드랍(Ball Drop)’이 있다. 해운대 구남로의 미디어 타워 카운트 다운으로 여는 2027년 새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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