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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⑩강·계곡·산 아우르는 금정산 자락 명품길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 갈맷길 마지막 여정에 다다랐다. 10코스 ‘금정산성 나들이’다. 10코스는 강과 계곡, 산을 모두 벗 삼아 걷는 길이다. 낙동강 둔치에 강줄기를 따라 길쭉하게 펼쳐진 화명생태공원을 가로지르며, 대천천 계곡과 금정산 자락을 따라 걷는다. 화명생태공원은 사계절 서로 다른 옷을 갈아 입고, 대천천은 맑은 계곡물에 은빛 물고기가 노닐고 왜가리와 쇠백로가 쉬어 간다. 대천천 누리길 전망대에 오르면 금정산이 선물하는 천혜의 비경에 탄복하고, 화명수목원에서는 잘 가꾸어진 초목을 보며 심신을 힐링할 수 있다. 10코스의 끝은 국내 1호 민속주인 ‘산성막걸리’로 유명한 금정산성 산성마을이다.
■화명생태공원 가로지르며 걷기
욜로 갈맷길 10코스는 북구 부산도시철도 3호선 구포역에서 금정구 금정산성 산성마을에 이르는 10km 구간이다. 구포역 1번 출구로 나오면 화명생태공원으로 가는 가로수 길이 나온다. 호젓한 가로수 길을 5분 정도 걸으면 부산시 낙동강관리본부 건물이 나타나고,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낙동강관리본부 건물 부근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10코스의 초반부가 ‘4대강 국토 종주 자전거 길’ 경로와 겹치기 때문이다.
강변대로 옆으로 난 다리를 건너 갈맷길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자전거가 많이 오가니 부딪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자전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덧 화명생태공원 초입이다.
리틀야구장(야구장B)을 끼고 돌아 화명생태공원을 본격적으로 걷는다. 화명생태공원 역시 삼락생태공원(욜로 갈맷길 9코스)처럼 낙동강 둔치에 강줄기를 따라 길쭉하게 펼쳐져 있다. 삼락생태공원을 걸었을 때처럼 공원 남쪽에서 북쪽으로 걸으면 된다. 자전거 길 옆으로 가로수를 따라 폭이 넓은 흙길이 나 있는데, 이 흙길을 따라 걷는다. 길 오른쪽으로는 야구장과 인라인 스케이트장, 풋살장, 축구장 등 체육 시설이 잇따라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화명야외수영장, 수생식물원과 차례로 만난다.
수생식물원은 여유가 있다면 잠시 들러봄직하다. 연못 위로 나무 덱으로 된 생태 탐방로가 설치돼 있다. 연못은 수생식물로 뒤덮여 온통 초록빛이다. 수련과 노랑머리연꽃, 물옥잠, 세모고랭이, 띠, 매자기 등이 자연 발생적으로 경쟁하며 자라고 있다.
화명대교 교각 아래를 지나 파크골프장과 그라운드골프장, 잔디축구장을 거쳐 화명수목원 방향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걷는다. 강변대로 교각에 좀 못 미친 곳에 있는 갈맷길 말뚝 이정표에서 금곡 방면(갈맷길 6-4 상행)으로 왼쪽으로 돌아 걸어 올라간다. 동원진교를 건너 화명 방면(갈맷길 6-4 상행)으로 걷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천천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대천천 맑은 물에 마음도 정화
대천천은 금정구 금성동의 공해마을 부근에서 발원해 화명수목원 등을 거쳐 북구 화명동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다음 갈맷길 여정을 위해서는 계곡 왼쪽으로 걷는 게 좋다.
대천천 물은 참 맑다. 계곡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수심이 좀 되는 곳에는 은빛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다. 계곡 돌무더기 위에는 왜가리와 쇠백로가 고고한 자태로 서 있다. 한때 수질 오염과 하천 공사 등으로 생태계가 많이 파괴됐던 대천천은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깨끗한 수질과 건강한 생태 환경을 되찾아 철새들이 다시 찾고 있다.
대천천을 따라 걷다 보면 대천천 산책로를 따라 300여m 정도 줄지어 서 있는 홍초밭을 만난다. 무성한 초록 잎들 사이로 어른 키만큼 높은 꽃대 끝에 새빨간 꽃들이 피었다. 초록과 빨강의 색깔 대조가 선명하고 강렬하다. 6~10월 개화 시기엔 홍초밭을 찾는 이들이 많다.
홍초밭을 지나면 계곡 산책로가 끊기고, 철제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나무 덱길과 만난다. 대천천 상류 쪽으로 덱길 위를 계속 걷는다. 제2대천교에서 다리를 건너지 말고, 횡단보도를 건너 대천천 상류 쪽으로 조금 더 걸어간다. 왼쪽에 화명코오롱아파트가 나타나고 막다른 길과 함께 대천천을 건너는 보행교가 나오면 제대로 걷고 있는 것. 곳곳에 있는 갈맷길 이정표를 잘 살피면 헤맬 우려가 적다.
대천천 보행교를 건너면 대천리초등학교를 끼고 대천천을 따라 산성로로 이어지는 짤막한 등산로가 나온다. 나무 덱 계단으로 돼 있어 걷기 부담스럽지 않다. 울창한 숲이 햇빛을 가려 주고,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도 들린다. 산성로에 들어서면 금정산 자락을 걷는 여정이 시작된다. 찻길 옆으로 금정산성 산성마을으로 이어지는 보행로를 걷는다. 나무 덱으로 된 오르막 구간이다. 경사도가 완만해 걷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산성로 보행로를 200여m 정도 걸어 올라가면, ‘대천천 가는 길’이라고 쓰인 큰 안내판이 나타난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대천천 계곡 입구다. 그냥 지나쳐도 되지만, 대천천 계곡과 대천천 애기소를 보려면 한번 걸어 들어가 봐도 좋다. 애기소는 대천천에 있는 물웅덩이. 2016년 정부가 정한 ‘전국 물놀이 안전 명소’ 5곳 중 한 곳으로 뽑히기도 했다.
애기소를 둘러본 뒤에는 대천천 입구 쪽으로 다시 돌아 나와 산성로를 따라 걷는다. 얼마 안 가 길 옆에 애기소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애기소는 대천천 입구에서 들러 봐도 되고, 애기소 이정표를 따라 걸어 내려가도 만날 수 있다. 애기소에 들르는 건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이다.
■금정산 자락 자연과 함께 걷는 길
화명수목원으로 가는 길에 대천천 누리길과 만난다. 대천천 누리길에는 전망대와 쉼터, 잔디 광장, 대천천 유아숲, 주차장 등이 있다. 산책로를 따라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특히 수국이 많이 자라는 수국 명소다. 개화 시기(6~7월)엔 수국꽃이 한가득이다. 대천천 누리길의 하이라이트는 전망대다. 전망대는 3곳이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부산의 명산 금정산의 위용과 장대함에 놀라고, 산자락에 가득한 녹음에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이 누그러진다. 경사진 대천천 누리길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누리전망대(전망대A)에서 보는 금정산의 경치는 누구나 탄복할 만하다. 대천천 누리길은 불과 3년 전에 조성된 데다 금정산 자락에 있어 아직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산림청의 ‘걷기 좋은 명품길 20선(2023년 8월 선정)’에도 선정됐다.
대천천 누리길을 둘러 본 뒤 화명수목원으로 가려면, 산성로로 다시 빠져나와 걸어도 되고, 누리전망대에서 화명수목원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나무 덱길로 걸어 내려가도 된다. 화명수목원과 대천천 누리길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나무 덱길과 숲속 쉼터 등이 만들어져 두 명소를 연결해 준다.
화명수목원은 금정산 자락에 위치한 부산의 대표적인 공립수목원이다. 생태연못, 미로원, 침엽수원, 활엽수원, 화목원 등으로 이뤄져 있고,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가족 단위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많다. 화명수목원은 850m(40분), 750m(45분), 1.7km(1시간 20분) 등 3가지 관람 코스가 있다.
화명수목원 입구로 들어가 관리사무소와 숲속작은도서관을 경유해 갈맷길과 금정산성 서문 쪽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걸어 올라간다. 수풀이 무성한 산길에서 금정산성 서문과 만난다. 금정산성 서문은 산성을 방어했던 호국 사찰 해월사에서 관리했다고 해서 ‘해월문’으로도 불린다. 금정산성의 4대문 중 유일하게 계곡에 만들어진 문으로, 구포와 김해 방면으로 사람들이 왕래했던 성문이다.
금정산성 서문을 거쳐 산길을 빠져나와 산성로에 다시 접어들고 산성119안전센터를 지나면 국내 1호 민속주 ‘산성막걸리’로 유명한 금정산성 산성마을에 다다른다. 산성마을에는 멋진 카페와 맛집이 많다. 식도락도 함께 즐겨보자. 이날 걷기 앱으로 측정한 10코스 완보 시간은 2시간 33분, 걸음 수는 1만 5926보, 거리는 11.18km였다. 글·사진=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2023-09-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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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 ⑦ 다대포 선셋 피크닉-태양의 종점 향해 낙동강 하구를 걷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이번엔 7코스 ‘다대포 선셋 피크닉’을 걸었다. 낙동강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걸으면, 매립 위기를 딛고 서부산을 대표하는 시민 친수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다대포해변공원과 뭇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고우니생태길에 이른다. 낙동강 하구의 자연, 아름다운 풍광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드넓은 다대포해수욕장 백사장을 마주하면, 동부산 해수욕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한갓짐과 색다른 매력에 빠져든다. 낙동강 하구와 다대포해수욕장에서 볼 수 있는 붉게 타오르는 낙조는 7코스의 절정이다.
■강변길 걷다 ‘부네치아’와 조우
욜로 갈맷길 7코스는 사하구 신평동교차로에서 다대포해수욕장까지 7km 구간이다. 낙동강 하구를 따라 평탄하게 뻗은 산책로를 걷는 길이어서 걷기에 부담 없는 코스다. 출발점인 신평동교차로 강변덱까지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신평역에서 내려 9번 출구로 나와 강변 쪽으로 6~7분 정도 걸으면 된다.
강변덱에서 강물이 바닷물을 만나러 가는 방향을 따라 걷는다. 제방 사면에 조성된 산책로는 다대포 방면으로 쭉 뻗어 있다. 깔끔하게 조성돼 걷기 좋다. 이 길은 ‘노을나루길’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다. 사상구 엄궁동에서 다대포해수욕장까지 12km의 산책로로, 해 질 무렵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어 붙은 이름이다. 산책로를 느긋하게 걷다 보면 을숙도대교의 웅장한 골격에 금세 다가선다. 을숙도대교 램프 아래 구간을 지나다 보면, 길(강변대로) 건너편에 작은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조경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건널목을 건넌다. 을숙도대교 램프 구간 하부 일대에 조성된 ‘66호 광장’이라는 도시숲이다. 사하구청이 도심 속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조성했다. 공원 내에 산책로가 이어져 있고 정자도 보인다. 무궁화와 곰솔, 단풍나무, 이팝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왕벚나무, 가시나무 등이 무리 지어 자란다. 공원 가장자리에는 은행나무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다. 공장 지대와 대로변의 삭막한 공간에 조성돼 우거진 녹음이 더욱 청초하게 느껴진다.
낙동강변 쪽으로 건널목을 다시 건너지 말고 그길로 쭉 걸어 내려간다. 강변환경공원 파크골프장을 지나면, 장림포구가 나온다. 장림포구는 ‘장림포구 명소화 사업’을 통해 관광 명소로 탈바꿈 중이다. 어항이 정비됐고, 해양보호구역 홍보관, 문화촌, 놀이촌, 맛술촌, 도시숲 등이 들어섰다. 물 위에 떠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배들과 예쁜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형형색색 점포들(한지·도기 공방, 드론 촬영, 카페 등)의 풍경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섬과 닮았다고 해서 ‘부네치아’(부산의 베네치아)로 불린다. 문화촌 공간에는 물결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조각배 조형물 등이 반긴다. 한쪽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인데, ‘레인보우 브릿지’라는 이름의 다리를 놓는 공사다. 장림포구는 U자 형태로,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포구 첫머리나 끝으로 가야 한다. 관광객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포구 가운데에 20m 높이의 아치형 보행교를 놓고 있다. 무지개 색상으로 꾸며지며, 야간에도 무지개 경관 조명을 밝힌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장림포구를 돌아 나오며 마지막 지점에 있는 부네치아 선셋 전망대에 잠시 들른다. 3층 옥상전망대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계단을 오르면 된다. 전망대에 오르면 ‘BUNEZIA’ 일곱 글자에 무지개 일곱 빛깔을 입힌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낙동강 쪽을 조망하면 낙동강 하구 모래톱 중 하나인 맹금머리등이 눈에 들어온다.
부네치아 선셋 전망대에서 내려온 뒤에는 가장 먼저 만나는 건널목에서 낙동강변 쪽으로 건너야 한다. 다음 경유지인 고니나루쉼터로 가기 위해서다. 건널목이 드문드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니나루쉼터에는 낙동강 하구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도록 넓은 나무 덱이 설치돼 있고, 조경이 잘 가꾸어져 있다. 겨울철새 큰고니 두 마리가 마주 보며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조형물은 고니나루쉼터가 자랑하는 포토존이다. 큰고니는 같은 오리과에 속한 고니와 함께 흔히 백조로 불린다.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 사랑을 나누며 살아간다고 한다.
■‘게 구멍 숭숭’ 생명 살아 숨 쉬는 갯벌
고니나루쉼터에서 낙동강 하구를 바라보면 섬처럼 보이는 모래톱들이 가까이 보인다. 쉼터를 지나 다대포해수욕장 쪽에 가까워질수록 모래톱들이 더 가까이 보인다. 낙동강 하구에는 일곱 개의 모래톱이 있다. 진우도, 대마도, 장자도, 신자도와 백합등, 도요등, 맹금머리등이다. 지적도에 등재되면 ‘도’, 안 되면 ‘등’인데, 등은 수위에 따라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한다. 이들 모래톱의 지형은 낙동강으로부터 유입된 퇴적물이 바다의 밀물, 썰물과 만나 이동하고 쌓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 움직이듯 변화하고 있다. 7코스를 걸으면, 가까이에는 맹금머리등과 백합등이, 시정이 좋을 땐 도요등과 장자도, 신자도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모래톱 위에는 많은 철새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 모래톱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섞이는 기수 지역에 있어 생물 다양성이 풍부해 철새들의 훌륭한 보금자리다.
고니나루쉼터를 지나 강변길을 걷다가 지칠 만한 순간, 길(다대로) 건너 언덕에 낙동강 하구 아미산전망대가 보인다. 아미산전망대까지는 아주 가파른 덱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아미산전망대는 7코스의 경유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전망대에 오르면 낙동강 하구의 모래톱들을 모두 조망할 수 있어 욕심을 내 덱 계단을 오른다. 아미산전망대에 오르면 3층 실내 전망대에서, 또는 건물 옥상에서 낙동강 하구를 확 트인 시야로 조망할 수 있다. 낙동강 하구의 광활한 모래톱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낙조를 보기 위해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미산전망대에서 내려와 다대포해수욕장 쪽으로 걸으면 노을정휴게소가 나온다. 노을정은 고우니생태길 끄트머리에 설치된 작은 정자다. 노을정휴게소를 지나면 바로 고우니생태길이다. 사하구의 마스코트인 ‘고니’에서 따온 이름이다. 넓은 갯벌과 갈대숲 사이에 나무 덱이 설치돼 있고, 덱 곳곳에 전망대와 쉼터가 있다. 덱 아래를 내려다보면, 갯벌이 살아 숨 쉰다. 작은 구멍에서 기어 나온 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집게 다리를 모았다 펼쳤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단체로 춤을 추듯 우스꽝스럽지만 깜찍하다. 바닷물이 고인 곳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닌다.
고우니생태길과 다대포해변공원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다대포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 뒤쪽에 나란히 자리한다. 다대포해변공원은 소나무가 많아 사계절 푸름을 잃지 않는다. 많은 시민들이 소나무 아래에서 돗자리를 깔아 놓고 소풍을 즐기고 있다. 공원 가운데로는 해수천이 흐른다. 공원 한편엔 ‘다대포 매립 백지화 기념비’가 굳건히 서 있다. ‘개발의 미명하에 훼손될 다대포 매립을 주민들이 저지했다’ 기념비 건립 취지가 쓰여 있다. 다대포 매립이 진행됐다면 고우니생태길과 갯벌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 같아 기념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다대포해변공원에는 세계 최대 바닥 분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가 있다. 공원 입구 광장에 있는 음악분수대는 밤이면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음악과 함께 장관을 연출한다.
낙동강 하구와 고우니생태길을 배경으로 한 낙조는 예술 작품 같다. 일몰 시간대에 맞춰 걸으면 좋은 이유다. 걷기 앱으로 측정한 7코스 완보 시간은 2시간 17분, 걸음 수는 1만 6129걸음, 거리는 11.29km였다. 아미산전망대에 들르고, 고우니생태길과 다대포해변공원을 두루 걸었더니 거리와 시간이 꽤 늘었다.
2023-06-28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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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⑥‘피란 수도 부산’ 발자취 따라 걷는 원도심 해안길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6코스 ‘영도 흰여울 한 바퀴’를 소개하는 차례다. 6코스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문화가 공존한다. 영도대교와 흰여울 문화마을에서는 한국전쟁과 피란 시절의 애잔한 역사와 문화를, 깡깡이 예술마을에서는 우리나라 조선업과 수리조선업의 발상지로서 그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중리로 가는 해안길은 자갈을 밟으며, 때론 철제·나무덱 계단을 오르내리며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다. 아미르공원과 국립해양박물관이 있는 동삼혁신도시 일대에서는 해양 수도 부산의 진면목과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깡깡’ 수리조선 1번지를 걷다
욜로 갈맷길 6코스는 영도구 대교동 영도대교에서 동삼동 아미르공원·국립해양박물관까지 10.9km 구간이다.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중 2코스(16km)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출발점인 영도대교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부산도시철도 1호선 남포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와 잠깐 걸으면 된다. 영도대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완공된 연륙교로, 다리 상판 일부를 들어 올려 배가 다닐 수 있도록 한 국내 최초의 도개교다. 6·25전쟁 시기에는 피란민들이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만남의 장소로 이용됐던 곳으로 아픈 역사와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영도대교 끝자락엔 가수 현인의 동상과 노래비가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등 주옥같은 곡들을 남긴 현인은 영도가 고향이다. 영도경찰서를 지나 오른쪽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가면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작은 물양장이 나온다. 물양장 일대는 ‘대풍포 매축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매축권을 얻어 포구를 메워 시가지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영도는 조선업, 도기산업, 제염업 등 근대 산업의 중심지였다. 또 부산에서 가장 매출 규모가 컸던 목도시장이 있었고 전차가 다니고 극장이 있었으며, 유곽이 성업했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물양장 주변으로는 선박 수리·부품업체들이 가득하다. 20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수리조선소 10여 곳도 여전히 운영 중이다. 근대 조선산업 발상지, 수리조선 1번지로서 명성을 실감한다. 이 일대는 ‘깡깡이 예술마을’로도 불린다. 수리조선소에서 녹슨 배의 표면을 망치로 두드리며 벗겨 낼 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났다. 마을 곳곳에 페인팅 아트, 키네틱 아트, 라이트 프로젝트 등 예술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깡깡이마을 거리박물관에서 삼화조선, 현광산업, 선진조선, 마스텍중공업을 잇따라 지난다. 대동아파트와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부산지사를 거쳐 물양장을 돌아 부산항국제선용품유통센터 쪽으로 걷는다. 센터 앞 횡단보도를 건넌 뒤 대평초등학교 방향으로 걸어간다. 아파트와 빌라, 식당이 모여 있는 곳 사이사이로 난 길로 걷다 영도고가대교 횡단보도를 건너 반도보라아파트에 다다른다. 반도보라아파트를 오른쪽으로 끼고 해안산책로 방향 이정표를 따라 아랫길로 조금만 걸으면 절영해안산책로가 있고, 윗길로 부산보건고등학교를 지나 절영로를 따라 잠시 걸으면 흰여울 문화마을과 만난다. 마을 초입의 하얀색 건물이 마을 안내센터다.
흰여울 문화마을을 본격적으로 걷기 전, 흰여울 문화마을과 절영해안산책로를 멀리서 함께 사진으로 담는다. 절영해안산책로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방파제와 호안 위로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면 흰여울 문화마을과 절영해안산책로를 한 장의 사진에 모두 담을 수 있다.
■바다 맞닿은 피란촌에 꽃핀 문화예술
가파른 해안 절벽 위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흰여울 문화마을. 피란민들의 애잔한 삶이 녹아나 있는 곳이다. ‘흰여울’이라는 이름은 영도구 봉래산 기슭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낡은 집을 리모델링하고 골목과 담벼락 곳곳에 문화와 예술을 입혀 독창적인 문화예술 마을로 거듭났다. 골목골목에 아기자기한 카페와 공방, 독립서점, 아이스크림 가게 등이 자리한다. 느릿느릿 걷는 골목마다 파스텔 계통의 은은한 색상을 입은 건물, 벽화들과 마주한다. 골목 사이 푸른빛 바다가 배경이 되면 장관을 이룬다. 바다를 직접 조망할 수 있는 카페나 집 주변에는 예쁜 꽃들도 피어 화사함을 더한다. 지나치기엔 아쉬운 포토존도 많다. 꼬막 계단, 영화 변호인 촬영지, 이송도전망대 등이 손꼽히지만, 걷다가 찍는 사진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마을 아래엔 산책로가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다. 절영해안산책로다. 마을과 산책로를 잇는 계단은 모두 4개다. 맏머리 계단, 꼬막 계단, 무지개 계단, 피아노 계단이다. 마을 속에 들어가 골목길을 누비다, 바다와 더 가까이 맞닿은 곳을 걷고 싶다면 산책로로 내려가 걸어도 좋다. 계단이 매우 가팔라 오를 땐 숨이 차지만, 마을의 골목길과 해안산책로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보람이 크다. 절영해안산책로는 마을 아래에서 시작해 중리 해변까지 이어진다. 3km 거리다. 마을과 벼랑 아래 맞닿은 산책로는 흰여울 해안터널 앞까지 약 900m 정도다.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평탄하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시선은 어느새 바다에 머문다. 부산항을 오가는 선박들이 닻을 내리고 머무르는, 영도에서만 볼 수 있는 묘박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꼬막 계단~무지개 계단 구간 산책로는 재포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해당 구간은 걸을 수 없어 꼬막 계단을 이용해 마을로 올라가야 한다. 마을 끝 지점 이송도전망대에서 피아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흰여울 해안터널 앞이다. 흰여울 해안터널은 마을 아래 산책로를 중리 해변까지 이어주기 위해 암벽을 뚫어 2018년 개통했다.
■파도 소리 벗 삼아 걷는 해안길
흰여울 해안터널을 지나면 자갈이 깔린 해안길이 이어진다. 바닷물과 먼 쪽 돌일수록 뾰족뽀족해 걷기가 편안하진 않다. 하지만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는 길이다. 해녀촌을 지나면 나무덱으로 된 365계단이 나온다. 365계단을 오르면 차가 다니는 절영로가 나오기 때문에 오르지 말고 해안을 따라 계속 걸으면 된다. 365계단 앞을 지나면 시멘트길, 돌계단 등 포장된 산책로가 이어진다. 걷다 보면 하늘전망대와 75광장, 85광장 이정표가 차례로 나온다. 계단을 오르면 절영로에 다다르는 곳들이다. 절영로를 따라 걸어도 되지만, 해안산책로의 참맛을 계속 느끼고 싶다면 해안길 걷기를 추천한다. 하늘전망대와 75광장 이정표 사이 해안길에선 대마도 전망대와 빨간색 출렁다리를 만난다. 대마도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거나 미세 먼지가 적은 날 대마도를 볼 수 있다.
75광장 이정표 이후로는 산책로의 난도가 높아진다. 가파른 철제 계단과 나무덱 계단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한다. 발을 헛디딜까 조바심이 날 정도로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숨도 많이 찬다. 85광장 이정표를 지나 잠깐 걸으면 중리 해변이다. 중리노을전망대를 지나면 중리선착장이 나온다. 중리선착장에서 절영로를 따라 걸으며 조양비취맨션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롯데캐슬블루오션 아파트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 동삼교회 앞 삼거리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한국해양대와 하리 방면으로 쭉 걸어 내려간다. 해양대삼거리에서 동삼동패총전시관과 한국해양대 입구를 거쳐 해양로를 따라 6코스 종착점인 아미르공원과 국립해양박물관 쪽으로 걷는다. 국립부산해사고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을 지나면 아미르공원 표지석이 보인다. 공원 벤치에 앉아 우거진 녹음을 바라보고 있으면, 긴 여정으로 생긴 피로가 싹 가신다. 공원 옆 국립해양박물관으로 향한다. 6코스 종착점이다.
걷기 앱으로 측정한 6코스 완보 시간은 3시간 9분, 걸음 수는 2만 521걸음, 거리는 13.96km였다. 역사와 문화·예술의 향기를 따라 마을 골목골목을 꼼꼼히 둘러보다 보니 거리가 꽤 늘었다.
2023-05-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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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⑤이기대 해안가 숲길 걸으면 산과 바다 매력 동시에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이번엔 5코스 ‘오륙도 품은 이기대’를 소개한다. 5코스는 동부산에 있는 욜로 갈맷길 1~5코스의 마지막 코스로, 동부산의 매력이 응집돼 있다. 해안가 산자락에 난 산책로를 걸으면, 산과 바다의 매력과 절경을 동시에 느끼고 즐길 수 있다. 부산의 정체성이 녹아나 있는 코스다. 아울러, 부산의 미래인 부산항 북항을 비롯해 원도심 곳곳을 조망을 할 수 있어 원도심과 서부산 욜로 갈맷길의 묘미를 미리 맛볼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동해-남해 분기점에 서다
욜로 갈맷길 5코스는 남구 용호동 오륙도 선착장 앞에서 동생말 전망대까지 4.5km 구간이다. 출발점인 오륙도 선착장까지는 도시철도 노선이 닿지 않는 만큼, 시내버스를 타고 오륙도 스카이워크 정류장에서 내려 2~3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오륙도 선착장 앞은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오륙도는 오륙도 선착장 남남동쪽으로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바위섬들이다. 조석 간만의 차 또는 바라보는 위치·방향에 따라 어떨 땐 5개, 어떨 땐 6개로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륙도 선착장 앞에는 ‘코리아 둘레길 시작 지점’ 안내판이 서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해파랑길(오륙도 앞~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50개 코스 770km), 왼쪽으로 가면 남파랑길(오륙도 앞~전남 해남 땅끝마을 90개 코스 1470km)이다. 코리아 둘레길 안내판이 서 있는 지점, 즉 오륙도 앞이 동해와 남해를 나누는 기준이다.
오륙도 선착장에서 오륙도 스카이워크로 가려면, 버스 정류장 쪽으로 다시 걸어 올라가 오륙도 스카이워크 표지석이 있는 입구 쪽으로 가든지, 오륙도 선착장에서 오륙도 스카이워크로 바로 갈 수 있는 덱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된다.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35m 해안 절벽 위에 설치된 다리로 바닥이 투명 유리다. 마치 공중 산책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시정이 좋은 날엔 대마도를 볼 수 있다. 오륙도 스카이워크가 동해와 남해를 나누는 지점에 있는 만큼,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장자산 가파른 산비탈에 울창한 숲과 아찔한 절벽이 어우러진 이기대 일대와 저 멀리 해운대와 마천루들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돌리면 영도와 부산항 북항, 선선대 부두 등이 눈에 들어온다. 오륙도 스카이워크 입구 쪽 해파랑 카페 건물 옥상에 있는 오륙도 전망대에 올라가면, 더 높은 지대에서 아름다운 풍광들을 즐길 수 있다.
욜로 갈맷길 5코스는 오륙도 선착장~오륙도 해맞이공원 구간 200m 정도만 제외하면, 이기대 해안산책로 4.3km(오륙도 해맞이공원~농바위~어울마당~동생말)와 일치한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 언덕에 있는 오륙도 해맞이공원과 이기대 자연마당에 잠시 머물며 여유를 즐겨 본다. 해맞이공원과 자연마당에는 자줏빛 산철쭉꽃과 노란 유채꽃, 수선화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자연마당에는 커다란 연못과 생태 습지가 있다. 연못에는 분수가 시원스럽게 물을 내뿜는다. 해맞이공원과 자연마당 언덕에서 굽어본 오륙도 스카이워크와 오륙도 주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산길과 해안길 동시에 걷는 즐거움
잠깐의 여유를 뒤로 하고,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해안가 쪽으로 난 나무 덱 계단으로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걷는다. 산책로는 가파른 산비탈에 둘쑥날쑥한 해안을 따라 나 있다. 산과 바다를 면하고 있어 산길(숲길)이기도 하고 해안길이기도 하다.
농바위까지 가는 길엔 이정표가 몇 나온다. 이기대 해안산책로는 이기대 순환로, 장자산 등산로와 곳곳에서 서로 맞물린다. 길을 잘못 들 수 있기 때문에, 이기대 해안산책로와 농바위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이기대 해안산책로의 가파른 오르막이나 내리막에는 덱 계단이 설치돼 있다. 돌이나 흙이 깔린 길은 평탄하지 않고 대체로 울퉁불퉁하다. 어린이나 노약자, 무릎이 불편한 사람이 걷기엔 쉽지 않다. 대신 인공적인 포장이 덜 된 숲길이어서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이 든다. 산책로는 대부분 폭이 좁아 교행이 쉽지 않다. 반대편 끝 지점인 동생말에서 출발한 갈맷길 여행객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은데, 교행하려면 한쪽에서 멈춰 길을 내어 줘야 한다.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에 마주 오는 여행객들이 불편하기 보다는 반갑다. 외국인들도 종종 보인다.
산책로를 걸으면 산속을 걷고 있고, 바닷가를 걷고 있다. 봄바람이 나뭇가지와 잎을 스치는 소리와 파도가 갯바위와 해안 절벽에 부딪쳐 철썩이는 소리가 합주를 한다. 울창한 수풀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바다 전망에 맘이 설렌다. 걷기 여행객들이 부산을 대표하는 명품길로 손꼽을 만하다.
농바위 전망대에 다다르면, 농바위 구경을 놓칠 수 없다. 농바위는 장롱을 포개어 놓은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 절벽 위에 여러 개 바위가 포개져 솟아 있다. 뭔가를 머리에 이고 먼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사람 모양 같다. 농바위는 과거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연락을 하는 기준이 되는 바위로도 쓰였고, 부처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으로 지나가는 어선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돌부처상 바위로 불리기도 했다.
농바위 전망대를 지나면 해안 절벽을 끼고 덱으로 된 산책로가 이어진다. 바다 쪽으로 울창했던 수풀은 어느새 걷히고 탁 트인 시야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걷다 보면 해운대 일대의 마천루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가끔 만나는 덱 쉼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옥색 바다와 깎아지른 해안 절벽이 절경을 이룬다.
■소중한 지질 유산과 천혜의 절경
이기대 어울마당까지 0.7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해안 절벽을 끼고 이어지던 덱길은 끝나고 숲길이 시작된다. 해송들이 모여 있는 솔밭마당과 솔밭마당 앞 덱 쉼터인 솔밭쉼터에서는 잠시 숨을 돌리기 좋다. 솔밭마당과 솔밭쉼터를 지나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곧 이기대 어울마당이다. 스탠드 앞 넓은 공터에 자갈이 깔렸다. 어울마당에 서면, 광안대교와 동백섬, 해운대 일대 마천루들이 한눈에 담긴다. 영화 ‘해운대’의 촬영지였다는 안내판도 있다. 영화의 주 무대가 해운대 미포였지만, 어울마당에서도 탁 트인 경관을 배경으로 영화의 한 장면이 촬영됐다고 한다. 어울마당 안쪽에는 과거 일대가 폐광산이었음을 알려 주는 안내판이 있다. 구리를 캤다고 한다.
어울마당을 지나면 기기괴괴한 갯바위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구멍이 둥글게 송송 뚫린 널찍한 갯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내판에 따르면, 갯바위의 틈에 있던 자갈이나 모래가 파도에 의해 회전하면서 오랜 시간 바위의 표면을 깎아 만들어진 ‘돌개구멍’이다. 이기대 일대에는 약 80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암반과 지층이 남아 있다. 이들 암반과 지층은 파도의 침식을 받아 해식애, 파식 대지, 해식동굴, 돌개구멍 등 천혜의 절경을 만들어냈다. 이기대는 이러한 지질 유산으로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동생말 전망대로 가는 길에는 골짜기 사이에 놓인 구름다리를 만난다. 출렁다리다. 구름다리는 모두 5개다. 모두 길지 않아 출렁거리는 느낌은 많지 않다. 코스의 종착점인 동생말 전망대에서는 광안대교와 마린시티, 해운대가 가장 가까이 보인다. 동생말 전망대에서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분포고등학교 앞 마을버스 정류장이다.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옆엔 용호별빛공원이 있다. 국가 부두였던 용호부두가 공원으로 개발돼 2021년 7월 개방된 친수공원이다. 용호별빛공원에서 바라보는 광안대교와 해운대 일대 전망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걷기 앱을 이용해 측정한 순수한 5코스 완보 시간은 1시간 36분, 걸음 수는 1만 26걸음, 거리는 6.82km였다.
2023-05-0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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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 ④ 센텀 무비 투나잇 - 걷다 보면 청춘 스며든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 갈맷길 1~3코스에 이어 4코스 ‘센텀 무비 투나잇’을 소개한다. 4코스는 마천루들과 광안대교 등 부산의 상징이자 오늘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마천루 숲을 걸으며 탄성을 지르다, 곧 ‘영화의 도시 부산’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젊음과 싱그러움이 용솟음치는 민락수변공원을 지나 광안리해수욕장에 닿으면 가슴 속으로 청춘이 스며든다.
■마린시티에 ‘영화 도시 부산’ 있다
욜로 갈맷길 4코스는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수영구 민락동 광안해변공원 간 5km 구간이다. 출발점인 마린시티까지는 부산도시철도 2호선 동백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걷거나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 마린시티와 마주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 ‘더베이101’에 잠시 들르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멋진 마린시티 전경을 사진으로 담는 핫 스폿이어서다. 마린시티의 밤과 낮은 180도 다르다. 한밤의 마린시티는 으리으리한 초고층 건물이 뿜어내는 형형색색 찬란한 불빛으로 황홀하다. 불빛이 잠자는 낮에는 마천루들의 웅장한 민낯에 깜짝 놀란다.
마린시티는 현대카멜리아 아파트나 부산해양경찰서 동백출장소에서 시작해 가장자리를 따라 난 인도를 따라 쭉 걸으면 된다. 해운대더샵아델리스 앞에서는 ‘해운대 영화의 거리’라고 적힌 슬레이트를 치는 사람 조형물과 만난다. 영화의 거리인 해운대더샵아델리스~파크햐얏트부산호텔 해안 구간은 △천만 관객 영화존 △애니메이션존 △해운대 배경 영화존 △산토리니 광장으로 꾸며져 있다. 우리나라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천만 관객 영화들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표 애니메이션, 해운대에서 촬영한 영화들이 방파제 안쪽 벽면에 영화 포스터 등의 형태로 소개돼 있다. 산토리니 광장은 하얀 벽체와 파스텔톤 색감으로 꾸며진 공간으로 그리스 산토리니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를 찍는 제작진과 배우를 표현한 조형물과 스파이더맨 피규어가 설치돼 있고, 벽면에는 유명 배우와 감독의 핸드프린팅 동판들이 전시돼 있다. 영화의 거리를 걸으며 방파제 너머로 보이는 광안대교는 민락동 일대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을 감싸며 바다를 가로질러 시원하게 쭉 뻗어 있다.
마린시티 끄트머리에서 수영만 요트경기장으로 접어든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게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치른 곳이다. 중구 남포동에서 태동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해운대로 무대를 넓히면서 개·폐막식이 열리고, 영화제 사무국이 둥지를 튼 적도 있는 곳이다. 요트경기장 본관동 중앙 현관을 지나 계류장 쪽으로 걸어가면 널따란 광장이 펼쳐진다. 요트 계류장 쪽으로 다가서면, 잔잔한 물결 위에 계류 중인 하얀색 요트들이 바다를 한가득 메우고 있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마린시티 초고층 건물의 커튼월 유리창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빛을 발한다. 푸른 바다, 하얀 요트까지 한데 어우러지니 청명하기 그지없다.
요트경기장을 걷다 보면 부산시요트협회 건물이 있는 곳에서 길이 막혀 있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건물이 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요트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요트경기장 주차요금소를 지나 찻길 쪽으로 나간 뒤 해운대해변로 인도를 따라 걸으면 된다. 따스한 햇살과 살랑살랑 봄바람을 맞으며 걷는 중에 왼쪽으로 넓은 공터와 포구가 눈에 들어온다. 우동항이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마린시티와 센텀시티 사이에 아직 고기잡이를 하는 어항이 남아 있다니 이색적이다.
■광안해변공원에는 초록빛 청보리 물결
우동항을 지나 수영2호교(민락교)를 건넌다. 수영2호교는 수영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수영만 입구에 자리하며, 해운대구 우동과 수영구 민락동을 연결한다. 길이는 500m 정도다. 수영2호교를 걸으면 동부산의 중심축인 센텀시티와 마린시티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광안대교가 바다 쪽으로 뻗어 나가고, 마린시티의 마천루들이 하늘로 솟아 있다. 민락동 해안을 따라선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센텀시티의 고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영2호교를 지나 민락수변공원으로 가려면 수영2호교 민락동 쪽 끝지점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덱 계단을 걸어 내려가 수영강변을 따라 설치된 나무 덱길로 접어들면 된다. 수영2호교와 민락수변공원 간 보행로가 단절돼 갈맷길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엘리베이터와 덱 계단 등을 설치하는 보행 환경 개선 사업이 완료됐다.
수영강변(민락동 해안)을 따라 설치된 덱길로 들어서면, 화사한 벚꽃들이 손을 내밀어 반긴다. 덱길은 민락수변로의 차도와 인도보다 높은 곳에 설치돼 있다. 민락수변로의 가로수들은 벚나무인데, 덱길 난간 너머로 가지를 내밀고 있다. 난간 쪽으로 다가서면 벚꽃이 손에 닿는다. 벚꽃이 지기 전에 걸어 보면 더 좋을 듯하다.
덱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민락수변공원이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바닷물과 맞닿은 수변 공간은 육지에서 광안대교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젊은이들 사이에 ‘핫 플레이스’이다. 수변 공간에는 커다란 갯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태풍 때 바다에서 밀려 올라온 바위다. 민락수변공원에는 초강력 태풍이 부산을 지날 때마다 커다란 갯바위들이 밀려 올라온다. 수영구청은 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밀려온 바위를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한다.
수변 공간 한편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기어 올라오는 거북이 조형물과 공연 무대로 꾸며진 어선 조형물 등이 있다. 수변 공간을 걷다 보면 폭이 4~5m가량 되는 수로가 나타나는데, 왜가리 한 마리가 매서운 눈초리로 바닥을 주시하고 있다. 인근 횟집에서 흘러 나오는 해수에 섞인 생선 찌꺼기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갈매기들도 먹잇감을 찾아 오는 곳이다.
민락수변공원을 빠져 나와 부산시수협 민락어촌계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민락 매립지 둘레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광안리 해수욕장까지 쭉 이어진다. 민락 매립지 일대에는 상업 시설과 아파트, 오피스텔 등이 들어서 상전벽해다. 광안리 해수욕장 끝자락에는 청보리밭이 바닷바람에 물결친다. 수영구청은 광안해변공원에 ‘청보리, 바다가 되다’라는 주제로 청보리밭을 조성했다. 청보리들이 무럭무럭 자라 성인 허리 정도까지 키가 컸다. 바람에 출렁이는 청보리의 초록 물결을 보니 싱그럽다. 청보리밭은 이달 16일까지 볼 수 있다.
걷기 앱을 이용해 측정한 순수한 4코스 완보 시간은 1시간 41분, 걸음 수는 1만 338걸음, 거리는 6.83km다.
2023-04-0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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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 ③ 낭만 뚜벅이족, 해변열차와 나란히 걷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 갈맷길 1, 2코스에 이어 3코스 ‘블루라인 푸른 모래’를 소개한다. 3코스는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중 가장 걷기 편한 코스다. 길이가 짧고, 대부분 평지에다 나무 덱길이다. 동해남부선 폐선 철로 위를 달리는 해변열차를 보며 걸으면 기차 여행의 낭만이 전해진다. 드문드문 난 샛길로 들어서면 고즈넉하고 그윽한 송정해수욕장과 구덕포, 청사포 등이 반긴다. 밋밋한 덱길만 걷는 단조로움과 싱거움은 금세 사라진다.
■역사(驛舍)가 역사(歷史) 된 옛 송정역
욜로 갈맷길 3코스는 옛 송정역~블루라인파크 미포정거장 간 5.8km 구간이다. 출발점인 옛 송정역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동해선을 타고 송정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된다. 동해선 송정역에서 해운대로를 따라 송정해수욕장 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블루라인파크 송정정거장’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의 화살표 방향으로 따라가면 폐선 철로가 늘어서 있고, 왼쪽으로 조그맣고 하얀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옛 송정역이다. 철로 사이에 서 있는 안내판은 옛 송정역이 ‘국가등록문화재 제302호’라고 설명한다. 옛 송정역은 1940년 12월에 만들어진 목조 단층 기와지붕 건물로, 예스럽고 아담한 정취가 느껴진다. 역사와 노천대합실은 물론 역사 주변 철로와 승강장 150m 구간까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는 사실은 새롭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철로와 승강장 역시 개발로 사라져 버렸을지 모른다. 폐선 철로를 조금이나마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옛 송정역사를 지나면 곧 블루라인파크 해변열차 시종착점인 송정정거장이 나온다. 블루라인파크는 폐선된 동해남부선 송정~청사포~미포 4.8km 구간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한 곳이다. 해안 절경을 즐길 수 있는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을 운행하고 있다. 해변열차는 송정~구덕포~다릿돌전망대~청사포~달맞이터널~미포 6개 정거장을 오가고, 공중 궤도를 달리는 스카이캡슐은 미포~청사포 구간을 오간다. 욜로 갈맷길 3코스는 블루라인파크 철로 구간 옆으로 쭉 이어진 나무 덱길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5.8km 중 덱길 구간이 4.8km로 대부분이다. 이 덱길은 그린레일웨이로 불린다. 동해남부선 폐선 철로와 부지를 도심 산책로로 개발한 것으로, 해운대구 올림픽교차로부터 송정까지 9.8km 구간이다. 안전하게 걷기 좋은 길로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안심 관광지에도 이름을 올렸다.
해변열차 송정정거장에서부터는 철로 위를 걷는 것이 불가능(건널목이 있는 일부 구간 제외)하다. 해변열차가 달리기 때문이다. 송정정거장 좌우로 난 철로 옆길로 150~200m 정도 걸으면 철도 건널목이 있고, 이 지점에서 그린레일웨이 덱길이 시작된다. 덱길 왼쪽으로 송정해수욕장이 가까이 보인다. 눈을 돌리면 해변이 펼쳐지고, 백사장 한쪽에는 서핑 보드들이 늘어서 있다. 송정해수욕장은 서핑의 명소로 이름나 있다. 밀려오는 파도와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몸을 싣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유쾌해진다.
■청사포 전망대 오르면 수려한 바다 풍광
덱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송정해수욕장 끝자락에 있는 구덕포의 아름다운 바다 경치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덱길에서 구덕포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내려가니, 기이하게 생긴 갯바위들이 넓게 펼쳐지며 장관을 이룬다. 구덕포는 원래 양식업과 멸치 조업을 주로 하던 어촌 포구였지만, 지금은 어촌 기능이 대부분 사라지고 카페와 음식점이 자리를 잡았다. 구덕포 안쪽 길은 막다른 길이기 때문에 다시 덱길로 돌아간다.
블루라인파크 구덕포정거장을 지나자마자 철로 뒤쪽에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나무 덱 계단이 보인다. 계단 옆엔 갈맷길 표지판이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면 갈맷길 2-1코스라고 안내한다. 갈맷길 2-1코스와 욜로 갈맷길은 일부 구간이 겹치지만 다르다. 욜로 갈맷길 3코스는 블루라인파크 철로 옆 평평한 덱길이다. 갈맷길 2-1코스에 사진 찍기 명소인 ‘청사포 전망대’가 있어,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워 계단을 오른다. 청사포 전망대는 산길을 5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전망대에 다다르니 잠시 옆길로 잘 샜다 싶다. 전망대 덱과 옆 바위에 올라 청사포 앞바다를 굽어보니 해안 경관이 훌륭하다. 청사포의 명물 ‘다릿돌전망대’도 내려다 보인다.
왔던 길로 돌아가 덱길을 다시 걷는다. 300여m 정도 걸으면 다릿돌전망대가 나온다. 청사포 전망대에서 내려다봤던 그 다릿돌전망대다. 다릿돌전망대는 해수면으로부터 20m 높이에 72.5m의 길이로 바다 쪽으로 뻗어 있다. 명소답게 사람들로 붐빈다. 반달 모양의 투명 바닥이 설치돼 있어 내려다보면 스릴이 넘친다.
다릿돌전망대를 지나 블루라인파크 청사포정거장에 이른다. 청사포정거장은 스카이캡슐의 시종착점이기도 해 규모가 꽤 크다. 청사포정거장 2층에서 고가 궤도가 뻗어져 나오고, 장난감 같은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스카이캡슐이 궤도를 따라 천천히 오간다. 청사포정거장을 지나 만나는 철길 건널목에서 바닷가 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청사포다. 청사포는 원래 ‘푸른 뱀이 나타난 포구’라는 뜻으로 ‘청사포(靑蛇浦)’라 불렸지만, 지명에 ‘뱀 사(蛇)’가 들어가면 좋지 않다고 여겨 ‘모래 사(沙)’로 바뀌었다고 한다. 푸른 뱀이 푸른 모래가 됐다. 욜로 갈맷길 3코스의 이름은 블루라인파크에서 ‘블루라인’, 청사포에서 ‘푸른 모래’를 따왔다.
청사포에는 청사포 표지석 맞은편에 이곳 지명의 유래와 관련 있는 ‘청사포 당산 망부송’이 있다. 고기잡이를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아내가 소나무에 앉아 밤낮없이 기다렸다. 어느 날 아내 앞에 푸른 뱀 한 마리가 나타나 용궁으로 안내했고, 그곳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망부송’이라고 불렀다. 아내 앞에 나타난 푸른 뱀은 청사포 지명의 유래이기도 하다.
■청사포 몽돌해변에선 ‘차르르 차르르’
청사포 당산 망부송에 들렀다가 다시 덱길로 돌아와 미포 쪽으로 걷는다. 차르르 차르르~. 파도에 밀려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청사포 몽돌해변에서 나는 소리다. 덱길에서 몽돌해변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 약 200m 길이의 몽돌해변에 수박 만한 몽돌부터 구슬 정도 크기의 몽돌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미포 쪽으로 걷다가 덱길 옆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등 장승 무리들과 휴식 공간인 ‘바다소리 갤러리’를 잇따라 만난다. 바다소리 갤러리는 해안 경계용 옛 군 막사가 시민들의 문화 쉼터로 탈바꿈된 곳이다. 하얀 안내판이 ‘햇살과 파도 소리에 몸을 맡기고 잠시 쉬어 가라’며 발길을 이끈다.
달맞이터널은 일제강점기 때 건설된 동해남부선의 터널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알록달록한 아치형 기둥을 배경 삼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어 포토존으로 인기가 있다. 달맞이터널과 청사포 몽돌해변은 1985년 북한 간첩선이 침투했던 곳으로, 30여 년간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됐다. 달맞이터널을 지나 욜로 갈맷길 3코스의 종착점인 미포정거장에 닿는다.
걷기 앱을 이용해 측정한 순수한 완보 시간은 2시간 5분, 걸음 수는 1만 3702걸음, 거리는 9.32km다. 청사포 전망대까지 갔다 돌아온 거리와 시간도 포함됐다.
2023-03-0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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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 ②시크릿 커피로드-뚜벅뚜벅 누빈 40리, 커피 한 잔이 위로했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 갈맷길의 첫 번째 코스인 ‘갈맷길 더 비기닝’에 이어 두 번째 코스 ‘시크릿 커피로드’를 소개한다. 시크릿 커피로드는 욕심이 많은 코스다.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중 가장 길어서 그렇고, 등산길이 가미돼 가장 어려운 코스라 그렇다. 반대로 보면 산길과 해안길을 고루 걸을 수 있어 매력적이고, 장거리 난코스 완보 후 느끼는 보람됨이 가장 큰 코스이기도 하다. 해안가를 따라 바다를 조망하는 아담하고 멋스러운 카페가 군데군데 있어 골라 찾는 재미도 있다.
■등산으로 시작, 출발이 만만찮은데…
욜로 갈맷길 2코스는 기장군 기장군청~해운대구 송정항(송정해수욕장) 간 16km 구간이다.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중 가장 길다. 기장군청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동해선을 타고 기장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된다.
동해선 기장역에서 내려 기장대로를 건너면 기장군청이다. 2코스는 등산으로 시작한다. 헤매지 않으려면 등산로 입구를 잘 찾아야 한다. 기장군청을 지나면 기장군 보건소가 나온다. 보건소를 지나 죽성로를 따라 걸으며 첫 번째 길에서 우회전한다. 길 왼쪽으로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밭 옆길을 쭉 걷다 보면 우신네오빌 아파트 나오는데, 아파트에 조금 못 미친 곳에 왼쪽 방향으로 계단과 함께 나 있는 좁은 길로 들어선다. 밭길이라 제대로 가고 있나 긴가민가하지만, 봉대산 오르는 길이다. 밭길을 지나 산에 오른다는 느낌이 조금 들 때 무렵 작은 저수지(죽곡지 저수지)가 나타난다. 저수지를 거치면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등산은 만많찮다. 길이 꽤 비탈져 오르는 동안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일이 적지 않다. 간간이 이정표가 나오는데 ‘봉대산’이나 ‘죽성리’ ‘월전마을’ 방면으로 걸으면 된다. 등산객들에게 인기 있는 근교산이어서 그런지 등산객들도 종종 만난다.
봉대산 정상에는 ‘기장남산봉수대’가 있다. 우리 조상들의 통신 수단이다. 남쪽으로는 해운대 간비오산 봉수대, 북쪽으로는 임랑 및 아이 봉수대에 연결돼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봉수대 터에 있는 바위에 올라서면 동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일광신도시가, 남쪽으로는 해운대에 즐비한 마천루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왜 이곳이 봉수대로 이용됐는지 새삼 깨닫는다. 등산은 1시간 가량 소요된다.
■황학대, 죽성드림세트장… 안 들렀으면 후회할 뻔
봉대산에서 내려오면 월전마을회관을 거쳐 대변항으로 가는 것이 정식 경로다. 하지만 죽성리 해안가에는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문화재나 명소들이 많다. 경로를 잠시 이탈하더라도 충분히 들러 볼 가치가 있는 곳들이다. 봉대산 하산 후 마을 사이로 이어진 월전1길과 두호길을 따라 죽성초등학교 쪽으로 향한다. 도중에 마을의 중앙 둔덕에 고고하게 가지를 뻗치고 있는 소나무가 서 있다. ‘죽성리 해송’이다. 품 넓은 소나무가 멀리서 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다섯 그루가 하나인 것처럼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수령은 400년이라고 한다. 다섯 그루의 소나무 사이에는 작은 당집이 끼워져 있는 듯 들어앉아 있다. 죽성리 해송은 부산시 기념물(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죽성항과 죽성방파제 쪽으로 걷는다. 포구의 물량장 안쪽에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바위산이 보인다. 황학대다. 황색 바위가 바다를 향해 돌출돼 있는 모양이 마치 황학이 나래를 펴고 있는 모양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과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원래는 갯바위를 딛고 건너면 닿을 수 있는 섬이었다. 지금은 물량장과 해안도로로 둘러싸인 육지에 우뚝 선 큰 바위산이 됐다. 나무 덱 계단을 오르면 소나무 그늘 아래 고산 윤선도 동상과 그의 시 ‘영계(詠鷄·닭을 노래하다)’를 새긴 비가 있다. 조선 시대 정치가로, 시조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고산 윤선도는 죽성리에서 6년여간 유배 생활을 했다.
황학대에서 내려오면 오른쪽 해안가 끝에 이국적인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빨간 지붕과 흰 벽돌이 돋보이는 ‘죽성드림세트장’이다. 2009년 드라마 ‘드림’ 세트장의 일부로 건립된 성당으로, 죽성리 해안가의 드넓은 하늘, 바다 풍광과 잘 어우러져 인기 있는 관광 명소가 됐다.
죽성드림세트장에서 월전마을회관으로 가는 해안길도 눈이 즐겁다. 테트라포드 몇 개가 페인트로 물들어 있어 다가가 보니, ‘GIJANG CINEMA WAVE’라는 글귀와 함께 보안관, 군도 등의 영화 제목이 적혀 있다.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메바위섬(어사암), 놀래미섬, 꼭두방섬, 거북바위 등 바위섬들과 기암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오시리아 해안산책로 걸으면 심신이 힐링
월전마을회관에서 대변항까지는 봉대산 산허리를 탄다. 월전마을회관을 지나면 동오집이라는 음식점이 나오는데, 음식점 왼쪽으로 보면 갈맷길 이정표가 붙어 있고, 등산로가 나 있다. 30여 분 정도 걸으면 대변항에 닿는다. 가파른 구간은 거의 없지만 먀냥 쉽지는 않다. 하지만 겨울인데도 수풀이 차가운 해풍을 막아주고 따뜻한 햇살이 비춘다. 소나무 숲 사이로 하늘을 우러러보니 새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봄날 걷는 느낌이다.
대변항은 국가어항답게 많은 사람들과 어선들로 활기가 넘친다. 중앙 광장에는 특산물인 멸치를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이 있다. 대변항에 있는 용암초등학교 정문 옆쪽에는 부산시 지정 기념물인 ‘기장 척화비’가 있다. 학교 교정에 척화비가 있다니 신기하다. 초등학교 정문에는 ‘학교 이름 변경에 대하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용암초등학교는 원래 교명이 대변초등학교였다. 학생들이 놀림을 받아 교명을 바꿨다고 쓰여 있다.
대변항에서 연화리로 걸으면 예쁜 카페들이 속속 등장한다. ‘시크릿 커피로드’의 진면모를 드러낸다. 연화리에서는 사진 찍기 명소로 유명한 젖병 등대를 만난다.
대변항~연화리의 북적한 해안길은 오시리아 해안산책로에 접어들면서 한적한 해안길로 변신한다. 부산도시공사는 오시리아 관광단지를 조성하며 해안을 따라 산책로를 조성했다. 연화리 끝에서 시랑리 동암항까지 2.1km 구간이다. 더할 나위 없이 걷기 편하다. 탁 트인 조망과 아름다운 경치에 콧노래가 절로 난다. 산책로 안쪽으로는 공사장 가림벽이 쭉 늘어섰다. 안쪽에는 2025년 문을 열 예정인 ‘반얀트리 해운대’가 공사 중이다. 더 걸으면 ‘아난티 힐튼 부산’이 나온다. 이들 휴양 시설은 앞으로도 멋진 해안산책로의 덕을 볼 듯하다.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갯바위들이 절경을 뽐낸다. 일출 명소로 알려진 오랑대다. 기암절벽을 부딪는 파도는 하얀 포말을 내뿜고, 쏴악~ 쏴악~ 소리를 내며 공감각이 된다. 우뚝 솟은 기암절벽 위에는 용왕을 모신 용왕단이라는 사당이 있는데, 색다른 풍경에 시선이 멈춘다.
동암항을 거쳐 국립수산과학원 옆으로 난 동암해안길을 따라 걷는다. 15분가량 걸으면 해동용궁사가 나온다. 해안가 사찰이라는 신비로움과 절경에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해동용궁사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가면 ‘송정해수욕장’과 ‘제3주차장’ 방향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송정해수욕장 쪽으로 걸음을 옮긴 뒤 해안길을 따라 공수마을을 거쳐 송정항에 닿는다.
걷기 앱으로 측정한 2코스 완보 시간은 4시간 7분, 걸음 수는 2만 8091걸음, 거리는 19.1km. 죽성리 해안가에 들렀더니 거리가 제법 늘었다. 걷다 지칠 때 커피 한 잔은 시크릿 커피로드의 화룡점정이다.
2023-02-0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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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 ①더 비기닝-고즈넉한 어항·아기자기 등대 한 번에 즐긴다
새해가 되니 여기저기에서 ‘운동할 결심’이다. 의지를 불태우지만 곧 흐지부지 작심삼일이기 십상이다. 걷기는 어떨까? 인간은 ‘호모 에렉투스’(직립보행 인간)에서 진화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걷기 때문에 걷는 건 운동이 아니거나 운동이 되지 않는다고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결코 얕잡아 봐선 안 된다. 걷기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심폐 기능을 개선하고 성인병 발병률을 낮춘다. 허리 디스크와 무릎 연골을 튼튼하게 한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다. 걷는 시간만큼 수명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케빈 클린켄버그는 자신의 책 <걷기의 재발견>에서 “걷기는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했다.
걸으려 마음만 먹으면 주변의 모든 곳이 운동장이다. 걷기 좋은 길이 있다면 그건 최신식 운동장이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지난해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이라는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렸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는 MZ 세대 등에서 유행하는 ‘YOLO(You Only Live Once)’와 경상도 방언 ‘욜로(여기로)’가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중의적 이름이다. 욜로 갈맷길은 대중교통과 잘 연계돼 접근성이 좋다. 코스별 10km 안팎으로 부담도 적다. 코스별로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로 테마를 입혀 테마 재료를 찾는 재미도 있다. <부산일보>는 욜로 갈맷길을 한 달에 한 코스씩 완보한다. 숨은 매력을 널리 알리고 또 다른 걷기 초보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걷기 초보, 욜로 갈맷길에 도전하다
욜로 갈맷길 1코스는 기장군 임랑해수욕장~일광해수욕장 간 9.1km 구간이다. 첫 번째 코스인 만큼 코스 이름도 ‘갈맷길 더 비기닝’이다. 아점을 든든히 챙겨 먹고 길을 나섰다. 임랑해수욕장까지는 동해선 월내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벡스코역에서 동해선으로 환승했다. 걷기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으려면 자가용 이용은 금물. 철저히 BMW(Bus·Metro·Walk)여야 한다.
동해선 월내역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 샛길을 지나 월내해안길로 접어든다. 탁 트인 바다에 마음이 뻥 뚫린다. 월내해안길을 따라 나 있는 해맞이로를 20분 정도 걸으면 1코스의 시작점인 임랑해수욕장에 다다른다. ‘임랑’은 아름다운 송림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그 이름처럼 백사장 뒤쪽 병풍 같은 소나무 숲과 은빛 바다가 아름답다. 오래된 민박집들이 줄지어 있고 담장 벽화에는 ‘겨울아 어서 가라’ 봄꽃이 피었다.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들과 다르게 개발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아 고즈넉한 어촌의 정취가 남아 있다. 임랑해수욕장 끝자락 임랑문화공원에는 철강왕 박태준 포항제철 초대 회장을 기리는 박태준 기념관이 있다.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으며 작고 소박하지만 위엄과 품격을 갖췄다.
박태준 기념관에서 10시 방향으로 꺾어 해안으로 나 있는 일광로를 따라 20분가량 쭉 걸으면 문동방파제와 문중방파제가 나온다. 두 방파제는 양팔을 뻗어 바다를 끌어안은 듯하다. 문동방파제와 문중방파제 사이 항구는 중동항이다. 문중항과 문동항으로 분리돼 있던 어항이 하나로 합쳐져 중동항이 됐다.
중동항 부둣가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와이드샷으로 펼치니 문동방파제에 있는 빨간 등대, 문중방파제에 있는 하얀 등대에서부터 저 멀리 붕장어 등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까지 5개의 등대가 한 폭의 사진에 모두 담긴다. 등대 풍년이다.
■붕장어 마을 들렀다 신평소공원에선 잠깐 휴식
칠암항은 중동항과 나란히 붙어 있다. 문중방파제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칠암 붕장어 마을’이라고 써 있는 큰 안내판이 반긴다. 붕장어 횟집과 구잇집이 즐비하다. 일본말인 ‘아나고’로 아직도 많이 불리지만 우리말인 붕장어가 바른 말이다. 기름기를 쭉 빼고 잘게 썬 붕장어회는 고슬고슬한 흰 쌀밥 같기도 하고, 눈꽃 같기도 하다. 깻잎에 붕장어회를 올리고, 콩가루, 초장과 버무린 양배추까지 올려 싸 먹는 맛은 고소하고 담백해 일품이다. 칠암이 잘 알려진 이유도 지역 특산 붕장어회 덕분이다. 걷다 출출해지면 붕장어회로 식도락을 즐겨봄 직하다.
칠암항에는 붕장어 등대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가 있다. 붕장어 등대는 칠암항을 대표하는 붕장어를, 갈매기 등대는 부산의 시조인 갈매기, 야구 등대는 ‘구도 부산’을 상징한다.
칠암항에서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란히 붙어 있는 해파랑길과 갈맷길 이정표가 보인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을 이어 구축한 50개 코스(총 길이 75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길 3코스는 기장 임랑해수욕장에서 대변항까지 이어지는데, 욜로 갈맷길 1코스는 해파랑길 3코스와 겹친다.
해안가를 조금 걸으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신평소공원이 나온다. 신평소공원은 범선 모양 전망대를 비롯해 팔각정, 분수대가 있는 작은 공원이다. 전망대에 오르니 갯바위들이 오밀조밀 모여 빼어난 풍광을 선사한다. 신평소공원은 공원 해안가 갯바위 퇴적층에서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신평소공원 벤치에서 잠시 휴식한 뒤 다시 걷다 만난 어항은 동백항이다. 동백항 부둣가 연석에 그려진 새빨간 동백꽃들이 인상적이다. 동백항 끝자락에 있는 동백해녀복지회관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문을 닫았다. 고령화와 수산 자원 감소 등으로 사라져가는 해녀들이 떠오른다.
■바다 정취 만끽하며 걸으면 어느새 갯마을로
부경대 수산과학연구소를 두르는 길을 따라 걸으면 온정마을로 이어진다. 온정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에는 ‘온정마을 버스킹 공간’이라는 팻말이 붙은 공간이 나온다.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작고 아담한 공원이다. 온정마을은 고리 원전이 건립되면서 이곳으로 집단 이주해 만들어진 마을인데, 지금은 카페촌이 됐다.
온정마을을 지나면 왼쪽으로는 동해가 오른쪽으로는 해송이 이어지는 차로(일광로) 옆을 따라 2km가량 걸어야 한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30분 정도 상념을 떨치고 걸을 수 있다. 덕분에 걷기에 충실해진다. 간간이 나무 덱 길이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제대로 된 보도가 없다. 그래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일광로를 따라 쭉 걷다 삼기물산 건물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이동항이 보인다. 임랑항, 중동항, 칠암항, 동백항…. 벌써 다섯 번째 어항이다. 이동항에서 1코스의 종착점인 일광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에는 해안가 쪽으로 드넓은 공터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10월 열린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BTS 공연 후보지였던 옛 한국유리 공장 부지다. ‘여기가 거기구나’ 힐끔힐끔 쳐다본다.
일광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엔 이천항이 있다. 이천항이 있는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는 1953년 발표된 오영수의 단편소설 ‘갯마을’의 무대가 된 곳이다. 이천항으로 가는 길모퉁이 벽에는 영화 ‘갯마을’ 속 장면들이 액자 형태로 붙어 있다. 길모퉁이를 돌면 횟집이 빼곡히 줄지어 있다. 한 모녀가 얘기를 나누며 생선을 마리는 모습이 정겹다.
강송교를 건너 일광해수욕장에 다다랐다. 일광해수욕장 초입 별님공원에서 돌비석 하나를 발견한다.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다. 문학비에는 소설 속 한 구절을 새겨 놓았다. ‘서(西)로 멀리 기차 소리를 바람결로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소설 ‘갯마을’의 첫머리다. 그 기차 소리가 들리는 곳이 지금의 동해선 일광역이다.
걷기 앱을 이용해 측정한 1코스 완보 시간은 3시간 15분, 걸음 수는 1만 6837걸음, 거리는 11.45km였다. 1코스는 어촌·어항의 고즈넉함과 바다 풍광이 아기자기한 등대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코스다.
2023-01-11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