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재수 당선인 인수위 활동이 취임 초 시정 승패 가른다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의 시정 인수위원회가 조만간 공식 출범한다. 최근 인수위 사무실이 부산상수도사업본부 건물에 터를 잡았다. 선거는 끝났지만 시정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인수위는 당선인의 공약과 비전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첫 무대이자 향후 4년 시정의 밑그림을 그리는 핵심 기구다. 활동 기간은 비록 짧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부산시장이 국민의힘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뀌는 만큼, 인수위는 새로운 시정 철학과 정책 우선순위를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첫 관문이 될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전재수 시정의 초반 승패가 인수위 활동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민생 회복과 해양수도 부산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시정 운영에 녹여낼 것인가이다. 현재 부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 퐁피두 부산센터 유치, 15분 도시 정책, 사직야구장 재건축 사업 등은 모두 지난 시정의 대표 사업들이다. 이 중 일부는 선거 과정에서 재검토 의사를 밝혔지만, 인수위는 이를 어떻게 이어가고 혹은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시민들은 정책 변화의 방향뿐 아니라 그 이유와 타당성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인수위는 새로운 구상과 기존 사업의 가치 사이에서 충분한 설명과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사직야구장 재건축과 북항 돔구장 논의는 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사직야구장 재건축은 이미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한 사업이다. 반면 전 당선인은 북항 돔구장을 새로운 도시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부지 확보 비용과 사업성 검토라는 현실적 과제도 뒤따른다. 오페라하우스와 퐁피두 부산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전략과 생활밀착형 문화 정책 확대라는 새로운 방향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느냐가 관건이다. 이제는 어느 한쪽의 논리만으로 도시의 미래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부산의 경쟁력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일이다. 인수위 구성 또한 중요하다.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인선으로 정책 검증 능력을 높이고 부산의 산업·도시계획·문화·해양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해야 한다. 새로운 시정 목표를 실현하려면 조직도 빠르게 재편돼야 한다. 변화는 필요하지만 행정 공백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지방정부의 사례를 보면 인수위는 단순한 준비기구가 아니라 새 시정의 철학과 우선순위를 가늠하게 하는 시험대였다. 이제 부산의 미래를 둘러싼 선택의 시간이 시작됐다. 인수위가 얼마나 현실성 있는 청사진과 설득력 있는 변화의 로드맵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전재수 시정의 성패도 판가름 날 것이다. 인수위의 제대로 된 활동을 기대한다.
[사설] 이재명 대통령 국정 2년 차, 균형발전 성과로 보여 줘야
이재명 정부는 12·3 불법 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인수위원회도 없이 지난해 6월 출범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미국의 통상 압박 속에서 한미 무역 협상을 마무리했다. 일본과 셔틀외교를 복원했으며,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코스피 상승세를 바탕으로 한 주식시장 활성화, 반도체 업황 호전에 따른 성장 부진 탈출, 중동 전쟁 상황에서 원유 확보 등으로 경제 분야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5극 3특’ 지방주도 성장, 지방 거점 대학 육성과 같은 국가 균형발전 정책 추진으로 호응을 얻었다. 이제 국정 2년 차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균형발전을 구체적인 성과로 보여 줘야 할 시점이 됐다. 이 대통령이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모든 국민과 국토가 성장의 기회와 혜택을 고루 누리는 ‘초격차 산업 강국’을 2년 차 첫 번째 국정 목표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공동체 전체의 역량으로 일군 성과와 기회가 중소 벤처기업에까지 흐르고, 우리 국토, 모든 분야에 골고루 퍼져 모든 국민이 삶 속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지방에 대한 정책적 우선권을 부여하고, 재정지출의 지방 중심 기조를 확실하게 지키겠다고 말했다. 공기업 지방 이전도 최대한 몰아서 하겠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집중이 심각한 현실에서 지방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경제 정책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지난 1년간 국정 성과로 기대감을 높였지만, 2년 차를 맞은 이 대통령 앞에는 경제, 안보 등 난제가 중첩돼 있다. 취임 1년 만에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 8000선을 넘겼지만, 8일 8% 넘게 폭락하며 7484.41로 마감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전망과 반도체주 급락 충격까지 겹치며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이다. 8일 개장 원달러 환율도 1550원대로 올라섰는데, 2009년 3월 이후 17년 3개월 만이다.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물가, 금리, 내수 경기를 동시에 압박해 실물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7년 만에 방북하며 북중러 연대가 더욱 강화되고 있지만, 답보 상태인 남북 관계 개선은 풀어야 할 과제다.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지난해 1.85%에서 올해 1.66%, 내년 4분기에는 1.46%로 점차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초호황에도 불구하고 경제 기초체력은 여전히 허약한 것이다. 수도권 집중, 반도체 산업 쏠림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비수도권의 미래 성장 잠재력을 키워나가야 하는데 아직 그런 정책적 결실이 눈에 띄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재명 정부는 공기업 추가 이전을 서두르고, 부산 중심의 해양수도권을 완성해 국가 균형발전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이것만이 국가가 처한 성장의 한계를 넘어서고, 반도체 외 차세대 먹거리 역할을 할 ‘글로벌 초격차 성장동력’을 육성하는 지름길이다.
[사설] 한성숙 총리 지명, 비수도권 AI 대전환이 던져진 숙제
이재명 대통령이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7일 “인공지능(AI) 대전환을 차질 없이 완수하고 대한민국 모두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인선의 이유를 밝혔다. AI 혁신과 성장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그에 앞서 우리 경제를 둘러싼 모순적인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은 성장률 전망이 상향되는 와중에도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반도체와 수도권 대기업, 플랫폼·핀테크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사이 지역의 전통 제조업, 중소벤처, 자영업자는 고환율·고금리·내수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 해소가 선결 과제다. 한 후보자는 네이버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였고, 중기부 장관으로서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취임 2년 차에 돌입한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효과를 경제 전반에 확산하겠다는 구상으로 정치인 측근이 아닌 기업인 출신을 깜짝 발탁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 후보자가 인준을 통과하면 20년 만의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도 갖는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상징이나 기대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실력이다. 주가지수 고공 행진 뒤에 가려진 현장의 어려움을 살피고 국가 성장 전략의 방향을 재점검해야 한다. 그 핵심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 대기업·핀테크가 아닌 중소벤처와 소상공인의 활로다. 최근 한국 경제는 상반된 신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최대 3%까지 거론되는 것은 반도체 수출 호황 덕분이다. 반면 환율이 1600원 턱밑까지 치고 올라 위기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일부 첨단산업의 호황이 국가 경제 전반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한 탓이다. 불균형의 충격파로 가장 타격을 입는 곳이 지역 경제다. 비수도권의 조선기자재, 자동차부품, 기계, 물류 산업과 중소 수출기업은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에너지 비용 부담, 고금리와 내수 부진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AI 대전환이 수도권 대기업과 빅테크 수혜에 그친다면 양극화의 폐해는 심화할 수밖에 없다. 한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 수도권 대기업과 지방의 중소벤처, 소상공인 사이의 전환 격차를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성공 여부는 AI 대전환 정책을 지역 성장 전략으로 구체화하는 데 달렸다. 예컨대 부산항 피지컬 AI 구축이나 해양물류 데이터 플랫폼 조성, 조선·MRO·원전 기자재 산업의 디지털 전환, 지역 중소기업의 AI 활용 지원은 충분히 국가적 과제가 될 수 있다. 소상공인 경영 데이터 활용 체계를 확대하고 지역 대학과 기업을 연계한 AI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시급하다. 지역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AI 대전환이 성공해야 국민 모두의 성장도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야성의 도시 부산
한국 선거사에서 부산만큼 역동적 투표 성향을 보여준 지역은 드물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야당 성향이 강해 ‘야도(野都·이후 야구도시라는 뜻도 보태졌다)’로 불렸다. 그러던 것이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 보수세도 인물과 경우에 따라 큰 변동폭을 보여줌으로써 대표적 ‘스윙 보트(그네처럼 오락가락하는 투표)’ 지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스윙 보트의 시작은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의 등장에서부터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은 당시 민주자유당 문정수와의 대결에서 37.58%를 득표했다. 지역주의가 창궐하던 시기 ‘지역감정 타파’를 외치고 나선 후보의 경이로운 득표율이 이후 ‘노풍’의 기반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같은 노풍은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부산에서 약 39%대의 득표를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이 불었다고 해도 부산지역의 투표 결과에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다시 부산은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후보에게 50.65%의 표를 주면서도 무소속 오거돈 후보에게 49.34%의 득표율을 안기는 투표를 했다. 일방적인 지지보다 ‘당선은 시키되 경고를 하는’ 방식의 투표를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결국 부산은 2017년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38.71%로 득표율 1위 자리를 안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진영의 분열이 있었다고 해도 국정 안정과 개혁을 주문한 합리적 선택이 인상적이었다.이후 제7회 지방선거에서 부산은 민주당 오거돈 후보를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당선시키고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에 국회의원 의석 5석을 안기기까지 했다. 오거돈 전 시장의 스캔들 이후 부산은 다시 보수세로 돌아섰지만 이를 자신들의 텃밭으로 여기는 이들에겐 늘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왔다.이번 지방선거는 이 같은 부산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선거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반 지지로 민주당 전재수 후보를 시장에 당선시키면서도 시의회와 기초단체장 국힘 우위를 유지한 것은 교차투표의 묘미를 보여준다. 심지어 전재수 후보의 국회의원 시절 텃밭이라던 북갑에서는 무소속 한동훈 후보를 당선시키기까지 했다.부산은 누군가의 텃밭으로 불리길 거부하는 진정한 야성의 도시라는 의미로 ‘야도’인 듯하다.
논설주간/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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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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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열일곱 살' 금융 중심지 부산
지방선거가 끝났다. 여당이 대체로 승리했다는 평가 속에 지방 권력까지 상당수 움켜쥐면서 여권은 그동안 지방 정부와 국민 눈치를 살피며 미뤄왔던 각종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부산과 관련이 깊은 금융 정책도 그렇다. 우선 한국거래소의 지주사 전환과 코스닥 분리가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차례 회의에서 이를 언급하며 추진 의지가 확인됐다. 부산에 본사를 둔 거래소의 코스닥 시장 관련 기능이 서울로 더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부산 남구 금융 자율형사립고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가 수행한 용역이 거의 마무리됐지만 선거 이후 지방 권력과 협의가 필요한 만큼 미뤄뒀던 논의의 빗장이 곧 풀릴 듯하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금융 중심지 부산의 위상에 영향을 끼칠 금융 정책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제3 금융 중심지 지정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증시 활황에 전북 전주에 본사를 둔 국민연금공단이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며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올랐고, 이에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잇따라 전주로 몰려들면서 제3 금융 중심지 논의가 재점화됐다. 대통령은 전주의 사례를 성과로 추켜세웠다. 지난 대선에선 제3 금융 중심지 지정을 약속하기도 했다. 전주 지역에서도 지금이 적기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의 지방 균형발전 전략인 ‘5극 3특’ 기조에 관련 논의가 더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부산시와 부산 시민단체는 ‘나눠 먹기식’ 금융 중심지 정책은 그간 어려운 상황에서 축적해 온 부산의 인프라와 기능을 통째로 흔들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전주 지역 상공계 등은 부산이 금융 중심지 추가 지정을 지역 간 제로섬 게임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산이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반하고 있다며 ‘실망’과 ‘분노’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지방 소멸의 시대, 팽창하는 수도권에 맞선 전주의 외침이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국토 면적과 금융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금융 중심지를 세 곳까지 분산 지정하는 것이 과연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바람직한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금융 중심지 부산의 초라한 현실까지 새겨본다면, 추가 지정 논의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되묻게 된다. 부산이 금융 중심지로 지정된 건 2009년 1월이다. 17년이 넘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부산은 지정 초기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유아기 수준의 금융 중심지에 머물러 있다. 금융산업 주요 인프라 기관들만 집중돼 자본시장을 지탱하는 골격만 갖췄을 뿐, 피와 살이 되는 민간 자본과 인력은 서울에 몰려 있다. 부산을 파생금융 중심지로 특화하려고 했던 정부 계획도 절반의 실패다. 실제 운용·트레이딩 인력과 의사 결정 기능은 대부분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이전 공공기관의 수장들과 주요 임직원들은 여전히 일주일에 3~4일 서울에 머문다. 서울이 본사인지 부산이 본사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직원들 역시 많은 인원이 서울에 배치돼 있다. 서울에 60% 가까운 조직과 인력이 남아 있는 기관도 있다. 부산 금융 중심지는 서울 금융 중심지 ‘블랙홀’에 그 기능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용을 쓰며 명맥만 유지하는 꼴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금융 중심지 추가 지정 타당성 검토 용역에 착수했다. 용역은 오는 10월 마무리된다고 한다. 연내 추가 지정 여부가 가려지는 수순이다. 앞서 전주는 2019년과 2022년 두 차례 금융 중심지 지정이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용역에서는 전주가 금융 거점지로는 적합하지만 국제금융 중심지로는 맞지 않고, 추가 지정은 기존 금융 중심지 두 곳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기존 금융 중심지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내실화 노력에 지속적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주가 금융 중심지로서 위상을 가질 만한 금융회사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유일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정부의 부산 금융 중심지 내실화 노력은 부족했다. 그 사이 서울의 금융 기능은 철옹성처럼 더 굳건해졌다. 전주 역시 국민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금융 구조를 예나 지금이나 한계로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증시 활황에 돈과 인력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증시 침체 시 지속 가능한 금융 중심지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 부호가 남는다. 정부는 금융 중심지 추가 지정 논의를 기회로 금융 중심지 정책을 다시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여당 출신 새 부산시장도 정부 정책에 맞서 부산 금융 중심지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지켜내고 경쟁력을 키울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전략과 대응이 필요하다. nmaker@busan.com
[노트북 단상] 한화오션, 대한민국 잠수함 수출 새 역사 쓸까
대한민국 방산업계의 시선이 캐나다로 향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추진하는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 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CPSP는 1998년 도입한 2400t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할 3000t급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건조 비용만 20조 원, 향후 30년간 이어질 유지·보수·정비 사업을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는 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때문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방산기업이 도전장을 던졌고, 한화오션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가 막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은 잠수함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초’ ‘최고’ ‘유일’ 기록을 모두 보유한 명가다. 잠수함 기술 원조인 독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1993년 국내 최초 전투 잠수함을 완성한 이후 최근까지 한국 해군 전투잠수함 모든 선종을 건조했다. 2006년과 2017년, 2021년에는 △해외 잠수함 창정비 △세계 5번째 잠수함 수출 △세계 8번째 잠수함 원천기술 확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여기에 3000t급 이상 중형잠수함도 독자 개발했다. 자체 기술력으로 중형잠수함을 개발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인도, 러시아,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뿐이다. 한화오션은 CPSP 납품 모델로 현존 디젤 추진 잠수함 중 최상의 작전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3600t급 ‘KSS-III’를 제시했다. 한화오션은 빠른 납기와 검증된 기술력 그리고 장기 산업 동맹이 강점으로 꼽힌다. 한화오션은 노후 잠수함 퇴역 전인 2032년 1번 함을 시작으로 2035년까지 4척 인도를 목표로 제시했다. 애초 2034년까지 최소 2척 인도를 제안했던 TKMS는 뒤늦게 자국 물량을 캐나다에 조기 양도하는 방식으로 2036년까지 4척을 인도하겠다며 견제에 나섰다. 건조 경험과 역량도 한화오션이 월등하다. KSS-III는 이미 진수돼 운용 중인 모델이다. 지난달엔 한국-캐나다 해군 연합협력훈련에 투입돼 1만 4000km 무결점 대양 기동력까지 입증했다. 반면, TKMS의 ‘212CD’는 설계도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모델’이다. 한화오션이 수주에 성공하면 세계 방산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보이는 독일을 상대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한국의 잠수함 설계·건조·운용 기술을 세계 시장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부산과 경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 조선 생태계에도 상당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본함 건조와 후속 지원함을 고려할 때 향후 약 60년간 안정적 물량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조에 참여할 300여 중소 협력사는 글로벌 공급망에 본격적으로 편입될 기회까지 잡을 수 있다. 이를 통한 국내 생산유발효과는 40조 원, 일자리 창출은 2만 4000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때문에 기업 간 경쟁을 넘어 한국과 독일 간 국가대항전이 돼버렸고 우리 정부도 막판 총력 지원에 나섰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번 수주전 성패가 동남권 조선업 벨트 부활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지역 사회의 관심도 뜨겁다 . 이달 말, 대한민국 잠수함 수출의 새역사가 또 한번 쓰여지길 기대해 본다.
[중앙로365] AI 대전환 앞에 선 부산의 생존 전략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 전 스마트폰으로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점심 메뉴는 앱 추천으로 고른다. 퇴근길에는 유튜브가 골라주는 음악을 듣는다. 우리는 이미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공지능(AI)과 연결된 채 살아간다. 이제 AI는 일상은 물론 업무에서도 필수 도구가 됐다. 하지만 지금 세계의 선도 도시들은 이 AI를 단순히 ‘개인의 비서’로 쓰는 단계를 넘어, 도시 운영 자체를 바꾸는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복잡한 민원은 AI가 처리하고, 사고 위험은 사전에 예측해 대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행정·교통·복지 등 도시 서비스 전반을 AI로 재설계하는 흐름을 ‘AI 대전환’, 즉 ‘AX(AI Transformation)’이라 부른다.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AX는 결국 도시를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세계 도시들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과거 스마트시티가 센서를 설치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AI 도시는 그 데이터를 학습해 미래를 예측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행동하는 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직관과 경험에 의존하던 도시 행정도 데이터 기반의 예측과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모았느냐가 아니라, 이를 시민 삶의 질 개선에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글로벌 선도 도시들은 분명한 방향을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행정 전반에 생성형 AI를 빠르게 도입하고, 두바이는 부처별 AI 책임자를 두어 실행력을 높였다. 뉴욕과 헬싱키는 AI 활용 과정을 공개하며 시민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명확하다. 이들 도시는 AI를 기술 과시가 아니라 교통 혼잡, 범죄 예방, 노인 돌봄, 의료 접근성 같은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디쯤 와 있는가. 부산시는 5년간 4877억 원을 투입하는 AI 종합 전략을 발표하고, 에코델타시티를 중심으로 모델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분명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는 이미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 아래 광주(AX 실증), 대구(AX R&D), 전북(AI 팩토리), 경남(정밀 제조)을 중심으로 AX 연구·실증 거점을 선점하고 있다. 반면 부산은 아직 이 경쟁에서 뚜렷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자칫 ‘순차적 검토 대상’에 머무는 후발 주자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부산에는 다른 도시가 쉽게 갖기 어려운 강점이 있다. 세계적 수준의 항만과 해양 산업, 연구 기관의 집적, 그리고 해양수산부 이전으로 강화된 정책 역량이다. 부산의 AX는 이 강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인접한 경남의 제조 특화 AI 거점과 연계해 부울경 초광역권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선박이 드나드는 항만 물류 데이터를 AI로 예측하고 자동화한다면, 부산항은 단순한 물동량 경쟁을 넘어 세계가 참고하는 스마트 항만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또한 해류와 기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해양 재난을 예측하고, 이를 도심 침수 위험 지역 경보 시스템과 연계한다면 ‘재난에 강한 해양도시’라는 새로운 안전 모델도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AI 대전환이 산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복잡한 민원 절차는 간소화되고, 교통 약자는 대중교통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독거노인의 위험 신호는 행정이 먼저 감지하고, 소상공인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매출 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도 시민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AI 전환이 실제로 작동하는 도시의 모습이다. AX는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을 바꾸는 변화다. 이 과정에서 지역 대학과 공공기관, 산업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대학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곳을 넘어, 정부 부처와 협업하여 지역 특화 데이터로 공공 서비스를 재설계하는 ‘지산학 AX 거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기업은 기술을 실증할 기회를 얻고, 부산시는 민간 기술을 수용하는 개방형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연결이 구축될 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다. 지금 부산은 폭풍전야 앞에 서 있다. 세계 선도 도시들이 빠르게 AI 대전환을 이루고 있는 지금, 부산이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지금, 이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부산은 글로벌 AX 선도 도시로 나아갈 기회를 잃게 된다. 명확한 비전과 강력한 실행력, 그리고 투명한 행정을 통한 시민의 신뢰가 결합할 때, 부산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AX 선도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편집국에서] 부산시장 당선인에게 거는 기대
1995년 지방선거가 실시된 후 부산시장의 당적은 국민의힘 계열 일색이었다. 여기에 처음으로 균열을 낸 것은 2018년 당선된 오거돈 시장이다. 23년 만에 시정 권력이 교체된 동력은 변화에 대한 부산시민의 뜨거운 열망이었다. 하지만 마치 권력 교체로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오 시장은 임기 내내 역량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리고 최악의 방식으로 시민들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으며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부산시민들은 8년 만에 다시 ‘변화’를 선택했다. 누구는 ‘오거돈 트라우마’를 언급하며 더불어민주당 인사에 대한 부산시민의 거부감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부산의 급박한 사정을 생각하면 트라우마 따위를 운운할 상황이 아니라고 시민들은 판단한 모양이다. 부산이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절박함, ‘이번에는 부산을 바꿔달라’는 간절한 염원 속에 전재수 후보는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정당 색깔과 상관없이 ‘전재수’라는 인물에 거는 부산시민의 기대는 명확하다. 해양수산부와 HMM 이전을 성사시킨 추진력으로 희망을 눈앞에 보여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산시의 전체적인 선거 결과는 녹록지 않을 현실을 예고한다. 전 당선인의 지역구였던 부산 북갑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선되면서 전 당선인은 고립무원의 상황이 됐다. 부산시장과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이 없어지면서 부산 현안을 입법화하는 데 ‘비빌 언덕’이 없어졌다. 게다가 한 의원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기존 부산의 국회의원과는 다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그 갈등의 여파가 부산시정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시정을 견제하는 부산시의회 구성도 전재수 당선인의 시정에 우호적인 환경은 아니다. 이번 선거로 탄생할 10대 부산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당선인 11명과 국민의힘 소속 37명으로 구성된다. 비례대표 이외 민주당 소속 의원이 한 명도 없었던 9대와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상황이지만, 여소야대의 지형에서 전 당선인의 시정 운영에 상당한 견제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경남에서는 박완수 경남지사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전 당선인이 그려왔던 메가시티 구상에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박 지사는 마산·창원·진해 통합 당시 창원시장으로 통합에 찬성했다가 이후 통합 후유증을 직접 목격하고 행정통합 반대로 돌아선 인물이다. 부산이 전국 처음으로 메가시티로 지정되어 지역 통합의 선두에 나섰다가 좌초된 것도 박 지사가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전 당선인이 지역을 살릴 핵심 어젠다로 꼽은 메가시티 구상은 박 지사의 당선으로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이런 현실적인 한계를 뚫고 전재수 시정은 인구 소멸 위기 속의 부산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을 부여받았다. 특유의 친화력과 해수부 장관 시절 보여준 돌파력으로 이들 난제를 쾌도난마처럼 해결할 수 있을까?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망설여진다. 글로벌특별법 무산 과정에서 보여준 용두사미 행태의 장면이 떠올라서다. 글로벌특별법은 전 당선인이 공동발의한 법안이다. 2년간 법안이 표류하며 국회 상임위에서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했고, 박형준 시장은 막판 삭발까지 감행하며 법안 처리를 압박했다. 당시 선거 초반 주도권 싸움 양상에서 전 당선인은 해결사를 자처했다. 이후 해당 상임위를 통과하면서 그의 말대로 해결이 되는 듯했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결국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상임위 논의를 거쳐 통과된 법안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생각과 다르면 멈추는 현실은 전 당선인이 헤쳐 나가야 할 가장 큰 난관일지 모른다. 전 당선인이 선거 내내 강조했던 ‘힘 있는 여당 시장’은 이 대통령의 의지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전 당선인의 역량에 기대를 건다. 이번 부산 북갑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자리는 내준 것은 역설적으로 ‘전재수였기 때문에 여태 지역구를 지킬 수 있었음’을 방증한다. ‘보수 텃밭’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10년 가까이 지역민의 신뢰를 받았던 전 당선인의 진가를 이제 330만 부산시민 앞에 증명해 보일 때다. 가덕신공항과 부산의 항만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양수도로 거듭나는 부산, HMM를 필두로 관련 기업들이 대거 부산으로 이전해서 청년들이 지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부산, 북항의 최신 돔구장 주변 바다에는 홈런볼을 잡기 위한 배들이 떠있고, 전국과 해외에서 수많은 야구팬들이 북항으로 몰려오는 부산이 전재수 시정에서 가능한 일이 되길 소망한다. 부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전 당선인의 성공적인 시정 운영을 진심으로 바란다.
[김진성의 맛있는 여행] 핫 플레이스의 함정
여행지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검색하다 보면 ‘여행 핫 플레이스’라는 곳을 종종 보게 된다. 여행 블로거들이 올린 글에서부터 지역 공공기관에서 위탁을 받아 올린 글, 개인들이 직접 다녀와서 쓴 후기 형태의 글 등 다양하다. 이런 글을 보면서 여행지 선택에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핫 플레이스’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SNS에서 더욱 그렇다. ‘핫 플레이스’라고 해서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보면 별 것 없는 경우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는 ‘핫 플레이스’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기사 마감이 다가오면 급한 마음에 또다시 헛걸음을 한다. 인터넷이나 SNS를 보고 여행에 나서는 분들 상당수가 이런 경험이 한 두번씩은 있을 것이다. 별 것도 없는데 왜 핫 플레이스라고 할까.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낚시인가? 아니면 도대체 뭐지? 조회수를 올리거나 과다한 홍보를 위해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낚시 글은 금방 들통이 나서 효과를 거둘 수 없고, 실체를 아는 사람들에게 악플 수준의 ‘역풍’을 맞기도 한다. 결국 인식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NS가 발달되고 개인 미디어가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욕구와 인식이 마치 대중적인 양 포장돼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내가 어떤 곳을 다녀와서 좋고,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것 같아 ‘핫 플레이스’로 SNS 등에 올리는 것인데, 이를 탓할 수는 없다. 여행지를 고르는 선택자들의 몫일 수도 있다. 여행지에 대한 인식 변화도 무분별한 ‘핫 플레이스’ 현상에 한몫한다. 기존의 여행지는 여기저기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관광 명소여야 했다. 관광버스들이 줄 지어 가는 곳, 한 번 가면 여러 곳에서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 한마디로 국내에서도 이름 난 곳들이 여행지였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어도 내가 가서 즐겁고, 편하면 된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 나오는 곳이면 금상첨화다. 볼거리가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유명 포토존 한 곳만 있으면 그곳이 여행지가 되고 ‘핫 플레이스’가 된다. SNS와 개인 미디어 확산에 따른 풍경이다. 스토리텔링도 여행지 선택에 중요한 부분이다. 예전엔 그냥 보고 사진 몇 장 찍는 유명 여행지라면 족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곳의 이야기들, 숨은 맛집이 여행객들을 끌어 당긴다. 많은 것을 보지 않아도 많은 사진을 찍지 않아도, 내가 그곳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나에겐 ‘핫 플레이스’가 되는 것이다. 여행지를 고르려면 ‘핫 플레이스’를 찾을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먼저 찾는 게 중요하다.
[공감] 소중함과 불안함 사이
예능계의 인류학자로 일컬어지는 코미디언 이수지의 유튜브 영상을 가끔 본다.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디테일에 빠져들어 피식피식 웃다보면 어느 순간 현실의 희비극이 겹쳐진다. 최근에는 유치원 교사의 고된 현실에 대한 영상이 이슈였다. 물론 대사나 연기에 극적 과장이 섞여 있긴 하지만 상황 자체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유치원 교사로 분한 그녀가 야외 수업 중 아이들에게 달리기를 시키는데, 도착점에 가장 먼저 들어온 아이에게도 “1등!”, 두 번째로 들어온 아이에게도 “1등!”, 마지막으로 들어온 아이에게도 “1등!”, 결국 “모두가 1등!”이라며 아이들에게 칭찬 세례를 퍼붓다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원에서는요, 학부모님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정서 돌봄이에요. 그래서 정서 보호 차원에서, 승패를 나누지 않고 모두가 우승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요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운동회에서 경기의 승패를 가르지 않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점수나 등수를 드러내는 것을 지양하고 경쟁을 최소화하며 모두가 잘했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과거의 지나친 경쟁적 분위기와 서열적 평가로 인한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안겨 주지 않고 모두의 자존감을 높여주겠다는 의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런 운동 경기에서 패배를 경험하지 않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정서를 위한 일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달리기에서 등수를 감추고 모두가 1등이라고 말해주면 순간적인 속상함이나 좌절감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험도, 부정적 감정을 견뎌내며 건강하게 털어내는 경험도 하지 못하게 된다. 심리학에서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생에서 커다란 역경이나 비극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 자체에 압도되어 무너져 내리지 않고, 오히려 배우고 성장하며 결국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회복탄력성은 개인이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을 겪어가며 이를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키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작은 실패나 패배의 경험 없이 무균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라면? 그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좌절이 입시나 취업, 혹은 중요한 인간관계에서의 문제 등 중대한 일들이라면 아이들은 그것을 감당하고 극복하는 힘을 기르기도 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아이들의 정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운동 경기에서의 패배 같은 작은 좌절의 경험마저 회피하게 한다면 아이들은 회복탄력성을 기를 기회도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처럼 공교육에서는 비교 자체를 터부시하면서 사교육에서는 정반대의 논리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학원에서 아이들은 레벨 테스트로 반이 나뉘고, 점수에 따라 끊임없이 평가받는다. 학부모들은 이와 같은 구조를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경쟁적 분위기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다. 이는 위선이라기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내 아이가 밀려날까봐 두려운 것이고, 그 밀려남으로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스러운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보호해 주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시장 경쟁에서는 살아남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한국의 부모들에게 이중 잣대를 가지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1등이다.’라는 현실 부정도, 미래의 경쟁에서 어떻게든 패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물밑 작전도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경쟁과 실패 경험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 그리고 승패와 무관하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는 능력, 그런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달리기에서 등수를 지우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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