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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고시

4세 고시

기나긴 불황의 터널 속에서도 사교육 시장은 연일 호황이다. 지난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가 전년 27조 1000억 원 보다 7.7% 늘어난 29조 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저출산 여파로 학령 인구가 감소했지만 사교육비는 2조 1000억 원 증가한 것이다. 교육비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학생 10명 중 8명이 월평균 59만 2000원을 들여 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주일간 평균 사교육 시간도 전년 대비 18분 늘어난 7시간 36분에 달했다.더 심각한 문제는 취학 전 영유아들도 사교육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최근 ‘4세 고시’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4세에 불과한 아동이지만 유명 영어·수학 학원에 다니려면 예외 없이 레벨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레벨 테스트가 너무 어렵다 보니 4세 아동들이 부모와 함께 고시 수험생처럼 준비하는 세태를 빗댄 말이다. ‘7세 고시’도 있다. 영어 유치원을 졸업하는 7세 아동들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더 좋은 영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지난해 취학 전 아동을 위해 부모들이 지출한 사교육비는 총 3조 3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한 심리가 요즘 조기 사교육 열풍의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더욱이 정부가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해 실시한 늘봄학교 등의 효과가 기대를 밑돈 것도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의대 정원 확대의 여파는 강력했다. 자녀를 의사로 키우려는 부모들의 경쟁심이 사교육 시장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지적이 거세다. 실제로 학원에 ‘초등 의대반’이 개설돼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최근엔 ‘학원 뺑뺑이’ ‘4·7세 고시’ 등에 시달리는 미취학 아동들의 현실을 풍자한 ‘라이딩 인생’이라는 드라마까지 등장했다. 아동들의 학원 등원과 다른 학원으로의 빠른 이동을 위해 부모는 물론 조부모 세대까지 동원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드라마 속 맞벌이 부모들은 조건에 맞는 ‘등원 도우미’를 고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정부가 사교육 열풍을 잡겠다며 초고난도 문제인 이른바 ‘킬러 문항’을 폐지하겠다고 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정부 정책을 비웃듯 날로 기형화하는 사교육 시장이라는 초고난도 문제를 해결할 ‘킬러 정책’이 시급하다.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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