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천우희는 영화 ‘우상’을 하고 오랜 시간 후유증에 시달렸다. 스크린 데뷔 15년 차에 연기 한계를 느꼈다. 재작년 촬영을 마친 뒤 꼬박 1년 동안 집에서 ‘숙고(熟考)’했다. 매 작품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이렇게 힘이 든 적은 없었단다.
그래서일까.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우희의 눈빛은 한층 깊어져 있었다. “극심한 성장통을 겪었어요. 혼자 있을 땐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죠. 아직도 완전히 빠져나오진 못했어요. 하지만 한층 성숙해진 것 같아요.”
각자의 우상 좇는 세 인물 이야기
한석규·설경구와 첫 연기 호흡
중요한 단서 쥔 여성 ‘최련화’ 역할
극단적 행동 표현 많아 어려움 겪어
연변 사투리·중국어 연습도 쉽지 않아
“강렬한 연기 성장한 모습 보여주고파”
영화 ‘우상’서 조선족 ‘최련화’ 연기
영화는 각자의 ‘우상’을 쫓는 세 인물이 한 사건으로 엮이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경남도지사 후보자와 아들을 잃은 뒤 진실을 쫓는 한 남자, 그리고 중요한 단서를 쥔 채 사라진 여자가 주요 캐릭터다.
천우희는 극 중 뺑소니 사건 이후 사라졌다 나타난 여자 ‘최련화’를 연기한다. 련화는 살아남으려면 한국 국적을 얻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연변에서 건너 온 인물.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복수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천우희는 이런 캐릭터에 대해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하면 할수록 강한 연민을 느꼈다”고 밝혔다. 상식 밖의 행동을 하고 극단적 면모도 갖고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눈길이 갔단다. 그는 “주인공이 살아온 삶을 보면 처절하고 불쌍한 느낌이 들었다”며 “인물의 말투와 행동 하나도 허투루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배우 천우희가 영화 ‘우상’에서 조선족 최련화로 변신해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파격적 외모 변신…
연변 사투리·중국어 ‘맹연습’
캐릭터 표현을 위한 파격적 외모 변신도 마다하지 않았다. 6개월간 눈썹을 밀었고, 조선족인 련화의 말투를 위해 연변 사투리와 중국어를 ‘맹연습’ 했다. 그는 “시나리오에 ‘눈썹이 없다’고 쓰여 있는 걸 보고 멈칫했다”며 “감독님이라면 특수 분장이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할 것 같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두렵기도 했지만 캐릭터에 잠식당한 느낌을 받아 “꼭 해야만 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중국어 대사 연습에는 석 달 정도 매달렸다. “촬영 때 눈썹을 밀고 집에만 있었어요. 감내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연변 사투리도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상황에 따라 억양이나 단어에 차이를 두기도 했죠. 개봉을 앞둔 요즘은 선생님께 숙제 검사를 앞둔 학생의 심정으로 살고 있어요.”
이 작품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밝혔다. 강렬한 인물을 숱하게 연기했지만, 이번에는 잔상이 크게 남았단다. 매 순간 열심히 달린 만큼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천우희는 “촬영을 마치고 1년 동안 휴식 시간을 가졌다”며 “존재의 가치와 연기의 목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유를 묻자 “연기의 한계를 제대로 느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감성적 연기를 경계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캐릭터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단다.
“연기 한계 제대로 느낀 작품”
천우희는 “그런 감정이 계속되니 모든 게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며 “작년 한 해 동안 다른 작품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연기 의욕도 떨어졌었다”고 조심스레 털어놨다. 하지만 그만큼 한 뼘 더 성장했단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석규, 설경구 선배와 호흡을 맞추며 연기 외적으로도 많은 걸 배웠다”며 “완벽한 연기를 바라기보단 연기하는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정해진 답은 없으니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 촬영도 많았지만, 당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양산부산대학교병원과 부산 백병원, 김해공항, 초량동 주택가 등에서 촬영했지만, 외적인 변신 때문에 거의 밖에 나가지 못했단다. “다음에 부산을 찾았을 땐 지역의 명소나 맛집을 가보고 싶어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좋은 작품에도 많이 출연하고 싶어요. 하하.”
남유정 기자 bstoda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