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8군 전용부두로 쓰이는 부산 남구 부산항 8부두. 김종진 기자 kjj1761@
국내 조선해양기자재 업계에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해외 함정 MRO(유지·보수·운영) 사업이 부산항 내 인프라 부족과 보안·통관 지원 체계 부실로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와 관계기관이 해외 함정 입항·정비를 위한 선석을 우선 확보하고, 부산항 수리조선단지 건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부산일보〉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부산항만공사(BPA)의 ‘캐나다 함정 입항 및 항만시설 선석 사용 요청에 대한 보고’에 따르면, 외교부는 주한 캐나다대사관을 통해 5200t(톤)급 캐나다 해군 호위함의 국내 입항과 항만시설(선석) 사용을 요청했다.
5200t급에 길이 147m에 달하는 캐나다 H함정은 다음달 2일부터 14일까지 13일간 부산항 감만 동측 공용부두에 접안해 수리를 진행하고 승조원 하선 및 관광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해당 보고 문건에 따르면, BPA는 감만 동측 부두가 ‘수리 목적’이 아닌 ‘하역(양·적하) 전용 부두’라는 이유로 선석 사용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보고 문건은 특히 올해 입항한 캐나다 군함 4척이 모두 해군작전사령부 백운포 부두를 이용했다는 점을 짚었다. 아울러 수리 범위가 외부 페인트 작업과 쿨러 정비 등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데다, 약 200명에 달하는 승조원의 하선 과정에서 보안 인력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의 MRO 선석 확보 협의도 잇따라 불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에는 국내 조선 빅3 가운데 한 곳과 부산항 우암부두의 MRO 사업 관련 선석 및 부지 사용이 협의됐으나, 국방부의 공식 사업 요청이 아닌 민간기업 차원의 요청이라는 이유로 진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옥주 국회의원. 출처: 송옥주 의원 페이스북
지난달에도 부산 감천항 서방파제 선석 사용이 논의됐으나, 전용 사용 주체인 한국선박수리공업협동조합(선기조합) 등과의 수리 일정 조율이 어려워 선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결국 BPA는 5200t급 캐나다 H함을 감만 동측 부두 대신 북항 8부두(미8군 전용부두)로 안내하고, 기존 캐나다 군함 수리를 위한 선석 요청과 같이 해군작전사령부와 협의하도록 안내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해군 당국은 해당 함정의 수리·정비 수준이 파악되지 않은데다 캐나다 해군과 사전 협의가 안 돼서 해군작전사령부 백운포 부두 선석을 장담하기 어렵지만,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송 의원 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함정을 대상으로 한 MRO 사업이 보안과 군사 협의뿐 아니라 인프라 부족에 따른 선석 확보의 어려움, 민·군 항만 기능 분리, 사업 주체 간 일정 조정 문제에 가로막혀 있는 셈이다.
최근 한미 조선협력 사업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비롯해 해외 함정의 국내 입항과 정비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조선산업의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함정 수리와 정비를 수행할 항만 인프라가 부족해 해외 MRO 시장 선점이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배정철 전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장은 “해수부와 부산시, 국방부 등이 부산항 내 해외 함정 입항·정비를 위한 전용 또는 공동 활용 선석을 확보하고, 보안검색·출입통제·군 당국 협의 절차를 표준화해야 한다”면서 “국정과제인 부산항 신항 수리조선단지 조성과 관련 법령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세계 수리조선 시장 규모는 2025년 388억 달러(54조 원)에서 2034년 585억 달러로 10.8배 성장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세계 선박 MRO시장의 40%를 차지하며, 미군 함정 MRO사업 예산은 연간 170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수리조선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3만t 이상의 우리나라 국적 대형선박의 93%가 중국·싱가포르에서 MRO를 진행해 기술 유출 우려를 낳고 있다.
해수부는 2028년 착공, 2033년 개장을 목표로 ‘부산항 신항 수리조선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수부는 총사업비 약 1조 5000억 원을 투입해 부산항 신항 남측(가덕도 백옥포) 일원에 3만t급 이상 대형선박 대상 수리조선단지를 민간투자(‘항만법’에 따른 ‘비관리청 항만 개발’ 방식)로 조성할 계획으로, 올해 2월 제안서 접수 후 사업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