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뜻에 맞서겠다는 尹, 탄핵 방아쇠 스스로 당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오전 긴급 담화를 통해 퇴진을 거부하고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조치에 대해 “국정 마비의 망국적 비상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법적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 혼란의 모든 책임을 거대 야당에 돌리며 “범죄자 집단의 국정 장악을 막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도 했다. 구제 불능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불법을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일말의 반성도 없는 대통령의 정신착란적 현실 인식이 절망스럽다. 사실상 국민과 맞서겠다는 선언이니 탄핵에 의한 즉각적 단죄 말고는 다른 길이 없음이 명백해졌다. 이날 대국민 담화는 군색한 변명과 터무니없는 고집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계엄의 형식을 빌렸고, 질서 유지를 위해 소규모 병력만 투입했다고 한다. 명백한 불법 행위를 헌법적 결단으로 포장한 것인데, 내란죄를 회피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이미 계엄에 가담한 군 관계자들의 광범위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 장악 의도가 없었다는 것도, 선관위 시스템 점검 차원에서 계엄군을 투입했다는 것도 설득력 없는 결과론적 주장일 뿐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그 뒤에 극우 보수의 편협한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정치적 선동 수단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통탄할 노릇이다. 윤 대통령은 끝내 여당과의 관계도 단절하고 독불장군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된 이상 국민의힘도 더 이상의 혼란을 접고 분명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한동훈 대표가 12일 대통령 탄핵 찬성 의지를 밝혔는데, 또다시 흔들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당 의원들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14일 탄핵안 표결에 참석하도록 독려하는 게 중요하다. 권성동 의원이 원내대표로 새로 선출되면서 당내 갈등의 위기는 여전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향후의 불필요한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압도적 다수결로 탄핵안이 통과되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은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윤 대통령의 이번 담화는 본인의 잘못을 부정하고 끝내 국민을 우롱한 최종 변론이었다. 하야나 퇴진보다 탄핵 정국을 활용하는 게 시간 끌기에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린 게 분명하다. 헌법재판소 ‘6인 체제’의 허점을 이용하겠다는 심산도 엿보인다. 어찌 됐든 윤 대통령은 스스로 탄핵의 방아쇠를 당겼다.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은 이제 즉각 회수돼야 마땅하다.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는데, 그가 말하는 국민은 대체 누구인가. ‘즉시 탄핵’을 찬성하는 국민이 75%에 달한다.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는 탄핵으로 가고 있다. 조기 탄핵을 통해 국정 혼란을 속히 수습하고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사설] 하윤수 부산교육감 불명예 퇴진, 교육계 혼란 없어야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이 결국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대법원은 12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하 교육감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7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 교육감은 벌금 100만 원 이상이면 당선 무효가 되는 교육자치법 규정에 따라 직을 상실했다. 기소 후 2년여 만이다. 하 교육감은 2022년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사무소와 유사한 포럼을 만들어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선거 공보물에 학력을 졸업 당시 명칭인 ‘남해종합고’와 ‘부산산업대’ 대신 ‘남해제일고’와 ‘경성대학교’로 기재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와 저서 기부 행위 역시 유죄로 인정됐다. 하 교육감의 낙마는 1, 2심의 당선무효형 선고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리더십 공백으로 인한 교육 현장의 혼란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교육 수장의 불명예 퇴진은 부산 교육의 위상 추락과 파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5월 선고에서 민주주의 가치와 절차적 공정성을 학생에게 가르치는 교육 현장을 책임지는 교육감이 당선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을 회피할 방법만 모색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하 교육감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객관적으로 증명된 사실조차 외면하고 반성하지 않아 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게 재판부의 일관된 판단이었다. 부산교육청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내년 4월 재선거까지 업무 차질이 우려되고 어떤 인물이 새 교육감이 되느냐에 따라 교육행정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어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당장 하 교육감이 역점을 두어 추진했던 사업들에 대한 차질 우려가 나온다. 학력 체인지, 아침 체인지, 실업계고 체제 개편, 부산형 늘봄학교, 특수학교 전면 재배치 같은 주요 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는 하 교육감의 사과와 하윤수표 정책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교육계와 학부모 공감을 얻고 있는 부산형 늘봄학교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부산 교육발전특구 사업 등은 차질 없이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부산교육청은 최윤홍 부교육감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되고 내년 4월 2일 재선거를 통해 새로 교육감을 뽑아야 한다. 벌써 자천타천으로 10여 명의 후보가 거론되는 등 선거에 관심이 쏠린다. 문제는 새 교육감 체제 출범 전까지 리더십 공백과 교육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정책과 관련해서는 중요도나 성격에 따라 필요한 조치들이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일상적인 교육 현장에 대한 지원과 관리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부산발 교육혁명을 통해 균형발전에 힘을 모아야 하는 중대한 시기에 교육감 공백은 뼈아픈 일이지만 충격을 최소화하고 새출발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설] 국정 불안 해소·경제 위기 극복만은 여야 머리 맞대라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계엄 사태로 한국 민주주의가 불확실성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불행히도 이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12·3 내란 사태 후폭풍은 국정을 마비시키고 경제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정상 국가의 징표인 외교·안보는 사령탑이 공석이 된 채 표류하고 있다. 정정 불안을 이유로 일본 정부가 셔틀 외교 중단을 선언했고, 미국도 북한 비상시 대응 태세를 우려하는 지경이다. 기업 활동과 물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환율은 고삐가 풀린 듯 치솟고 있다. 국가 시스템을 시급히 정상화하지 않으면 자칫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계엄 사태로 인한 국정 난맥은 경제에 먹구름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투자 심리 위축의 최대 변수인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고 있어서다. 주식시장은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 사태로 요동치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외환 시장이다. 달러 대비 환율의 심리적 저항선 1400원이 무력화되고 1450원을 넘어설 기세다. 외환·금융위기 이후 첫 ‘위기 환율’인 데다 외환 보유액마저 감소한 상태여서 아찔한 현기증이 인다. 고환율이 지속되면 기업은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고, 물가는 치솟아 서민 생계가 고통을 받게 된다. 12·3 내란의 출구 전략에서 불확실성의 제거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서민 생계도, 국가 경제도 삭풍에 떨고 있다. 연말 성탄 특수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외식·여행업계 등에서는 예약 취소와 연기가 줄을 잇고 있다. 고물가·고금리에 이은 고환율의 삼중고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해외 신용평가사들도 한국 경제 전망을 잇따라 낮춰 잡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내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와 무디스 역시 ‘국가 신용도와 원화 자산 선호도에 부정적’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정정 불안이 민생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해법은 국정의 정상화뿐이다. 여·야·정은 당리당략에 매달리는 구태를 재연하지 말고 위기 극복을 위해 나서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무위원 21명 중 6명을 이미 탄핵했거나 추진 중이다. 국무회의 의사·의결정족수를 위협하는 수준이라 국정 혼란 수습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을 새겨야 한다. 반면 민주당은 ‘여·야·정 3자 비상경제 점검회의’를 먼저 제안했다. 시의적절하고 바람직하다. 국민의힘 역시 대선 시기의 유불리를 따지면서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위기 극복에 대승적으로 나서야 한다. 여·야·정에 있어 최우선 순위는 혼란 최소화와 불확실성 제거다. 국정 혼란을 틈타 정치적 이득만 챙기려는 세력은 국민이 심판한다. 대한민국 정상화에 매진하라. 그것만이 국익을 지키고 민생을 보호하는 길이다.
[밀물썰물] 자영업자의 눈물
자영업자는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의 다른 말이다. 노동의 대가로 사용자한테서 임금을 받는 직장인과 구별해 비임금근로자라고도 부른다. 자영업의 역사는 고대문명 초기인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시장 상인들은 물건을 팔고 장인들이 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했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 번성한 상인 길드와 장인 길드를 각각 조직한 상인과 수공업자들도 자영업자다.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 자영업자는 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늘기 시작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에 힘입어 식당, 상점, 서비스업 등 다양한 업종에 걸쳐 급증했다. 경제발전의 주축인 대기업에 일자리가 충분치 않아 수많은 사람이 진입장벽이 낮고 창업이 손쉬운 자영업을 생계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낳은 대규모 실업 사태는 자영업 비중을 크게 키웠다. 현재 국내 자영업자는 577만 명으로 영국(13.8%), 미국(6.6%)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23.5%)을 보인다. 자영업을 ‘한국경제의 실핏줄’ 또는 ‘서민경제의 근간’으로 표현하는 이유다.반면 자영업은 불황이 닥치면 매출 부진에 시달리다 폐업하는 영세 업자가 속출하거나 은행 대출금으로 근근이 버티기 일쑤다. 지난해 내수 침체로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만 100만 명에 달한다. 요즘 거리에서 빈 점포를 쉽게 볼 수 있다. 올 3월 기준 자영업자 335만 명이 1112조 원의 대출을 안고 있다. 연체액도 13조 원 규모다. 국가 경제에 부담 요소다. 앞서 자영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엄격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자 손님이 끊겨 줄도산하며 엄청난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은 텅 빈 매장을 보며 생존의 갈림길에서 눈물을 쏟았다.12·3 비상계엄 탓에 자영업자들은 또다시 위기에 처해 울상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국에서 크고 작은 행사와 모임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어서다. “탄핵·퇴진 집회 참여”, “회식하기에 눈치 보여”, “술자리서 정치 얘기로 싸울 게 뻔해” 등의 사유다. 숱한 자영업자가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대출이자조차 갚기 힘든 상황인데 연말 특수는커녕 계엄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계엄령 하루 전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열어 자영업자와 골목상권 지원을 약속한 터라 자영업자로서 느끼는 분노는 상당하다. 생계난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하루빨리 국정을 정상화해 국가 안정을 되찾는 것밖엔 답이 없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
논설실장
강병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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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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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
임광명
정달식
[정달식의 일필일침] 지금 이 순간, '시민 불복종'이 답이다
“불의한 정부가 또 다른 불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요구한다면 나는 법을 어기라고 말하는 바이다.” 이는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저 〈시민 불복종〉에 나오는 말이다. 현대 민주국가는 법에 따른 지배를 확립하면서 공정성과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정의로운 국가를 보장할 수는 없다. 불의한 정부가 등장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시민 불복종’은 종종 정부의 부당한 요구와 명령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쓰인다. 이 책이 출간된 지 170여 년이 지났지만, 소로의 말은 최근의 ‘12·3 비상계엄’ 정국과 맞물려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뜬금없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국회의 신속한 대처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위헌적이고 위법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특히 윤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 계엄군을 투입해 국회의원들을 밖으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는 부조리한 국가권력에 의한 사실상의 헌정 유린이었다. 일부 국무위원과 군, 경찰 고위 관계자들은 이러한 불의에 동조했으며 여당 의원들 또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은 지난 7일 대다수 여당 의원의 표결 불참으로 무산됐다. 대통령의 위헌적 행동에 대해 국회가 탄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여당 의원은 당파에 갇혀 이를 거부했다. 그들은 국민 대신 대통령을 택하고, 권력의 그늘로 숨어들었다. 14일 오후 윤 대통령 탄핵안이 다시 표결에 부쳐진다. 국민의 눈과 귀가 온통 여기에 쏠릴 것이다. 표결 무산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당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상황 인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2일 계엄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그는 “헌정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비상조치였다”라고 했다. 스스로 탄핵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권력을 뺏긴 걸 더 오래 기억한다”고 했다. 이게 권력의 속성이지만 여당은 알아야 한다. 여전히 정권이나 국가권력을 지키려 한다면, 오히려 당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국민의 시선은 차갑고 따갑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라 했다. 죽기를 각오해야 그나마 당이라도 존립할 수 있다. 소로는 “개인에게 양심보다 다수가 우선이라면 도대체 양심을 무엇에 쓰라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양심적인 인간이다”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여당 의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이다. 헌법 제46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에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대통령이 위헌적인 계엄을 선포한 지금, 여당 의원들이 정당법을 들먹이며 당론 뒤에 숨는다면 이는 진정한 입법기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당론이 불의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거나 불의한 결정이라면 소로의 말처럼 자신의 양심을 되돌아봐야 한다. 만약 이래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계엄령 발령 후 불법과 불의에 대항해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 국회 앞에 집결한 시민들은 군경과 그들의 차량을 저지하며 저항하지 않았던가. 여당이 윤 대통령에 기대어 새로운 국면 전환이 있기를 은근히 바란다면, 이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설령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주장하듯이 소위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지킬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했다 하더라도, 이미 그것이 국격의 추락과 이로 인한 국민의 상처와 아픔을 상쇄할 수는 없다. 국민을 처단의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것 자체가 지도자의 자격을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탄핵 표결 불참이나 탄핵 반대는 자살골에 불과하다. 여당이 미적거리더라도 결국 시간에 달렸지 탄핵을 피할 순 없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국가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며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국민들의 관심 속에 2016년 잠시 귀국한 자리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시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이 순간, 그 시민의 자세가 여당에 절실히 필요하다. 앞서 안철수 의원처럼 양심에 따라 소신투표를 해야 한다. 개인의 양심과 헌법적 책임, 그리고 국민에 대한 진정한 책임감으로 말이다. 다가오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여당 의원들이 양심을 따르기를 바란다. 불의·불법에 복종한다면, 당의 미래도 없다. 나아가 여당은 이 정국을 만든 것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 더 늦기 전에 대국민 사과도 해야 한다. 이게 느닷없이 갇혀버린 ‘윤석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다.
[김은영의 문화시선] 기관장 인사 구태 반복되나
연말 뒤숭숭한 정국만큼이나 부산 문화계도 어수선하다. ‘2+1 책임 임기제’를 통해 내년 1월 중 3년 임기가 만료되는 이미연 부산문화재단 대표와 김진해 영화의전당 대표 후임에 박형준 시장 선거캠프 출신의 A 씨와 B 씨 기용설이 돌고 있다. 박 시장 임기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문화 공공기관장에도 ‘보은 인사’ 논란이 재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기초지자체 문화예술회관인 부산 사하구 을숙도문화회관 홍희철 관장은 이달 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지만, 사하구는 후임을 찾는 개방형 직위 임용 공고를 내지 않아 4년 만에 ‘도로’ 공무원 체제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산적한 문화예술행정 현안과 발전 없는 부산문화는 결국 비전 없는 인선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푸념마저 나오고 있다.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문화재단과 영화의전당 대표는 현직 재도전 의사를 주위에 공공연히 알렸으나, 최종적으로는 2명 모두 차기 대표 인선에 응하지 않았다. 박 시장 측근이 거론되면서 두 사람도 재도전 의사를 접었다는 전언이다. 현재 두 기관은 A·B 씨 등 새롭게 지원한 후보를 대상으로 서류 심사와 면접 등 임원추천위원회 절차를 밟고 있다. 내주께 최종 후보자 2배수를 박 시장에게 천거할 것으로 보인다. 사하구는 지난여름 을숙도문화회관 홍 관장에게 올 12월 말로 4년 임기를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이후 사하구는 후임 인선 공고를 내지 않았을뿐더러 최근 〈부산일보〉가 입수한 2025년도 본예산 예산안 중 행정운영경비(을숙도문화회관)에 지난해까지 포함됐던 관장 인건비가 몽땅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무늬만 개방형 직위제를 유지한 금정문화회관장 임명에 이은 전면 폐지인 셈이다. 홍 관장은 2021년 사하구가 을숙도문화회관장을 개방형 직위 공모로 바뀌면서 처음 선임된 지역 예술인(지휘자) 출신 관장으로 기대를 모았다. 홍 관장에 대한 지역 사회의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어렵사리 도입한 개방형 직위가 구청 공무원 보직으로 원상복구 된다는 점은 애석하다. 퇴임을 얼마 안 남기고 사무관으로 승진한 공무원의 무사안일 보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 문화예술인은 “문화는 스스로 자라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의 공력으로 이루어지는 분야”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일반 공무원이 아닌, 예술전문행정가를 기용하는 이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단순히 예술과 관련된 사무 행정 업무를 본다는 의식구조를 획기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부산문화 발전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문화예술 발전에 대한 미래 전망은 제대로 된 인선이 출발임을 명심해야 한다.
[배학수의 문화풍경] ‘철학의 위안’, 최악을 상상하기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책 읽기에는 겨울이 더 좋다. 겨울은 날씨가 추워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밤의 길이가 길고, 나뭇잎이 떨어진 정원의 적막함은 독서에 적합한 분위기를 만든다. 특히 12월 중순부터는 새해를 계획하며 삶의 성찰이 일어나는 시기인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색적 저술을 찾게 된다. 그러나 전문적 철학은 너무 어려워 조금 읽다가 말아버리고, 대중적 저술은 너무 깊이가 얕거나 일방적 시각에 치우쳐 있다. 반면 알랭 드 보통은 철학과 심리학, 예술사를 섞는 독특한 방식으로 소설이나 에세이를 써서 독자의 이해를 도우면서도 더 깊은 사고를 자극한다. 대표적 저술은 1993년의 〈사랑의 에세이(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철학의 위안〉(2000), 〈불안〉(2004),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2012) 등인데, 오늘 소개할 책은 〈철학의 위안〉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위대한 철학자 6명의 지혜를 통하여 독자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제1장 ‘인기 없음의 위안’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활용하여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안내한다. 제2장 ‘가난의 위안’은 돈이 부족하면서도 만족하는 인생을 어떻게 영위할 수 있는지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통해 설명한다. 제3장 ‘좌절의 위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하여 분노하거나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을지 스토아주의 철학자 세네카의 지혜를 통하여 인도한다. 제4장 ‘부적합성의 위안’은 몽테뉴의 통찰을 통해 비정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문제를 극복하도록 안내한다. 제5장 ‘실연의 위안’은 쇼펜하우어의 삶-의지 개념을 활용하여 연애 관계에서 거절당한 사람이 왜 가슴 아플 이유가 없는지를 설명한다. 제6장 ‘난관의 위안’은 니체의 사상을 도입하여 삶의 고통과 대결하는 자세를 안내한다. 최근 한국 사회는 격변을 경험하고 있다. 현대의 다수결 민주주의는 사실은 다수의 통치여서 다수의 국민과 소수의 국민은 늘 이익과 감정이 충돌한다. 선거나 탄핵과 같은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때, 다수의 승리자는 그들의 신념과 이익을 옹호하는 정책이 시행되어 즐겁지만, 패배한 소수는 통치로부터 소외되어 좌절하고 그것이 불안과 분노를 일으킨다. 정치적 경쟁에는 승패가 반드시 따라오므로 어느 쪽이 이기든 다른 한편은 좌절의 시련과 싸워야 한다. 이런 시국에서는 제3장 좌절의 위안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프랑스의 화가 다비드는 1773년에 그린 ‘세네카의 죽음’에서 서기 65년 로마 황제 네로의 명령에 따라 자살하는 세네카의 마지막 장면을 묘사한다. 세네카는 황제를 몰아내려는 반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화면의 중앙 왼편에 세네카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고, 의사는 세네카의 발목과 무릎 후면의 정맥을 절단한다. 그래도 피가 상처로부터 잘 나오지 않자 세네카는 왼손을 뻗어 의사에게 독약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다. 화면 중앙 오른쪽에는 아내 파울리나가 남편과 함께 죽기 위해 역시 칼로 정맥을 자르는 장면이 나온다. 죽어가는 세네카와 아내의 표정은 억울함이나 슬픔, 고통을 넘어서 당당하다. 이런 흔들림 없는 정신의 덕성을 도야하는 것이 스토아 철학의 이상이다. 세네카는 이전에도 재앙을 겪었다. 서기 41년 공주와 간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코르시카섬으로 유배되어 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그런 좌절 속에서도 그는 평정의 자세를 유지하였다.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윤리 서한〉의 ‘편지 91’에서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재앙을 맞이하면 충격이 훨씬 강렬한데, 그 예상하지 못함이 불운의 무게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실제로 일어날 것처럼 미리 그려봄으로써 다가올 재앙으로부터 해악을 제거할 수 있다.”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나쁜 상황을 미리 상상하는 훈련이 바로 스토아주의의 ‘최악의 예상(premeditatio malorum)’ 개념이다. 이것은 염세적 사고나 단순한 부정적 사고가 아니라, 다가올지도 모를 불운한 사건들을 미리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대책을 준비하는 기회를 일으키거나, 죽음이나 노화처럼 대책이 없는 문제에서는 당당하게 재앙을 맞이하게 하는 용기를 준다. 최악의 예상은 비관적 사고가 아니라 건설적인 부정적 사고인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철학의 위안〉에서 철학자들의 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었으며 엄격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점은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그런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이 책은 전통 철학에서 실천적 지혜를 추출하여 현대의 관심에 응용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공감] 어떤 고백
그는 몇 년간 아내를 간병하는 것으로 보냈는데, 아내가 희귀병에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목덜미로 훈풍이 불어와도 봄을 느끼지 못했고, 산이 꽃으로 뒤덮여도 예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목련꽃 향기가 거리를 적실 때도 처음 그 향기를 맡았을 때의 설렘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한여름 소나기가 마른 땅을 때리며 먼지를 일으킬 때도 시원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천지가 붉은 빛깔로 물들어 산 위를 흐르는 바람조차도 빨갛게 물들어 적적하게 우는 가을이 되어도, 그는 들국화처럼 처연한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눈 덮인 하얀 산을 바라보아도, 북풍을 버티고 선 헐벗은 나목들을 보아도 그 담백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간병 기간 동안, 그녀와 둘이서 차로, 비행기로, 기차로 수없이 서울로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 길에, 구름이 한가롭게 떠다니는 가없는 하늘과, 게으른 소처럼 길게 누워 하품하는 산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점점 여위어 가는 아내의 모습뿐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그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긴 한숨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떠났을 때, 그는 세상을 잃어버린 것처럼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참혹하도록 슬픈 모습이어서, 그가 정말 그 여인을 사랑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의 죽음 후, 그는 생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의 아내가 처녀 때 찍은 사진들을 들추어 보면서, 그녀가 수줍음을 많이 타는 복스럽게 생긴 소녀였다거나, 그녀가 끄적거린 낙서장을 보면서 그녀가 생각보다도 훨씬 보수적이면서도 친구들을 몹시 좋아하는 사교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 등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가 없는 부엌을 기웃거리면서, 그녀의 부엌은 없는 것이 없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공간이었다는 사실, 집안 곳곳이 비상시를 대비하여 온갖 것들을 꼼꼼하게 숨겨 놓은 비밀 창고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녀가 집이라는 공간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새삼 확인하는 일 등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생전에는 그런 것들을 전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런 것들을 알아차려 가면서, 그녀의 삶이 그와 그 가족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지키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함께한 세월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들추며, 아련함과 슬픔,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그리움에 빠져들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가 매우 센티멘탈한 남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만 빠져나오게! 세상은 이렇게 밝은데 자네는 뇌 속에 저장된 그 어두운 기억 속에서 헤매고 있네.” 그러나 그는 말했습니다. “아니!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할 수 없네!” “무엇이 그리 미안한데?” 그는 좋은 남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온전히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야! 사랑한 척한 거야! 온전히 집중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 나는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다른 상상을 하곤 했어. 마음에 다른 무엇을 상상하면서도 같이 밥 먹고 같이 자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던데, 내가 그랬던 거야! 적어도 함께 사는 동안은 그 한 사람이 전부여야 하는데, 나는 온전히 하나이지 못했어!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줄 알았겠지, 내게 속은 거지…. 아니 어쩌면,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속아 주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 그는 아내에게 사랑을 빚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최고의 대학 미술관, 하버드 미술관
미국 동부의 주요 도시를 목적지로 예술 여행을 할 경우는 보스턴을 시작으로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까지 4개 도시를 엮어서 가는 경우가 많다. 4개 도시 모두 미국을 넘어 세계 정상급 관현악단을 가지고 있으며, 최고의 국공립 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이 있고, 보유한 컬렉션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일정을 조금 더 보태면 보스턴 인근 대학 도시 케임브리지에 소재한 하버드 미술관이다. 단순히 대학 미술관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동부 아이비리그 중에서도 최고 명문인 하버드 대학이 소장하는 컬렉션은 상상 이상이다. 하버드 미술관은 1895년 설립된 포그 박물관을 비롯해 1903년 설립된 부시-라이징거 박물관, 1985년 설립된 아서 M. 새클러 박물관 등 세 곳으로 구성돼 있다. 컬렉션은 고대부터 중세에 이어 현재까지 서양 회화, 조각, 장식예술, 사진, 판화 드로잉 등 약 25만 점에 이른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영국 라파엘 전파, 19세기 프랑스 미술이 돋보인다. 모리스 베르트하임 컬렉션은 폴 세잔,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마티스 등의 걸작으로 구성돼 언제나 붐빈다. 2008년 하버드 미술관은 대규모 리노베이션 및 확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파리 퐁피두센터를 디자인 한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맡았다. 포그 박물관, 부시-라이징거 박물관, 아서 M. 새클러 박물관 3개를 통합해 갤러리 공간을 40% 넓히고, 유리로 된 피라미드 지붕을 추가한 아트리움은 자연채광이 내부로 들어와 중정 이상의 효과를 낸다. 전체 5층으로 되어 있는 미술관 지하부터 3층까지는 컬렉션 갤러리로 전시하고, 4층과 5층은 미술 연구센터와 보존센터로 학술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했다. 더욱 인상적인 건 하버드 미술관의 웹사이트(harvardartmuseums.org/collections)이다. 24만 4960작품 전부를 데이터베이스 했다. 작품 유형, 기간, 장소, 시기 등으로 필터링된 검색엔진을 사용해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이미지만 제공하는 도록보다 훨씬 입체감 있는 시각 자료와 출판물을 만날 수 있다. 모든 콘텐츠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오픈했다. 하버드 미술관 소장품 대부분은 각계각층의 동문과 주요 컬렉터가 기부한 작품이다. 철저한 자본주의로 점철된 미국 사회이지만, 기부 문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공익 역활을 한다. 하버드 미술관은 최근 방문한 어떤 미술관보다 인상적이었다. 덤으로 미술관 옆 건물 카펜터 시각예술센터는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미국 내 남긴 유일한 건물이어서 건축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하는 학도라면 필수 방문 코스이기도 하다.
[논설위원의 시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12·3 비상계엄
소설가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공식 시상식에 참석해 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바로 일주일 전, 한국인은 역사의 창고에 폐기된 줄 알았던 비상계엄의 망령을 목도했다. 45년 세월의 공백을 일순 무너뜨린 현실의 비현실성 앞에 2024년 끝자락을 힘겹게 통과하던 국민들은 몸서리쳤다. 한강 작가와 12·3 사태는 ‘계엄’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을 통해 매개된다. 1980년 계엄군에 짓밟힌 광주의 아픔을 아로새긴 〈소년이 온다〉는 폭력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로 세계적 보편성 차원에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소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소설을 방불케 하는, 믿기지 않는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에 대해 생각해 본다. ■ 되풀이되는 비극의 역사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프랑스 혁명을 다룬 칼 마르크스의 저작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언급된 이 말을 ‘한 번은 비극적 종말, 또 한 번은 행복한 결말’로 해석한다면 커다란 오해다.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1799년 쿠데타를 모방해 1852년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을 역사의 우스꽝스러운 광대극으로 비꼰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폭거를 저 경구에 비춰본다면? 아직은 비극이 될지, 소극(笑劇)이 될지, 해피엔딩이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느덧 2024년 달력의 마지막 페이지. 내년이면 2025년 을사년이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대한민국에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계엄 시도가 있었다는 현실은 세월의 착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계엄.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군대를 동원해 행정권과 사법권을 통제하는 비상조치를 가리킨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모두 13차례였다. 광복 후 국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였던 1950년대와 군사정권 시절인 1960~70년대에 주로 집중됐다. 대부분의 계엄 조치가 권력 유지나 정적 숙청을 위한 불순한 목적이 대다수였다. 그럴 때마다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용도로 악용됐으니 역사의 어두운 그늘이다. 특히 주목되는 시대는 박정희 군사정권이다. 자신의 권력 행사에 국민적 동의가 뒤따르지 않자 1970년대 내내 비상상황을 강조했다. 정당성이 부족한 정치집단이 국가적 위기를 명분 삼아 내세우는 것이 ‘비상사태론’이다. 그 뒤에는 공포를 조장해 권력을 이어가려는 탐욕이 숨어 있다. ‘영원한 긴급상황’ 개념이 그렇게 도출됐다. 국민들의 삶과 이성까지 옥죄고 정치를 한참 후퇴시킨다는 점에서 역사적 범죄에 가깝다는 게 학자들의 평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됐던 계엄의 시기는 1979~81년으로 기록된다.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권력 공백을 틀어쥔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그해 10월 27일부터 무려 440일간 비상계엄을 지속했다. 그 한복판에서 빚어진 비극이 5·18이다. ■ 폭력에 대한 한강의 성찰 7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총리가 긴급 담화를 발표하던 즈음,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이 진행됐다. 비상계엄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던 10일, 한강은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식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작가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메달을 품에 안았다. 한강은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던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비극에 깊이 천착해 온 작가다. 따라서 2024년 12월 3일 자행된 국가폭력 앞에서 한강의 문학을 떠올리는 것은 더없이 자연스럽다. 2014년 작 〈소년이 온다〉는 계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소년의 삶과 고뇌를 다룬다. 작품 곳곳에 광주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절절히 배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대신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소년의 시선과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취한다. 소설의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나’는 한강과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는 제목은 주체로서의 현재형을 의미한다. 5·18은 계속되고, 광주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올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2021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도 ‘종료’될 수 없는 역사의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한강의 다른 작품들 역시 역사적 사태를 배경 삼아 인간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작품들을 관통하는 근원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폭력으로 이뤄진 세상을 견디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고뇌에 문학의 핵심이 있다. ■ 진정성의 정치는 가능한가 12·3 비상계엄은 한강이 문학을 통해 고발했던 그 옛날 국가폭력의 양상과 다르지 않았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고 쥐여준 권력과 총칼이 국민을 향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가 시도됐다는 사실은 오히려 더 큰 충격이다. 이번 계엄 폭거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선한 정치, 진정성의 정치는 가능한가. 막스 베버는 가르친다. “정치의 중요한 수단은 합법적 폭력이며,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선한 정치를 믿는 것은 정치의 본질을 모르는 위험하고 순진한 일이라는 것이다. 정치 행위는 그 의도와 달리 결과가 어긋나기 일쑤이고 심지어 정반대로 흐른다. 이것이 ‘정치의 비극성’이다. 정치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베버가 말한, 다음과 같은 정치적 소명 의식을 가진 정치인이 필요하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살아 있는 시민정신, 축적된 민주주의의 힘이 이를 견인해야 한다. 이런 정치적 소명이 온 세상을 물들일 때 국가폭력의 반복을 막을 수 있으리라. 마침, 오늘은 5·18 비극을 잉태한 12·12 군사 쿠데타 45주년 되는 날이다. 역사에 이성의 간지(奸智)라는 게 있다면, 소설과 현실이 만나는 이 역사적 아이러니는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일까. 모든 우주는, 그리고 그 속의 개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사건은 총총한 그물로 연결된 개인, 공동체에, 그리고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강 작가의 인식론이 이와 유사하다. 개인의 삶에 관여하는 역사의 비극을 아프게 살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어떤 형태로 최선을 지향해야 할까. 후세에 어떤 미래, 어떤 사회를 물려줄 것인가.
국민의힘 원내대표 비서실장에 김대식…원내대변인에 서지영
[하윤수 부산시교육감 중도 퇴진] 동력 잃은 하윤수표 공교육 바로세우기
14일 ‘2차 탄핵’ 표결인데… 윤 담화에 쪼개진 국힘
부산 국힘 조경태만 '탄핵 찬성'… 나머지 16명은 침묵
[차기 부산시교육감 후보군] 기다렸다는 듯이… 자천타천 10명 안팎 후보 거론
부산 핵심 예산 지켰지만 새 사업 ‘빨간불’
[사랑의 징검다리] 실직 후 암 진단에 우는 옥미 씨
“쿠팡발 속도 경쟁 위협” 택배 3사 노조, 파업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