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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어둠 속에서, 당신의 ‘시네마 천국’을 켜는 사람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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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전당 영사실 전경. 김준현 기자 joon@ 영화의전당 영사실 전경. 김준현 기자 joon@

1988년 개봉작 ‘시네마 천국’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직업이 있다. 바로 영화 상영을 담당하는 ‘영사기사’다. 영화관 뒤편,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미지의 공간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어린 토토가 된 마음으로 영사기사를 만나기 위해 지난 4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 7층에 위치한 영사실을 찾았다.

영화의전당 영사실은 4개 상영관 천장에 얹혀 있는 구조다. 한 공간에서 모든 상영관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설계다. 얼핏 공장처럼 보이는 영사실은 전체적으로 침전된 듯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상영관 쪽으로 난 창문 앞에 당당히 버티고 선 영사기만이 이곳이 영사실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한창 상영 중인 영화와 관객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영사기사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디지털 영사기(왼쪽)과 필름 영사기(오른쪽)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디지털 영사기(왼쪽)과 필름 영사기(오른쪽)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영화의전당에는 아직 필름 영사기가 설치되어 있다. 디지털 영사기로의 전환 속에서 필름 영사기를 고수하는 영화관은 이제 전국에 극소수만 남았다. 이는 고전 명작 등 원본 필름을 보존하는 ‘아카이빙’ 역할을 영화의전당이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전당은 현재도 연간 20~30편의 필름 영화를 상영한다.

“영화감독 중에는 여전히 필름 상영을 고집하는 분들이 있고, 관객 역시 필름 영화 특유의 플리커 현상(화면 떨림)과 잡음을 오히려 아날로그적 매력으로 느끼곤 합니다.”

필름 영사기 앞에서 설명하는 김대철 영사기사. 김준현 기자 joon@ 필름 영사기 앞에서 설명하는 김대철 영사기사. 김준현 기자 joon@
필름 영사기 앞에서 설명하는 김대철 영사기사. 김준현 기자 joon@ 필름 영사기 앞에서 설명하는 김대철 영사기사. 김준현 기자 joon@

이날 취재진을 맞이한 김대철 영사기사는 필름 영사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영사실 설명을 이어갔다. 영사기와 음향 장비 등 각종 정밀 기계가 즐비한 영사실은 항상 철저한 온도와 습도 관리가 필요한 민감한 공간이다. 적정 온도는 24°C, 습도는 40~50%로 유지된다.

온·습도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바로 ‘빛’이다. 영사실 내부의 불빛이 창문을 통해 상영관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사실 형광등에는 모두 암막 커튼이 꼼꼼하게 덧대어져 있다.

김 영사기사는 “영사실 창문의 빛 투과율이 얼마인지 아세요? 일반 유리가 80% 내외인 반면, 이곳에 쓰이는 광학 유리의 빛 투과율은 무려 99.9%에 달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높은 투과율 덕분에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단 하나의 손실도 없이 스크린에 도달해 선명한 이미지를 구현한다.

김대철 영사기사가 16mm 릴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김준현 기자 joon@ 김대철 영사기사가 16mm 릴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김준현 기자 joon@

영사실 한편에 보관된 릴. 김준현 기자 joon@ 영사실 한편에 보관된 릴. 김준현 기자 joon@

그는 한쪽 벽면에 보관된 ‘릴(Reel)’을 꺼내 보였다. 필름을 감아두는 원형 릴은 필름 크기에 따라 8mm, 16mm, 35mm 등 다양하다. 가장 대중적인 35mm 릴의 경우 약 15~20분 분량의 필름을 감을 수 있는데,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상영하려면 약 6~8개의 릴이 필요하다.

문득 장비의 가격이 궁금해졌다. 필름 영사기는 대당 2,000만 원 선이지만, 디지털 영사기는 7,000~8,000만 원에서 비싼 것은 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마저도 필름 영사기는 이제 생산이나 수리를 전담하는 업체가 없어, 고장이 나면 동네 전파사에 사정해가며 의뢰해야 하는 처지다.

영사실 탐방을 마치고 영화의전당 6층 매표소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낮 시간임에도 영화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로비를 채우고 있었다.

김대철 영사기사는 영화의전당 영사실의 최고참이다. 2005년, 24살의 나이로 영사 업무를 시작한 이래 벌써 2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충주 출신인 그는 특유의 정감 가고 매력적인 말투로 영사기사라는 직업의 세계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충주의 TTC 영화관이라는 개인 극장에서 보조기사로 첫발을 뗐어요. 워낙 영화를 좋아했고 영사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있었는데, 마침 채용 공고가 났죠. 막상 해보니 적성에 너무 잘 맞아서 아예 평생직업이 되었습니다.”

정식 영사기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자신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선배들 밑에서 도제식으로 혹독하게 교육받았다. 그는 “당시 분위기는 군대 문화와 참 비슷했다”고 회상했다.

그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은 “프레임 날리지 마라”였다. 과거 필름은 상영을 반복할수록 손상이 누적되는데, 상한 부분을 잘라내고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필름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영사기에서는 1초에 약 45cm의 필름이 지나간다. 즉, 45cm의 필름을 잘라내면 관객은 영화의 1초를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다.

“제작비가 수천억 원에 달하는 영화 ‘아바타’를 예로 들면, 단 한 프레임의 가치만 해도 수백만 원에 달합니다. 선배들이 프레임을 절대 날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이유죠. 이외에도 ‘항상 귀를 열고 영사기 소리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던 조언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긴 경력 속에서 필름이 끊어지는 아찔한 영사 사고도 몇 번 경험했다. 암전된 상영관 안에서 수백 명의 관객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영사실을 매섭게 쳐다보던 기억은 지금도 악몽과 같다. 그럴 때면 손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덜덜 떨렸다고 회고했다. 방송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스크린 앞으로 나가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등 다사다난한 세월을 통과해 왔다.

그가 처음으로 온전히 상영했던 영화는 무엇일까. 그는 “설경구 배우가 스모를 했던 영화였는데…”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2004년 12월 개봉작인 ‘역도산’의 포스터를 보여주자, 그는 “맞다, 이 영화다”라며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사기에서 상영과 동시에 필름을 되감아주는 역할을 하는 플래터.김준현 기자 joon@ 영사기에서 상영과 동시에 필름을 되감아주는 역할을 하는 플래터.김준현 기자 joon@

이후 그는 2010년에 영사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2012년 영화의전당에 입사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용관이라는 상징성과 당대 최고의 최신 장비를 다룰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를 부산으로 이끌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화려해 보이지만, 영화 ‘시네마 천국’의 늙은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일주일에 겨우 하루 쉬는 고된 일”이라고 말했듯 영사기사의 삶이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영사기사의 시간은 철저히 영화관의 시계에 맞춰 흐른다. 조조영화부터 심야 상영까지 영화관 시간표에 삶을 저당 잡혀야 하기에, 밤 12시를 넘겨 퇴근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불규칙한 교대근무로 생활 리듬이 깨지는 것은 일상이다.

특히 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시간’이다. 영사기사의 부재는 곧 영화 상영 중단이라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각 한 번으로 해고되는 동료를 본 적이 있다는 그는, 오전 출근인 날이면 밤새 흠칫하며 시계를 확인하는 직업병을 앓고 있다. 주변에서는 '영화를 실컷 공짜로 봐서 좋겠다'며 부러워하지만 이 역시 오해다. 개봉 전 영상과 음향의 이상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스크린을 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확인 작업'일 뿐 온전한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그 역시 온전히 영화를 즐기기 위해 쉬는 날 제 돈을 내고 극장을 찾는다. (그는 주로 페이크 다큐나 공포 장르를 좋아하며, 좋아하는 작품으로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꼽았다.)

그럼에도 이 고된 자리를 지키게 하는 힘은 결국 관객에게서 나온다. 영사기사는 매일 상영관을 돌며 최적의 밝기와 사운드를 세심하게 조율한다. 상영이 끝난 후 퇴장하는 관객들이 “이 극장은 화면이 정말 밝네”, “사운드가 압도적이다”라며 만족해할 때, 그간의 피로는 완벽한 보람으로 치환된다.

이 지점에서 그는 관객들을 위한 흥미로운 팁을 건넸다. 극장에서 영화를 가장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이른바 ‘명당’ 좌석의 비밀이다. 보통 영사기사들은 스크린을 기준으로 앞에서 3분의 2 뒤로 물러난 지점을 기준점으로 잡고 화면 밝기와 음향을 미세 조정한다. 따라서 이 중심선에 위치한 좌석이 영사기사가 의도한 최고의 영상미와 음향을 가장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최근 기술이 워낙 좋아져 아주 미세한 차이일 뿐이니 어느 좌석이든 편하게 즐겨도 좋다는 다정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김대철 영사기사가 필름을 검수하는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김대철 영사기사가 필름을 검수하는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김대철 영사기사가 필름을 검수하는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김대철 영사기사가 필름을 검수하는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김대철 영사기사가 필름을 검수하는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김대철 영사기사가 필름을 검수하는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시대가 흐르면서 영사기사의 업무 환경도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필름 시대의 상징이었던 필름 검수나 릴 교체 작업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추세다. 김 기사는 과거 필름 시대에는 전기, 공구, 기계 제어, 심지어 용접 기술까지 요구되어 영사기 고장 시 자체 수리가 필수적이었지만, 지금의 디지털 영사기 시대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한 IT 지식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먼 미래에는 영사기사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덤덤하게 전망했다. 현재 점차 도입되고 있는 LED 상영관을 언급하며, 디스플레이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면 ‘빛을 쏘는’ 영사기 자체가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뜻이다. 일반 가정의 대형 TV처럼 거대한 LED 디스플레이가 극장 벽면을 그대로 채우게 된다면 영사기도, 이를 다루는 사람도 필요 없게 될 것이라는 맥락이다. 스크린 뒤에 스피커를 배치할 수 없는 LED 디스플레이의 물리적 한계마저 극복하는 시대가 온다면, 영사기사라는 직업도 결국 추억으로 남지 않겠냐며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를 마친 김대철 영사기사는 설렘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상영을 기다리는 예매 관객들 사이를 지나, 그들이 마주할 마법 같은 2시간을 위해 다시 영사실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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