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2 토요일
[사설] 부산 관광 르네상스, 머물기 좋은 팬덤 도시로 가야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가파르게 느는 추세다. 지난해 364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올 상반기에 벌써 242만 명을 넘어섰다. 연간 400만 명 목표 달성도 무난해 보인다. 부산 관광 르네상스가 활짝 열린 셈이다. 〈부산일보〉는 부산시가 지난달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부산 관광의 강점, 약점, 기회, 위협을 분석해 부산 관광의 경쟁력과 개선 과제를 도출했다. 관광객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이 부산을 선택한 이유와 매력, 여행 중 마주한 불편 등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이를 통해 부산이 관광도시를 넘어 머물수록 좋아지는 ‘팬덤 도시’로 가기 위한 전략을 모색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다. 외국인들은 부산 관광의 가장 뚜렷한 강점으로 안전을 꼽았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테이블에 두고 자리를 비우는 광경을 목격하거나, 호텔에서 잃어버린 시계를 다시 찾은 경험을 통해 부산의 치안을 높게 평가했다. 도심과 자연이 함께 있고 즐길 거리가 많다는 점은 부산을 서울과 차별화된 매력을 지닌 도시로 부각시켰다. 2020년대 들어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부산엑스더스카이, 스카이라인 루지, 아르떼뮤지엄 등 새로운 체험형 콘텐츠가 증가한 것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여유롭고 매력적인 해양 도시의 장점을 잘 살린다면 부산에서 한 달 살기와 워케이션 수요를 늘리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외국인들이 가장 큰 불편으로 꼽은 쓰레기통·화장실 등 편의시설 부족은 관광 수용 태세에서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이다. 관광지 간 이동을 위한 대형 택시와 같은 맞춤형 교통수단이 부족하고, 식당 예약에 한국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부분도 불편을 가중시킨다. 외국인등록증이 없어 쿠폰·배달앱 가입이 막히고, 자국 결제 시스템을 쓰지 못하는 금융·행정적 장벽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관광객은 비짓부산패스를 잘 사용하는 반면 일본 관광객은 이를 잘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적과 언어권에 따라 여행 방식이나 정보를 얻는 경로가 다르다는 말이다. 국가별 특성과 니즈를 파악해 맞춤형 관광객 유치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제 부산 관광의 패러다임을 ‘단순 방문’에서 ‘지속 가능한 팬덤 형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행사가 짠 일정에 따라 단체로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에서 소수 인원이 직접 일정을 만드는 개별 여행이 대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SNS에서 정보를 찾고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여행지를 추천받고 동선을 짠다. 관광객의 선택지도 기존 유명 관광지 밖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해운대·광안리뿐만 아니라 원도심·영도·서부산과 경남, 울산의 관광 정보 등 온라인 콘텐츠를 확충해 관광 영역을 넓혀야 한다. 일회성 관광객을 부산의 열렬한 팬으로 만들어 다시 찾고 경험하고 싶어하게 하는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사설] 후보자 의혹 확산하는데 버티기에 맹탕 청문회 예고
부적격 논란의 중심에 선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를 통한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히고 나섰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겸직 논란에 대해 “법률이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청문회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오는 15일로 예정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역시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다. 청와대의 청문회 강행 기조 아래 후보자들이 일제히 정면 돌파에 나선 양상이다. 마치 짜여진 각본 따라 진행된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의혹들로 여론이 악화하는데도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불통의 태도다. 그 사이에 후보자들을 둘러싼 의혹은 날로 확산했다. 김 후보자의 경우 기존에 의혹이 제기된 제약사 이외에 또 다른 제약사 관련 식약처 청탁 의혹이 불거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 후보자 감싸기 행태도 노골화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있던 강신철 국방부 장관 후보자도 장남의 분당 상가 재산 누락 논란에 이어 본인과 부친의 위장 전입을 통한 철거민 특별분양 의혹까지 추가 폭로됐다. 용 후보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30분에 걸쳐 그동안 제기된 의혹과 논란을 조목조목 반박한 후 야당을 향해 청문회 일정을 잡아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후보자들이 청문회를 자신의 해명을 쏟아낼 기회로 여긴다는 느낌마저 든다. 청와대나 후보자들이 청문회를 거치자고 한 것이 시시비비를 한 번 가려 보자는 취지라면 모르지만 여론 간보기나 시간 끌기가 될 것으로 보는 국민이 적지 않다. 청문회만 마무리하고 임명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청문회 자체가 일방적인 해명 자리가 될 게 뻔하다. 김 후보자 청문회는 증인·참고인이 한 명도 없을 공산이 크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 들어 ‘무증인 청문회’가 고착됐다는 점이다. 한성숙·김민석 총리 후보자, 정성호·정은경·김은경·정동영·배경훈·최휘영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증인·참고인 없이 진행됐다. 거대 여당이 버텼기 때문이다. 맹탕 청문회는 국민들에게 공직 검증 제도의 존재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들고 있다. 맹탕 청문회의 결과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져야 한다. 장관 후보자들을 향한 의혹과 논란이 더 강해지는데 도덕성과 자질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 신뢰를 어떻게 얻겠는가.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와중에 이런 불통 인사는 국정 동력을 깎아 먹고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청와대가 국민 눈높이에 미달하는 후보자에 대해 결단을 내리고 이런 후보자들을 검증대에 세운 인사검증 시스템을 점검하는 길을 택하길 바란다. 여당도 거대 의석을 무기로 검증 절차를 무력화하는 행위가 대통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설] 부산일보 창간 80주년, 부울경 해양수도권 함께 간다
〈부산일보〉가 창간 80돌을 맞았다. 1946년 9월 10일, 해방의 기쁨과 혼란이 소용돌이치던 시절 ‘진실을 공평히 보도한다’, ‘평론은 중정을 관철한다’를 사시로 내걸고 첫 지면을 펼친 이래 변하지 않은 것은 지역과 시민의 편에 서는 보도 정신이었다. 부산·울산·경남을 기록하고 대변한 지면에는 전쟁의 상처, 산업화와 민주화의 열정, 자치분권의 열망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 보도처럼 권력에 굴하지 않은 정론은 때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부울경은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심장부였고, 그 중심에는 지역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기록자 〈부산일보〉가 있었다. 부산의 항만과 신발 산업, 울산의 중화학 공업과 에너지, 경남의 조선과 기계 산업이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장대한 역사도 지령 2만 4848호에 이르는 〈부산일보〉 지면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2026년은 부산항 개항 150주년의 해다. 부산항은 대한민국이 세계와 만나는 문이었다. 배가 드나들던 항만은 물류의 현장이었고, 산업의 출발점이었으며, 부산을 제2도시로 키우는 성장 엔진이었다. 이제 그 바다가 묻고 있다. 항만도시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해양수도로 도약할 것인가. 지금 부울경은 거대한 전환의 도전에 맞닥뜨려 있다. 피란수도에서 해양수도로.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을 해양수도권으로 도약시키는 국가 대역사가 용틀임하고 있다. 부울경을 하나의 바다로 잇고, 동남권을 대한민국의 새 성장축으로 세우는 데 지역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다. 해양수도를 여는 발상의 전환은 거꾸로 펼친 세계지도에 있다. 세계의 위아래를 바꿔 놓고 보면 변방처럼 보이던 바다가 중심이 되고, 끝이라고 여겼던 남쪽이 세계로 향하는 앞자리가 된다. 부산의 시선 역시 그러해야 한다. 수도권의 시선으로 내려다본 지역이 아니라, 바다의 시선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는 해양수도 부산을 보아야 한다. 해양수산부 이전과 HMM을 비롯한 해운기업 본사 이전, 북극항로 시범 운항은 해양수도권의 문을 여는 첫걸음이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려면 부울경의 의기투합과 치밀한 실행 계획이 필수다. 산하 공공기관 이전, 동남투자공사 설립, 해사법원 설치, 해양 금융과 물류, 조선·에너지·제조 산업의 연계가 맞물려야 한다. 시민이 체감하는 일자리와 기업 투자,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산업 생태계, 지역 경제로 이어지는 실질적 효과가 뒤따라야 한다. 동남권의 인적·물적 자원이 용광로처럼 녹아들어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 관건이다. 울산의 에너지와 산업 전환 역량, 경남의 조선·항공·기계·제조 기반, 부산의 항만·물류·금융·문화 역량이 해양경제권이라는 공동의 목표 속에 움직여야 한다. 경제적 결속력이 강해질 때 생활권의 공감이 생기고, 그 공감 위에 통합의 길도 열린다. 〈부산일보〉가 창간 80주년의 미래 비전으로 제시한 ‘부울경과 세계를 잇는 초연결 미디어 허브’도 이 흐름 위에 서 있다. TV방송국 개국과 유튜브 활성화를 통해 콘텐츠 형식과 플랫폼을 다변화하면서 신문과 방송, 디지털을 아우르는 ‘종합 미디어 콘텐츠 그룹’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해양수도의 상징성이 큰 북항에 신사옥을 착공하는 것도 ‘바다 시대’ 부산을 선도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80년을 담다, 100년을 열다.’ 〈부산일보〉의 80주년 슬로건은 더 큰 바다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이다. 그 바다는 부산, 울산, 경남이 함께 헤쳐가는 바다이며, 대한민국이 해양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부산일보〉의 100년은 부울경 해양수도권과 함께 간다. 그 미지의 길에서 독자와 시민은 우리의 나침반이고, 지역의 미래는 우리의 항로다.
달의 소유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이미지에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달과 성조기가 그려진 이미지에 ‘THE MOON IS OURS’(달은 우리 것)라는 문구를 달아놓았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이 게시물에 각국 언론과 누리꾼들은 곧바로 발끈했다. 달이 어떻게 한 나라 소유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오래전부터 달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었다. 모두의 것이었다. 동아시아 나라들은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설화를 함께 나눠 가졌다. 아시아인 최대 명절은 추석이다. 한국도 물론이다. 신라 때 소원을 비는 대상으로 달을 표현한 향가나 달로 희망과 그리움을 풀어낸 김소월과 이육사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밤하늘에 뜬 달에 마음 흔들린 경험은 한국인 누구나 지녔다. 나라마다 달은 조금씩 다르다. 그리스 대표 ‘달의 여신’은 셀레네와 아르테미스, 두 명이다. 중국 중추절은 ‘달의 선녀’ 항아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일본 ‘달의 신’ 츠쿠요미는 요즘도 게임 캐릭터로 쓰인다. 달은 언제나 올려다 볼 수 있는 하늘이었다. BTS가 노래 ‘MOON’에서 자신들을 달에, 팬을 지구에 빗댄 것도 그 오랜 정서의 연장선이다.이렇게나 다정한 위성을 둘러싼 경쟁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1959년 소련 루나 1호가 처음 달 근접 비행에 성공하자 1969년 미국은 아폴로 11호를 띄워 달 유인 착륙으로 맞불을 놨다. 냉전 체제 내내 달은 미국·소련 경쟁의 무대였다. 2000년대 들어 일본 중국 인도 등 강국들이 가세하며 쟁탈전이 한층 가열됐다. 지난 4월 유엔 주도로 발사된 아르테미스Ⅱ는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3년 만의 유인 달 탐사다. 중국도 2030년 이전 유인 달 탐사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국제적으로 달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1967년 발효된 우주조약은 ‘달과 천체는 국가가 소유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개인이나 기업은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미국인 데니스 호프는 달 토지 문서를 1에이커에 20달러가량으로 팔았다. 물론 국제법학계와 유엔은 그 어떤 국가도 우주나 천체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달은 우리 것’ 해프닝이 새삼 일깨워주는 사실이 있다. 인류 공통 유산이던 달이 이제 자원과 패권이 걸린 실질적 공간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달이 품은 ‘노다지’, 얼음과 희귀 자원 공간을 향한 욕망의 질주는 막을 수 없는 일이 된 것 같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김영한
[데스크 칼럼] 65만 청년들이 그냥 쉰 이유
최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진’을 차지한 한 여성의 성형 논란이 뜨겁다. 과거 방송에 출연했던 10대 시절 모습과 현재 외모가 크게 다르다는 이유로 의혹이 제기됐다. 당사자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차가운 시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성형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유독 이 문제에 민감하다. 유명인의 외모가 조금만 변해도 인터넷은 순식간에 불붙는다. 대중은 왜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할까? 그들은 단순히 외형의 변화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분노하는 지점은 바로 ‘공정의 훼손’이다. 성형은 하나의 특혜나 반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자본으로 출발선을 바꾸었다는 인식이 작동한다. 특히 외모 평가가 핵심인 미인대회에서 성형이라는 편법을 쓴 참가자는 경쟁의 규칙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공정성 시비는 비단 미인대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공정성은 한국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가장 예민한 역린이다. 취업과 시험 등 경쟁이 치열한 영역에서 반칙으로 승리를 챙겨가는 광경을 볼 때 대중은 분노를 넘어 무력감에 빠진다. 최근 한 인기 연예인이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거센 비난을 받았다. 대중이 분노한 본질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을 배신하고 축적한 부와 권력이 대를 이어 세습되었기 때문이다. 그 부당한 자본을 바탕으로 후손들이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는 점이 분노의 근본 원인이다. ‘금수저’와 ‘흙수저’를 바라보는 씁쓸한 시선도 그 연장선에 있다. 부모의 직업과 재력이 자녀의 스펙을 결정하고, 노력이 미치지 못하는 격차를 벌려놓는 세습 자본주의가 이 논쟁의 이면에 있다.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 하나로 출발선에서 까마득히 앞서 나가는 광경을 볼 때 청년들이 느끼는 것은 깊은 박탈감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이 이토록 화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이를 타인의 성공에 대한 시샘이라 치부한다. 그러나 본질은 불공정한 사회 구조에 있다. 기득권이 짜놓은 판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제대로 된 경쟁조차 해보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청년 사회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실제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 절반가량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불공정하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기득권의 부정부패, 공정하지 못한 경쟁 시스템 등이 불공정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용혜인 의원을 둘러싼 ‘벼락출세’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용 후보자는 민주당 주도 위성정당의 혜택으로 비례대표만 두 번 당선됐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한 채 장관까지 겸직하겠다고 선언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이중·삼중의 특혜”라는 지적에 직면했다. 공정과 기회의 균등을 외치던 젊은 정치인마저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리는 모습은 위선 그 자체다. 불공정이 일상이 된 사회 탓일까. 최근 청년 고용률은 장기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구직도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청년이 65만 명을 웃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향해 의지 부족이라며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청년들이 도전에 발을 빼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판이 뒤집히지 않는 현실에 절망한 것은 아닐까. 불공정에 가로막힌 청년들에게 노력이라는 단어는 이미 효용을 다했다. 그들은 주류 사회의 경쟁 체제 밖으로 탈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43조 원이 넘는 청년 예산을 편성했다. 성장 단계별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현금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국가가 쥐여주는 시혜성 푼돈이 아니다. 그것은 자립을 돕기는커녕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어 청년을 더 취약하게 만드는 환대의 역설일 뿐이다. 현금 살포는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특히 자신과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나랏빚이라는 사실을 청년들은 잘 알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과제는 임시 처방이 아니다. 청년이 원하는 것은 제대로 싸워볼 수 있는 ‘공정한 기회’다. 특혜를 차단하고 동등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제도적 뼈대를 먼저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 최소한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과 제도적 보장이 마련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막대한 예산도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국가가 공정하지 않은 게임을 방치하는 것은 청년들에겐 깊은 상처를 안기는 또 다른 폭력이다.
[중앙로365] 금융센터세계연합 부산 총회와 경쟁의 본질
다음 주 세계 주요 금융도시의 리더들이 부산을 찾는다. 국제금융센터세계연합(WAIFC) 연차 총회가 13~16일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와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다. 해양금융과 블루 이코노미를 주요 의제로 삼는 이번 총회는 부산의 산업적 강점과 금융도시로서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총회 자체가 아니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세계의 금융도시들은 왜 치열하게 자본과 기업을 끌어들이려 하는가. 그리고 부산은 과연 그 경쟁에서 무엇을 갖고 있으며, 무엇이 부족한가. 두바이와 아부다비, 인도의 GIFT시티, 카자흐스탄의 AIFC 등 새로운 금융 거점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국제금융센터를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는 이유는 금융중심지가 단순히 금융회사 몇 곳을 유치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이 모이면 기업이 모이고, 기업을 따라 인재와 정보가 움직인다. 법률·회계·컨설팅·리서치 등 연관 산업도 성장한다. 결국 금융중심지를 갖는다는 것은 경제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은 흥미로운 위치에 있다. 세계적 수준의 항만을 기반으로 조선·해운·물류산업이 집적돼 있고, 선박금융과 해상보험, 인프라 투자, 친환경 선박 전환 등 금융과 결합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도 충분하다. 산업과 금융을 연결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서는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산업도시가 저절로 좋은 금융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산에서 배가 만들어지고 화물이 오가지만, 그 산업에 필요한 자금 조달과 투자 결정까지 부산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업은 부산에 있는데 금융 거래와 의사 결정은 다른 도시에서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금융의 부가가치 역시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로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부산 금융중심지의 핵심 과제다. 금융중심지의 경쟁력은 건물의 높이나 입주 기관의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실제로 거래를 만들어내느냐이다. 부산의 기업이 해외 자금을 조달할 때 부산의 금융회사와 전문가들이 그 과정의 중심에 서고, 해외 투자자가 부산의 산업과 프로젝트를 찾아와 투자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금융의 이름만 부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금융의 의사 결정과 거래가 부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WAIFC 부산 총회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세계 각국의 금융도시 관계자들이 부산에 모이는 만큼 그들이 어떻게 자본을 유치하고 금융 거래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봐야 한다. 동시에 그들의 눈으로 부산의 금융 환경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 해외 금융회사와 투자자가 부산에서 거래하려 할 때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제도와 인프라가 부족한지, 무엇을 갖춰야 부산을 선택할 것인지 묻고 답을 찾아야 한다. 해양금융은 부산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최종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해양산업에서 축적한 금융 경험을 인프라와 대체투자, 친환경 전환, 디지털 금융 등으로 확장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분야의 이름을 하나 더 붙이는 것이 아니라 부산에서 실제로 새로운 금융거래가 얼마나 만들어지느냐이다. 제도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규제 완화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해외 자본과 금융회사가 부산에서 더 쉽고 예측 가능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필요한 규제와 제도가 무엇인지도 추상적으로 논의할 것이 아니라 실제 투자와 거래의 관점에서 하나씩 따져봐야 한다. 글로벌 금융도시 경쟁은 결국 자본과 의사 결정을 둘러싼 경쟁이다. 어디에 금융회사가 몇 개 있는가보다 어디에서 자본이 만나고 거래가 이루어지며 새로운 투자가 결정되는가가 승부를 가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WAIFC 부산 총회의 성패 역시 참석자의 숫자나 행사의 규모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총회가 끝난 뒤 부산과 세계 금융도시 사이에 새로운 거래와 투자가 시작되는지, 부산의 기업과 프로젝트에 해외 자본이 연결되는지, 실질적인 금융 협력이 이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부산은 이미 세계와 연결되는 항만을 갖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항만을 오가는 물류뿐 아니라 세계의 자본과 금융의 의사 결정이 부산을 거쳐 흐르게 하는 일이다. 이번 총회가 부산을 세계에 보여주는 행사에 그치지 않고, 부산이 스스로의 금융 경쟁력을 세계의 기준으로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금융중심지는 선언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본이 움직이고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금융중심지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우리 동네에 공룡이 나타난다면
극장에 외계인이나 괴생명체가 나타나 평범한 가족을 위협하던 시절이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은막 아래 자란 세대라면, 저녁 식사 도중 뒷마당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상상만으로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스크린은 평범한 마을, 가장 보통의 가족을 무대로 삼아 비범한 모험을 펼쳐 보였다.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의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은 바로 그 시절의 정서를 정면으로 소환하는 영화다. 1982년 미국 미시간의 교외 마을 오크 스트리트. 해고당한 사실을 숨긴 채 피자 배달을 하는 아빠 그렉(이완 맥그리거), 작가를 꿈꾸는 엄마 드니스(앤 해서웨이), 천문학도를 지망하는 딸 오드리, 옆집 전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들 브라이언, 그리고 강아지 스타벅까지. 플랫 가족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중산층 가정이다. 그런데 어느 폭풍우 치는 밤 사건이 발생한다. 마을 전체가 시공간의 틈으로 통째로 빨려 들어가면서, 무려 공룡이 활보하는 아득한 시대에 뚝 떨어진 것이다. 전기도 수도도 끊긴 골목에는 태고의 포식자들이 쓰레기 봉투를 뒤적거리고 있다. 영화의 발상 자체는 단순하고 유쾌하다. 뒷마당에 티라노사우루스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상상을 영화는 진지하게 밀어붙인다. 스필버그식 엠블린 모험담의 정취, 즉 가족이 위기를 함께 넘기며 끈끈해지는 그 익숙한 온기를 정성껏 복원하면서도, 감독 특유의 심술을 곳곳에 심어둔다. 안심할 만하면 다른 인물이 허무하게 공룡들의 밥이 되고, 총을 들고 용맹하게 나선 이웃은 근사한 활약 대신 익룡에게 그대로 뜯겨나가기 일쑤다. 향수 어린 장르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클리셰를 착실히 따라가다 기어이 한 번씩 뒤통수를 치는 구조다. 이 심술은 관객의 반응을 정확히 둘로 가른다. 누군가는 예측 불허의 전개에 낄낄대고, 누군가는 몰입이 깨진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같은 장면을 두고 정반대의 반응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얼마나 태연하게 장르의 규칙을 비틀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공룡이 난입하는 소동 한복판에는 ‘가족’이 있다. 해고 사실을 숨기던 가장 그렉도, 꿈을 좇던 엄마 드니스도, 각자의 사춘기를 지나던 아이들도 공룡 앞에서는 체면 차릴 겨를이 없다. 다만 영화는 가족의 위기를 거창한 화해의 순간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냥,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매달리다 보니 어느새 가까워졌다는 정도의 담백한 온도를 유지한다. 그 편이 오히려 이 유쾌한 재난극에는 더 잘 어울려 보인다. 감독의 이력을 떠올리면 이 조합은 꽤 흥미롭다. 영화 ‘팔로우’와 ‘언더 더 실버레이크’에서 그는 평범한 미국 교외의 골목을 슬그머니 기이하고 불길한 공간으로 뒤바꾸는 감각을 벼려왔다. 이번엔 그 감각을 J.J. 에이브럼스라는 대형 제작자와 함께 훨씬 큰 스케일로, 그것도 가족 모험 장르에 풀어놓았다. 여러 차례 개봉이 밀리며 오랫동안 창고에 머물렀던 이 영화가, 정작 극 중에서는 제 시간대를 잃고 표류하는 마을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도 웃어넘기기 좋은 우연이다. 그리고 가족을 구하는 건 거창한 영웅적 결단이 아니라는 점도 재미있다. 어이없을 만큼 소박한 이 결말이야말로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이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통째로 뒤집혀도, 결국 우리를 지켜주는 건 거대한 영웅담이 아니라 곁에 있는 존재라는 것. 뒷마당에 공룡이 나타나는 상상은 허황되지만, 그 상상 속에서도 가족이 함께 도망친다는 사실만큼은 이상하게 든든하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예술이 테러를 대하는 방식-게르하르트 리히터의 '9월'
2001년 9월 11일, 여객기 두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고, 이날 테러로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9·11은 테러인 동시에 ‘이미지의 사건’이었다. 우리는 사건 자체만큼이나 반복 재생된 그 이미지를 기억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테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1960년대 지그마어 폴케 등과 함께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내세운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는 ‘사진-회화’를 통해 사진 이미지를 회화로 옮긴 후, 그것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처리한다. 이 흐림은 기술적 효과가 아니라, 사진이 지닌 객관성의 신화를 붕괴시키는 전략이다. 역설적으로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캔버스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리히터가 2005년 그린 ‘9월’(September)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한 것으로 52.1×71.8㎝의 작은 유화다. 화면에는 푸른 하늘과 쌍둥이 빌딩, 검은 연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는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뒤 화면을 긁고 문질러 형상을 흐리게 처리했다. 세계가 선명하게 보았던 장면을 그는 오히려 흐릿하게 되돌려놓는다. 리히터에게 ‘흐리기’는 오래된 회화적 방법이다. 그는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믿음을 의심했다. 9·11 이후 충돌과 붕괴의 장면은 이미 수없이 소비되었다. 리히터는 충격적인 이미지를 보태는 대신, 우리가 보았다고 쉽게 믿었던 사건을 다시 낯설게 만든다. 그의 흐릿한 화면은 테러의 잔혹성을 지우거나 가해와 피해의 차이를 흐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테러 직후 형성된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에 머물지 않고, 그 이후 이어진 보복과 전쟁, 적과 동지의 구분이 만들어낸 또 다른 폭력까지 돌아보게 한다. 흐림은 판단의 포기가 아니라, 너무 빠른 판단을 멈추게 하는 각성의 장치다. 9·11 석 달 뒤, 위르겐 하버마스는 지오반나 보라도리와의 대담에서 테러를 근본주의와 폭력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소통의 단절이라는 관점에서 성찰했다. 리히터의 그림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와 만난다. 테러는 우리에게 즉각 적과 친구, 선과 악을 나누라고 요구한다. 충격적인 이미지 역시 판단의 속도를 재촉한다. 그러나 ‘9월’은 그 속도를 늦춘다. 흐림은 망각이 아니라 성급한 확신의 유보다. 9·11 이후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테러와 전쟁, 보복과 증오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테러는 세계를 둘로 가른다. 예술은 그 사이에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폭력에 폭력으로 답하지 않는 길은 가능한가? 리히터는 ‘9월’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안다고 믿었던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한다. 어쩌면 그 흐릿한 화면 속에, 폭력으로 단절된 대화가 시작될 작은 틈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기고] 세계유산위원회는 끝났다, 부산은 이제 시작이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막을 내린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우리나라가 세계유산협약 가입 이후 처음 개최한 이 회의에 세계 160여 개국에서 3000여 명이 참가했다. 이제 행사의 열기가 가라앉은 자리에서 그 성과가 부산의 미래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되짚어 볼 때다. ‘한국의 갯벌’ 확장 등재와 함께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 선언’의 채택이었다. 부산 선언은 기존 5대 전략목표에 ‘협력’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고, AI 기술 활용과 그 책임을 공식 의제로 제시했다. 베니스 헌장과 리우 선언처럼 도시 이름을 담은 국제 문서는 그 도시를 하나의 가치와 정신으로 기억하게 한다. 이로써 부산의 이름도 세계유산의 역사에 오래 남게 되었다. 참가자들은 해양경관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국가 기능을 유지하고 피란민을 받아들이며 국제사회의 연대 속에서 도시와 공동체를 지켜 낸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를 현장에서 만났다. 인류애와 포용, 국제연대와 평화를 증언하는 부산의 가치가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세계유산위원회 이후 부산은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기억만 남긴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성과는 후속 사업의 지속성과 실행력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지난달 22일 우리나라 최초의 북동항로 컨테이너선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신항을 출발했다. 북극항로 시대가 구호를 넘어 실제 항해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개척은 부산이 글로벌 해양도시로 도약할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러나 글로벌 해양도시는 항만과 물류의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바다를 통해 세계와 교류해 온 역사와 문화, 전쟁과 피란의 위기를 국제연대로 견뎌 낸 경험이 함께해야 한다. 북극항로가 부산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길이라면, 세계유산은 그 길에 부산만의 정체성과 품격을 더하는 힘이다. 항로 개척 또한 북극 환경과 해양생태계,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 바다를 이용하는 도시를 넘어 바다를 이해하고 지키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이번 위원회를 통해 항구와 원도심, 산과 바다, 피란수도의 기억이 어우러진 ‘부산다움’이 세계인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그 관심을 부산항과 원도심으로 이어 지역의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유산은 도시를 멈춰 세우는 보존제도가 아니다. 유산을 문화관광·교육·연구·첨단기술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미래 자산이다. 다만 그 출발점은 유산의 진정성과 장소성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 보존 없는 활용도, 시민과 지역공동체가 빠진 세계화도 오래갈 수 없다. 부산시는 국제유산포럼의 정례화와 유네스코 카테고리2센터 유치를 후속사업으로 제시했다. 이제 누가, 어떤 조직과 예산으로, 언제부터 실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보존과 활용,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통합관리, 부산의 해양·산업·근현대유산 연구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장기적인 유산정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끝났지만 부산의 세계유산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부산 선언은 회의장의 문서에 머물지 않고 도시정책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부산이 바다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도시이자 인류애와 평화, 자연과 유산에 대한 책임을 세계와 나누는 도시가 되도록 이제 다시 힘껏 노를 저어야 한다.
[다른 시선으로] 운동의 개인됨
사회운동 조직은 전반적으로 사람을 잘 못 돌본다. 여기에는 단서 조항이 있다. 운동 조직이 다른 곳보다 특별히 돌봄에 무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곳보다는 그런 곳들이 대체로 구성원들을 잘 돌보려 애쓴다. 중요한 것은 상대적인 기대치에 기댄 개인의 체감이다. 운동 조직이 안팎으로 외치는 가치들은 돌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걸 들은 사람들은 내가 저기서는 뭔가 그럴싸한 돌봄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 기대란 실로 원대한 것이어서, 그 높은 기대치에 비해 실제 돌봄의 크기는 자연히 미달될 수밖에 없다. 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꿈을 먹고 산다. 거기에는 당대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아무쪼록 적은 것도 포함된다. 그런 난망한 기대가 나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런 기대가 있어야 운동의 이름에 값한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든 변했으면 좋겠는 기대야말로 운동의 핵심이다. 문제는 그런 막대하고 원대한 기대를 품고 사는 요령이다. 그 기대는 보통 품이 많이 들고, 그런 품 많은 기대를 품고 사는 방법은 사실 운동가도 운동가 아닌 사람들도 잘 모른다. 세상에 없던 꿈을 꾸면 세상에 없던 품이 든다. 그 일은 운동 조직 내 돌봄망의 외연을 매번 뛰어넘고, 많은 경우 눈치껏 알아서 할 문제로 내 앞에 놓인다. 사람은 오래 속는 것을 싫어하고, 꿈을 꾸었거나 꿈을 꾸게 만들었으면 그에 합당한 책임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차라리 우리가 가진 것이 사실 이것뿐이고, 이것뿐인 여기서 함께 시작하자는 말이 위로가 될 수 있다. 어차피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와 결사와 돌봄이 필요하고, 동시에 거기에는 명백한 품과 비용이 든다. 전자의 필요만 얘기하는 것도 무책임하고, 후자의 비용만 얘기하는 것도 대책없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만드는 일이란 그만큼 무섭고 숭엄한 것이다.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 기대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일은 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 거기에는 내 혼자된 삶에 대한 구체적인 기대도 포함된다. 비혼과 1인 가족 운동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결정적일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끝내는 혼자일 때가 많을 것이다. 그걸 거짓말하지 않는, 그걸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조직이 좋다. 사회 문제의 개인화를 피하기 위해 개인됨을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 사회운동은 특히 개인의 막대한 역량이 필요하고, 실제로 혼자 지고 갈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런 곳일수록 이곳만큼은 다르겠지 하고 운동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예정된 실망을 헤아리고, 그에 대해 투명한 논쟁과 언어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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