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형선망 해산 위기 연근해어업 살릴 대책 급하다
대형선망조합(이하 대형선망)이 해산 위기에 직면했다. 대형선망은 대한민국 고등어 생산량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수협이다. 이 조합이 해산되면 수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한다. 최근 대형선망수협의 한 개 선단이 해양수산부의 자율감척사업에 선정됐다. 이에 조합원 수가 15명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 발생한 대형선망 어선 사고로 조합원 1명이 추가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수협법에 따라 강제 해산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조합이 해산 직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위기를 맞은 대형선망은 어획량 감소와 노후화된 선박, 과도한 규제 등 복합적인 문제로 파산 직전까지 몰리고 있다. 대형선망은 연근해어업의 근간이다. 대형선망의 해산 위기는 단순히 조합의 해체를 넘어 연근해어업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대형선망 고등어 선단 해산으로 수백 명의 고용 안정이 위협받게 된다. 한 선단이 연간 15만~20만 톤의 고등어를 잡아들여 평균 150억~2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는데,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00명이 넘는다. 선단의 해체와 함께 중도매인, 항운노조원 등 배후 인력까지 실직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형선망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 붕괴는 지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를 해결할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문제는 대형선망의 해산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에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불합리한 규제다. 업계에서는 조합원이 15인 미만으로 줄어들 경우 강제 해산되는 규정은 현대 수산업의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 규제로 보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게 적용돼 연근해어업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규제만을 고수하는 것은 업계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다. 수협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아직도 소관 상임위 상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등 대응이 미비하다. 어선의 노후화 문제도 심각하다. 대형선망이 보유한 어선의 평균 선령은 34년으로 이미 대부분이 노후화되어 있다. 선박 교체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이유다. 대형선망의 해산 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은 시급하다. 대형선망 해산을 막지 않으면 연근해어업의 붕괴는 가속화될 것이다. 해양환경관리법 강화로 배출 규제가 더욱 엄격해지며, 중고 선박의 유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형선망은 더 이상 선박을 확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이처럼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고 수산업 현실에 맞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협법의 조합원 수 요건을 완화하거나 예외를 두는 등의 유연한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선박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도 필요하다. 정부와 관련 당국은 더 이상 연근해어업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설] 풍전등화 신세 한미 FTA… 대미 협상 총력 기울여야
전 세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거듭하고 있는 관세전쟁 속에 미국이 마침내 양 국가 간 상호관세 협상 진행 계획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새로운 기준선에 따른 양자협정 체결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다. 구체적으로 양자협정의 대상 국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방침이 실제로 적용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개정되거나 대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의 양자협정에 기반한 국제 무역질서의 큰 변화 속에 한국 산업, 특히 미국 수출에 주력하는 자동차 부품업 등 동남권 산업의 미래에도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크게 드리우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 CBS 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준선을 재설정하고 이후 국가들과 잠재적인 양자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정성과 상호성의 기준에 따라 미국에 부과하는 것과 동일한 관세를 상대국에 부과할 것이라며 새로운 양자 간 협상을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같은 방침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즉흥적 협상용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한 한국도 이번 새 상호관세 정책의 예외가 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미국의 ‘FTA 개정’이나 ‘폐기 후 새 협정 체결’ 등의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2007년 숱한 우여곡절 끝에 체결된 한미 FTA는 관세 철폐로 인해 동남권의 대표적인 수출 업종인 자동차부품업 등이 큰 혜택을 봤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해운업 등의 분야에서도 실보다 득이 많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이후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18년 재협상이 이뤄졌으나 미국의 명분을 살려주면서도 우리 산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측면에서 나름 성공적인 방어전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자국 이익 극대화를 공공연히 앞세우는 트럼프 집권 2기의 미국 행정부는 무역수지 균형을 내세우며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무리하게 올릴 것으로 보인다. 비관세 장벽까지 동원할 경우 한국의 대응책 마련을 위한 방정식은 더욱 난해해진다. 문제는 정상외교로 매듭을 풀기 시작해야 할 통상마찰 협상이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다소의 위안은 미국이 상호관세를 부과한 이후에도 상대국과 협상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캐나다나 멕시코, 유럽연합 등과 달리 한국을 아직까지 직접적인 대상으로 언급하진 않은 점도 협상의 여지를 크게 남긴다. 상호관세 부과까지는 아직 20여 일이 남은 만큼 통상 당국은 미국을 설득할 논리와 근거를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사실도 모르고 손놓고 있었던 식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사설] 탄핵 선고 앞 대충돌 위기감 정치권 승복 앞장서야
이르면 이번 주 후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헌재는 이번 주 안에 선고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선고 시점은 지난주로 예상됐지만 헌법재판관들의 평의가 길어지면서 연기됐다. 헌재는 통상 2일에서 3일 전 선고일을 고지해 온 전례를 참고할 때, 이번 주 후반쯤 선고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고 날짜가 다가올수록 ‘탄핵 인용’과 ‘탄핵 기각’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주말에도 부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찬반 여론전이 펼쳐졌다. 헌재 선고가 이루어질 경우 대규모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러한 우려 속에는 정치권이 찬반 대립을 격화시키도록 선동하는 측면도 있다. 여야의 여론전에 자극받은 시위 군중이 선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울서부지법 점거와 같은 폭력 사태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 정치권은 헌재의 판단에 승복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여야 모두 상대방의 승복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이제 여야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만을 추구할 게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헌재 선고 결과와 관계없이 여야 정치권이 함께 승복 의사를 명확히 표명해야 한다. 또한 정치권은 국민 갈등을 최소화하며 국민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때다. 헌재의 결론을 놓고도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탄핵소추를 인용해 파면하는 결론부터 기각·각하를 통해 윤 대통령이 즉시 직무에 복귀할 가능성까지 모두 거론된다. 선고가 지연되고 있는 배경에는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장일치를 도출하려는 평의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관측과 결론의 완결성을 기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있다. 또한 헌재가 정치적 갈등과 달라진 여론 지형, 심지어 향후 정치 일정까지 고려하면서 선고 시기를 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를수록 헌재는 신속·엄정해야 한다. 국민의 헌재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공정성 논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사소한 절차적 흠결도 없어야 한다. 헌재는 헌법적 분쟁에 대한 최종적 판단기관이다. 헌재 결정을 부정하는 것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누구도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헌재는 진영 논리를 강요하는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나 오로지 증거와 법리, 재판관의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법적인 판단을 재판관이 아닌 군중이 내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언젠가는 무너진다. 정치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감정적이고 여론에 휩싸인 군중을 합리적인 길로 이끌어야 할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다. 표를 얻으려 군중에 영합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탄핵심판의 결정을 존중하고 앞장서서 승복해야 한다.
4세 고시
기나긴 불황의 터널 속에서도 사교육 시장은 연일 호황이다. 지난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가 전년 27조 1000억 원 보다 7.7% 늘어난 29조 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저출산 여파로 학령 인구가 감소했지만 사교육비는 2조 1000억 원 증가한 것이다. 교육비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학생 10명 중 8명이 월평균 59만 2000원을 들여 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주일간 평균 사교육 시간도 전년 대비 18분 늘어난 7시간 36분에 달했다.더 심각한 문제는 취학 전 영유아들도 사교육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최근 ‘4세 고시’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4세에 불과한 아동이지만 유명 영어·수학 학원에 다니려면 예외 없이 레벨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레벨 테스트가 너무 어렵다 보니 4세 아동들이 부모와 함께 고시 수험생처럼 준비하는 세태를 빗댄 말이다. ‘7세 고시’도 있다. 영어 유치원을 졸업하는 7세 아동들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더 좋은 영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지난해 취학 전 아동을 위해 부모들이 지출한 사교육비는 총 3조 3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한 심리가 요즘 조기 사교육 열풍의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더욱이 정부가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해 실시한 늘봄학교 등의 효과가 기대를 밑돈 것도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의대 정원 확대의 여파는 강력했다. 자녀를 의사로 키우려는 부모들의 경쟁심이 사교육 시장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지적이 거세다. 실제로 학원에 ‘초등 의대반’이 개설돼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최근엔 ‘학원 뺑뺑이’ ‘4·7세 고시’ 등에 시달리는 미취학 아동들의 현실을 풍자한 ‘라이딩 인생’이라는 드라마까지 등장했다. 아동들의 학원 등원과 다른 학원으로의 빠른 이동을 위해 부모는 물론 조부모 세대까지 동원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드라마 속 맞벌이 부모들은 조건에 맞는 ‘등원 도우미’를 고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정부가 사교육 열풍을 잡겠다며 초고난도 문제인 이른바 ‘킬러 문항’을 폐지하겠다고 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정부 정책을 비웃듯 날로 기형화하는 사교육 시장이라는 초고난도 문제를 해결할 ‘킬러 정책’이 시급하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데스크 칼럼] "우리도, 그들도 애국자"
어느 대통령의 마지막 대국민 담화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는 전혀 새로울 게 없습니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우리가 건국 이래 최악으로 분열됐고, 그로 인해 위기에 취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진영 간 극한 투쟁으로 적색 경보가 울리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닌 우리의 잘못입니다. 저 또한 문제의 일부임을 인정합니다. 변화가, 대담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민주주의는 황혼처럼 저물어 갈 것입니다. 오늘 서로에게 약속 하나 합시다. 우리끼리 벼룩 잡는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지 말고, 조금이라도 공동의 선을 찾기 위해 매일 노력하자는 약속 말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구할 수 없지만,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없다면 그 또한 민주주의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우리 미래가 달린 일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눈앞에 둔 윤석열 대통령이 이 메세지를 전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12·3 비상계엄’ 이후 극한으로 갈라진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안심과 위로를 주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쉽게도 ‘홈랜드’라는 한 미국 드라마의 대사를 조금 각색한 것이다. 극 중 대통령은 가진 권한을 총동원해 음모론과 가짜 뉴스로 정권을 흔드는 반대파들을 응징하려 하지만, 결국 보복의 악순환만 부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국민 통합을 호소하며 ‘하야’한다. 반면 현실의 대통령은 ‘야당 경고용’이라며 계엄이라는 엄청난 칼을 휘둘렀지만, 헌재 선고가 임박한 지금 이 순간에도 권좌로의 복귀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탄핵에 찬성하는 절반 이상의 국민들은 “계엄에 실패한 대통령이 다시 군 통수권을 행사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어이없어 하다 못해 공포감을 호소하고, 광장의 결집 이후 지지율 상승과 ‘석방’이라는 반전을 본 탄핵 반대 진영은 “이제 곧 대통령이 용산으로 돌아가 못다 한 종북좌파 척결을 끝낼 것”이라고 믿는다. 이 거대한 인식의 간극을 메울 방법이, 아니 두 진영의 공존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 암울한 의문이 커지는 요즘이다. 양측이 뿜어내는 증오와 적의의 에너지는 한 궤도에서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맹렬하고 무모해 보인다. 우리 민주주의 또한 중대한 위기 국면이고,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현 시점에서 충돌의 압력을 낮추기 위해 가장 긴요한 건 ‘당사자’들의 결자해지 의지다. 여야에서 최근 앞다퉈 요구하듯이 윤 대통령은 ‘파면’ 결정이 나더라도 승복할 것임을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만에 하나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나머지 임기는 국정 운영보다는 조속한 개헌에 집중하겠다는 ‘최후 진술’을 다시 확약하는 것도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역할도 윤 대통령 못지 않다. ‘줄탄핵’과 ‘입법 독주’로 윤석열 정부를 내내 흔들었던 거대 야당의 무절제한 힘 자랑에 대한 자성과 변화를 약속한다면 보수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거대 야당이 행정권력까지 손에 쥘 경우 어떤 ‘폭주’가 있을지 우려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는 답을 내놓은 것도 차기 권력을 꿈꾸는 이의 마땅한 자세일 터다. 둘로 쪼개진 광장의 시민들 또한 한 치의 접점이라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텐데, 그 출발점은 ‘사실(fact)’에 대한 존중이지 않을까. 일례로 ‘중국 간첩 99명 체포’와 같이 명백하게 허위로 드러난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겠다. 내전이 운위되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참으로 한가하고 공허한 얘기로 들린다는 걸 잘 안다. 그런데 달리 다른 방법이 있을까. 자신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의 희생자인 〈미스빌리프〉(misbelief·잘못된 믿음) 저자인 댄 애리얼리 미 듀크대 교수가 이를 신봉하는 이들을 깊숙이 접촉하고 연구하면서 도달한 결론은 상대한 대한 조롱과 무시보다는 이해와 공감하려는 노력이었다. 며칠 뒤 우리 사회는 한 차례 큰 소요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광기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양 진영 모두 숨을 고르고 이성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테다. 대통령이 복귀해서, 반대로 야당이 집권해서 ‘반대 세력’을 다 쓸어버리면 평화의 시간이 올까?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얘기다. 2008년 미 대선 당시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는 상대인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아랍인’이라고 공격하는 지지층을 향해 “그는 훌륭한 미국인이다. 나와 정책에 대한 이견이 있을 뿐”이라고 자제시켰다. 그런 최소한의 존중과 절제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변화다. 사실 계엄 이후 핏대 세우면서 논쟁하고, 길거리까지 나선 우리 모두 결국 나라 잘 되기 위해 나선 애국자들 아닌가.
[노트북 단상] 해태껌 롯데껌 논쟁을 끝낼 때
“우리는 해태껌 이런 건 취급 안하지예. 롯데 이런 것만 딱 갖다 놓지.” 영호남 지역 갈등은 ‘껌’에서도 드러난다. 부산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 따라 영남 지역은 롯데껌을, 호남 지역은 광주를 연고로 하는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의 전신)를 따라 해태껌을 주로 찾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호남에서 롯데껌을 찾는다거나 영남에서 해태껌을 찾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임을 장난처럼 보여주는 장면도 많았다. 정치적으로도 영남은 보수색이 강했고, 호남은 진보색이 강했기에 둘 사이 간극은 메우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히 지역 갈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인 줄 알았는데 수도권에서는 영남과 호남을 진짜 ‘껌’으로 알았나 보다. 수년 전부터 호남 지역은 농협중앙회 본사를 호남으로 이전하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 반대 논리가 그대로 농협 본사 이전 논의에도 거의 ‘복붙’(복사해 붙여넣기)처럼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노조들은 산업은행과 농협중앙회의 본사 이전이 시행되면 노동자의 거주지 이전이 불가피한데 이는 노동자의 삶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대한다. 산업은행과 농협중앙회의 본사 이전이 졸속 행정이자 정치적인 표 계산 때문으로 실적 악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결국 이러한 복붙 반대 논리에 정치권과 정부는 지역민의 염원을 씹던 껌 뱉듯이 무시하고 있다. 영호남을 비롯한 지역이 공공기관 이전을 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산업은행 이전과 농협중앙회 이전은 단순한 위치 이동이 아니다.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정책적 움직임이다. 특히 수도권에 인구와 돈이 몰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경제 활성화를 위한 트리거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박형준 부산시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충돌한 영상이 화제였다. 박 시장이 이 대표와의 비공개 회담 후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과 만나 “산업은행 이전이 단순히 하루이틀에 걸친 사안이 아니고 2년여 동안 부산 시민들이 요청하고 심지어 부산 민주당도 함께 요청한 사안인데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안타깝고 실망스럽다”고 말한 영상이다. 비슷한 영상 클립이 많았는데 대부분 수만 건의 클릭을 기록했다. 이는 산업은행 이전에 대한 지역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아마 전남도지사나 전북도지사가 같은 식으로 반응을 했다 해도 이 같은 화제성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다. 같은 논리로 반대라니 차라리 잘됐다. 그동안 껌으로도 싸웠던 지역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산업은행, 농협중앙회의 본사 이전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명분도 같고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기대 효과도 같다. 이를 계기로 부산과 호남 지역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수도권의 논리에 대응할 수도 있겠다. 부산과 호남이 함께 벌이는 이색 이벤트도 좋을 것 같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을 넘어 강력한 우군을 만난 느낌이다. 에어부산의 분리 매각도 어려워 보이고,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의 통과도 요원하지만 이번에는 꼭 보여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롯데껌이든 해태껌이든 껌 좀 씹던 언니야 오빠야들이라는 것을.
[2030 칼럼] 비트코인과 금의 세계관 대결
최근 비트코인과 금은 엎치락뒤치락하며 금융시장의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금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비트코인이 위험자산이라면 금은 안전자산이라는 대립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암호화폐는 대개 위험자산으로 분류되고 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되었고 국가들도 일부 보유하고 있는 만큼 위험자산으로만 단순히 치부하기엔 그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반면 금은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한편 비트코인은 가상자산이고 금은 실물자산이라는 차이점도 있다. 비트코인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는 없지만 서버에 디지털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금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실물 형태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짝이는 금이다. 필자가 보기에 비트코인과 금의 관계는 점점 더 치열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과 화폐전쟁 속에 숨겨진 세계관의 대결로 보인다.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비트코인과 금을 다르게 해석하고 또 다르게 가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대상의 존재 방식과 정의가 달라지고 그 정의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가 달라지는 사유 과정과 다르지 않다. 앞서 비트코인과 금의 구별로서 비트코인은 비가시적이고 무형적이며 금은 가시적이고 유형적이라는 특성을 언급했다. 이는 인류의 다양한 문명 중 현시점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문명으로만 거칠게 요약해본다면 유대인과 중국인의 세계관 대립, 유대기독교 문명과 중화 문명의 세계관 대립, 곧 둘의 철학적 입장 차이처럼 보인다. 유대기독교 문화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신과 성령은 시각적으로 감각될 수 없다. 그러나 참된 신앙을 통해서 마침내 말씀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시각보다 비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매우 중요한 문화적 특징을 지닌다. 중세 기독교에는 교육 목적으로 시각적 요소가 다수 첨가되었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우상숭배를 금지한 유대 율법의 영향으로 성상을 엄격히 금지했다. 반면 중국 문화는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자연에서 발견하는 질서들이 도(道)가 되고 도를 깨우쳐 순리를 따르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하기에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해진다. 청각과 시각은 주관과 객관의 인식적 차이도 가지고 있다. 녹음 기술이 생겨나기 전까지 소리는 고정적으로 담아둘 수 없기에 흘러가는 형태로만 존재했다. 또한 소리는 음량에 따라 누구에게는 들리지만 누구에게는 들리지 않아 보다 소규모의 사적인 범위에서만 감각될 수 있었다. 따라서 과거에 청각을 통해서 어떤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시각은 시력을 지니고 있다면 대상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청각보다 용이하다. 밤하늘에 뜬 달을 보는 시각적 경험은 거리와 범위에 제한 없이 보편적으로 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각은 청각보다 객관적인 성격을 가진다. 감각의 차이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경험적 인식과도 유관하게 작용한다. 시간을 내재적 직관, 공간을 외재적 직관으로 정의한 칸트의 구분에 비추어 보면 청각은 상대적으로 유량의 주관적이고 시간적인 특성을 담고 있는 반면 시각은 저량의 객관적이고 공간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이렇게 청각 중심 감각관과 시간 우선 세계관, 시각 중심 감각관과 공간 우선 세계관은 두 문명의 인식론부터 존재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고대문명사에서 출발하는 분기의 유래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 등은 글에서 생략하고 단순화한 점이 있다.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라는 모토는 교회라는 공간을 지우고 시각적 성례 의식들을 배제시킴으로써 내적 주관의 무형성을 세계 인식의 중심으로 다시 위치시켰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유대 문명은 보이지 않는 손과 믿음에서 신용으로 대체된 비가시적 가치, 끊임없이 유통되어야 하는 돈과 자본의 흐름, 형상의 제거와 물리적 공간성의 부재 등 현대 사회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비트코인과 금은 대결하는 두 문명의 토대가 된 세계관의 차이를 함축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두 화폐의 특성이 내포하고 있는 감각 인식적 근원은 양자역학의 미시세계 속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닮았다. 현대물리학에 따르면 입자와 파동은 동시 관측이 불가능하지만 둘은 공존하며 이중성의 구조를 갖는다. 또한 두 성질의 행동은 궁극에 불확정성의 원리와 확률로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은 비트코인과 금 모두에 ‘김치프리미엄’를 더해가며 두 자산에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대결하는 두 국가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편집국에서] 교육감 선거에 대한 단상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있는 부산은 외지인들이 보기엔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한 금융 공공기관이나 해양수산 공공기관의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부산에서의 삶에 만족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부산에 혼자 산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비롯한 배우자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고, 본인만 부산에 내려와 있다. 물론 미취학 아동의 경우는 부산으로 데리고 오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웬만해선 서울에 두고 온다. 아이들을 키우기엔 사교육뿐만 아니라 부산의 공교육도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다. 비단 외지인들의 경우만 그런 것은 아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지 의구심이 든다. 단순히 ‘인 서울’ 명문대 입학생 수만을 따지는 게 아니다. 학력 신장만이 아니라 특기교육이나 인성교육 등 특색있는 교육이 필요한데, 그냥저냥 시간만 보내는 교육이 아닌가 하는 그런 의구심. 교육감은 지역의 ‘교육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자리다. 각 시도의 막대한 교육재정과 교육자치를 책임진다. 부산의 경우 연간 5조 원이 넘는 예산이 배정된다. 올해 부산시교육청의 예산은 5조 3351억 원에 달할 정도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자치 및 전문성 강화 등의 요구로 2006년 직선제가 도입됐다. 그전까지는 학교운영위원회가 투표하는 식의 여러 가지 간선제 방식이었으나 대표성이 떨어지고 조직선거나 금권선거 등의 비리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변화를 겪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정당의 교육감 후보 추천은 금지됐다. 부산시교육감 선거는 2007년 2월 첫 직선제 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부산시장 선거와 구청장 선거 등 지방선거에서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는 상대적으로 유권자의 관심도가 떨어진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해 버린 50대 이상의 유권자, 아이가 없는 미혼의 유권자들에게는 마치 남의 일로 치부된다. 이 때문에 초기의 교육감 선거는 ‘로또 선거’ ‘깜깜이 선거’ ‘묻지마 선거’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후보가 난립하면서 공약이나 인물보다는 투표용지 기재 순서가 당선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1번 혹은 2번 등 앞번호를 뽑은 후보가 전국적으로 교육감으로 당선되면서 번호 추첨만 잘하면 당선되는 로또 선거로 전락한 것.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이후 진영 간 단일화 바람이 불었다. 난립하던 후보는 보수 진영이나 진보 진영이라는 진영 깃발로 모이면서 이념 대결로 치달았다. 로또 선거는 사라졌지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정당의 교육감 후보 추천 금지라는 정당공천 배제 원칙은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뉜 교육감 후보자들은 특정 정당의 상징색을 입고 다니거나 선거 현수막과 포스터 등에 활용하고 있다. 다음 달 2일 치러지는 부산시교육감 재선거도 예외 없다. 정책이나 인물 대결이 아니라 사실상 이념 대결로 굳어지고 있다. 정책이나 인물 검증은 뒷전이고 진영 간 단일화에 목매달고 있다. 지난 15일 정승윤 후보와 최윤홍 후보가 단일화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이번 선거도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양자 대결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기간 등을 고려할 때 보수 단일화 결과는 오는 23일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일인 다음 달 2일까지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정책 검증이나 인물 검증의 기회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정책 홍보보다는 단일화에만 목맨 후보들은 교육감 선거를 정치인들의 선거와 다를 바가 없는 이념·진영 대결로 만든 책임이 있다. 2022년 6월 치러졌던 지방선거에서 부산시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은 49.1%였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감의 보궐선거 투표율이 겨우 23.48%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부산시교육감 재선거 투표율도 극히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이념 대결로 치닫는 교육감 선거가 진영 간 조직 대결로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매치업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책과 인물 검증에 소홀히 했던 언론도 남은 기간 분발해야 한다. 날카로운 검증의 칼을 들이대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감 선거는 아이들이 창의적이고 시민적 소양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는지를 선택하는 문제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선거로 보면 안 된다.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가져야만, 부산의 교육이 살아날 수 있고 부산의 미래가 희망적일 수 있다. 최세헌 편집국 부국장 cornie@busan.com
[오션 뷰] 우리가 새 배를 짓는 이유
최신예 여객선 ‘선플라워 쿠로시오호’가 운항 4년여 만인 2001년, 한국의 한 선사에 매각된다는 소식은 당시 일본에서 큰 뉴스거리였다. 이 배는 일본 국기와 태양을 상징하는 ‘해바라기’(선플라워)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 일본 선사의 자부심과 같았다. 일본의 전통 목욕 가운인 유카타만 입고도 선내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편의성과 고급 취향이 잘 접목된 여객선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그 배는 한일 양국이 함께 개최하는 2002년 FIFA월드컵을 앞두고 ‘팬스타 드림호’라는 선명으로 대한민국 깃발을 달고 일본 세토내해를 가로질렀고 지금도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 그 배를 인수한 한국 기업은 당연히 팬스타다. 드림호는 지난 23년 동안 부산과 오사카를 무려 6600여 차례 운항하면서 155만여 명을 실어 날랐다. 주말에는 부산항 인근을 돌면서 불꽃놀이와 뷔페, 선상 포장마차를 즐길 수 있는 ‘부산항 원나잇 크루즈’로 변신하며 인기몰이했다. 4월 13일 새 여객선 ‘미라클호’ 운항 부산∼오사카 편도 2시간가량 단축 한일 수교 60년, 협력의 새로운 물결 선상 여행·크루즈 투어 확산 기대 그 배가 오는 4월 13일 새로운 크루즈 여객선 ‘팬스타 미라클호’로 대체된다. 길이 171m, 폭 25.4m의 새 선박은 객실 102개에 승객 355명, 승무원 46명이 탈 수 있다. 야외 수영장을 포함해 5성급 호텔 수준의 부대시설은 물론이고 웬만한 파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특수장치가 설치된다. 한일 항로의 선박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이 크게 바뀔 것 같다. 새 선박의 교체 투입으로 부산∼오사카의 운항 시간도 편도 2시간가량이 단축된다. 미라클호는 부산 선사와 부산 조선소, 국내 선박 의장 기업, 그리고 국내 자본의 합작품이다. 특히 팬스타그룹과 대선조선, 두 향토 기업의 협력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상생 모델로 주목받아 왔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미라클호의 취항에 진즉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이라고 해도 크루즈선 건조에서는 후발 주자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산∼오사카 항로는 팬스타그룹이 처음 개설한 ‘개척 항로’다.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항로가 가장 가까운 대마도의 히타카츠항부터 같은 섬의 이즈하라항, 후쿠오카의 하카타항, 시모노세키항, 그리고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오사카항까지 모두 다섯 갈래에 이르지만 대마도를 제외하면 한국 기업이 개척한 항로는 부산∼오사카가 유일하다. 미라클호가 취항하는 날, 오사카에서는 ‘오사카 엑스포’가 개막한다.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운 인공 섬 ‘유메시마’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다. 미라클호로선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덧붙여 올해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수교 60년’을 맞는다. 1965년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수교를 맺은 지 벌써 한 갑자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환갑, 일본에서는 ‘칸레키(還曆)’라고 한다. 이른바 제2의 삶이 시작되는 만큼 새로운 기운이 필요할 테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달 남산서울타워와 도쿄타워에서 서로의 믿음을 보여주는 수교 60년 기념 조명 쇼는 의미가 컸다. 유럽의 솅겐조약처럼 여권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방안이 최근 정부 차원에서 모색된 것도 새로운 이해와 협력, 소통이 시원스레 시작될 것 같아서 훈훈하다. 그렇지 않아도 한일 양국은 함께 넘어야 할 험난한 파도가 많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원수라도 한배에 타면 공동운명체가 될 수 있다는 ‘오월동주’의 지혜를 두 나라 정치인이 함께 깨달으면 좋겠다. 과거의 잘못은 끊임없이 성찰해야겠지만 참회와 용서로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팬스타 미라클호도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부산∼오사카 항로에 훈풍이 불어서 두 나라의 많은 시민이 대한해협과 세토 내해의 아름다움을 더 자주 함께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부산∼오사카 항로가 시작되는 부산항국제여객부두는 부산역과 공중 보행로로 이어져 있다. 철도와 여객선이 이렇게 탯줄처럼 가깝게 연결된 교통 인프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시원한 바다 풍광까지 곁들이면서 부산 최고의 명소로도 부족하지 않다.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는 물론이고 부산시, 코레일도 한일 여객 항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해 보며, 우리가 새롭게 시도하는 이동 수단을 넘어서는 여행, 선상 활동이 목적이 되는 여행, 진정한 크루즈 투어의 확산을 기대해 본다. 두 나라 바닷물이 함께 흐르는 대한해협에서 새로운 미래를 논의하는 선상 포럼도 좋은 축제가 될 수 있다. 한일 수교 60년은 그런 축제를 기획하기에 너무 좋은 소재다. ‘새 배를 짓는 마음으로’ 앞날만 생각하면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승일의 곰곰 생각] 트럼프 관세 전쟁, 공황의 그림자
“미국인들은 느려 터져서 생산성이 떨어져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문을 닫자 대규모 실직 사태가 발생한다. 다행히 중국 푸바오그룹이 공장을 인수해 재고용하자 지역 사회는 활기를 되찾는다. 한데, 중국 관리자들은 미국인의 굼뜬 일머리에 속이 터진다. 반면 미국인들은 중국식 근면과 규율, 업무 강도, 그 결과인 높은 생산성에 충격을 받는다. 급기야 미국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해 대항하려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2019년)는 미국에 진출한 중국계 기업이 겪는 문화 충돌이 주제다. 이 다큐를 본 기업인이라면 미국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돈으로 건물을 짓고 장비는 들일 수 있으나 일하는 문화까지 살 수는 없다. ‘무역 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 쉽다.’(Trade wars are good, and easy to win.) 2018년 3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트윗은 관세 폭탄의 예고편이었다. 트럼프 1기 때는 중국만 두들겨 팼지만 2기에는 동맹국도 가차없다. 우아한 외교 수사는 사라지고 무쇠 주먹만 휘두르는 낯선 미국의 이면에는 제조업 붕괴가 있다. 1960년대 제조업은 국내 총생산(GDP)의 25%였는데 최근 11%로 떨어졌다. 생산력이 몰락하고 기생적 금융자본주의만 번성하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 제조업 일자리 하나는 비제조업 분야에 3.4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2000년 이후 제조업 일자리가 500만 개 이상 사라졌고 후방 효과로 비제조업 실업자까지 쏟아져 미국 사회가 입은 내상은 심각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는 ‘미국인 다시 취업하기’ 캠페인인 셈이다. 트럼프 관세 전쟁의 본질은 ‘일자리 빼앗기’다. 밥그릇 앞에 이념도, 동맹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5일 의회에서 인도, 중국, 한국을 부당 관세 국가로 콕 집어 지목한 뒤 “우방이든 적국이든 똑같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이날 연설의 핵심은 “미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지 않으면 더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였다. 반도체는 상징적인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대만과 한국이 반도체를 ‘훔쳐갔다’는 표현까지 썼다. 미국에서 탄생한 반도체가 일본을 거쳐 한국과 대만으로 옮아간 과정은 자연스럽다. 한국과 대만은 적정 임금에 24시간 공정을 지탱하는 노동력 공급이 가능했다. 미국에서 불가능해졌기에 아시아로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가 전략 물자로 부상하자 ‘미국에서 태어난 기술이니 도로 내놔라’는 억지가 시작됐다. 실제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대만의 TSMC의 팔을 비틀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게 해 놓고 정권이 바뀌자 약속했던 보조금은 안면몰수할 기색이다. 트럼프의 목표는 제조업 회생, 즉 일자리 창출이다. 그 수단이 관세다. 관세는 제품 가격에 흡수되어 미국 소비자에 전가된다. 캐나다가 미국의 25% 관세에 맞서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에 25% 수출세를 부과한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이는 가구당 월 100달러(우리 돈 15만 원)의 생활비를 증가시킨다. 물가 앙등이 촉발한 경기 침체의 위기 경고가 미국 내에서도 나오는 이유다. 미국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고 세계 각국이 맞대응하면 물가 앙등, 무역 감소, 경기 침체는 필연적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를 넘어 대공황까지 우려한다. 1930년대 세계 경제를 붕괴시킨 대공황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당시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해 최고 60% 관세를 매겼다. 다른 국가들이 보복 관세로 맞선 결과 세계 무역은 65% 감소했다. 10일 미국 주식 시장이 폭락했는데 이유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엄청난 일을 하는 중인데, 과도기가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경기 침체를 감수하겠다는 의지 표명이 불안 심리에 불을 질렀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거래의 기술’로만 이해하는 건 금물이다. 트럼프에 있어 ‘엄청난 일’은 산업 구조의 근본적 개혁이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어서 관세 폭탄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임기 4년의 트럼프가 무서워 미국에 공장을 지을 턱이 없다. 12일 유럽연합이 최대 50%의 보복 관세로 반격한 것은 준비된 선전 포고다. 글로벌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고 벌써 대공황의 그림자까지 어른거린다. 내수 비중이 높으면 그나마 버티겠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데다 대미 흑자가 큰 한국은 시계제로다. 트럼프의 호언장담과 달리 ‘무역 전쟁은 나쁘고 이기기도 쉽지 않다.’ 승자 없이 모두가 패자가 될 뿐인 이 무역 전쟁을 피할 길이 없는 처지가 참담하다. 한국은 최악 시나리오를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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