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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 ③ 낭만 뚜벅이족, 해변열차와 나란히 걷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 갈맷길 1, 2코스에 이어 3코스 ‘블루라인 푸른 모래’를 소개한다. 3코스는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중 가장 걷기 편한 코스다. 길이가 짧고, 대부분 평지에다 나무 덱길이다. 동해남부선 폐선 철로 위를 달리는 해변열차를 보며 걸으면 기차 여행의 낭만이 전해진다. 드문드문 난 샛길로 들어서면 고즈넉하고 그윽한 송정해수욕장과 구덕포, 청사포 등이 반긴다. 밋밋한 덱길만 걷는 단조로움과 싱거움은 금세 사라진다.
■역사(驛舍)가 역사(歷史) 된 옛 송정역
욜로 갈맷길 3코스는 옛 송정역~블루라인파크 미포정거장 간 5.8km 구간이다. 출발점인 옛 송정역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동해선을 타고 송정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된다. 동해선 송정역에서 해운대로를 따라 송정해수욕장 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블루라인파크 송정정거장’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의 화살표 방향으로 따라가면 폐선 철로가 늘어서 있고, 왼쪽으로 조그맣고 하얀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옛 송정역이다. 철로 사이에 서 있는 안내판은 옛 송정역이 ‘국가등록문화재 제302호’라고 설명한다. 옛 송정역은 1940년 12월에 만들어진 목조 단층 기와지붕 건물로, 예스럽고 아담한 정취가 느껴진다. 역사와 노천대합실은 물론 역사 주변 철로와 승강장 150m 구간까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는 사실은 새롭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철로와 승강장 역시 개발로 사라져 버렸을지 모른다. 폐선 철로를 조금이나마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옛 송정역사를 지나면 곧 블루라인파크 해변열차 시종착점인 송정정거장이 나온다. 블루라인파크는 폐선된 동해남부선 송정~청사포~미포 4.8km 구간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한 곳이다. 해안 절경을 즐길 수 있는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을 운행하고 있다. 해변열차는 송정~구덕포~다릿돌전망대~청사포~달맞이터널~미포 6개 정거장을 오가고, 공중 궤도를 달리는 스카이캡슐은 미포~청사포 구간을 오간다. 욜로 갈맷길 3코스는 블루라인파크 철로 구간 옆으로 쭉 이어진 나무 덱길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5.8km 중 덱길 구간이 4.8km로 대부분이다. 이 덱길은 그린레일웨이로 불린다. 동해남부선 폐선 철로와 부지를 도심 산책로로 개발한 것으로, 해운대구 올림픽교차로부터 송정까지 9.8km 구간이다. 안전하게 걷기 좋은 길로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안심 관광지에도 이름을 올렸다.
해변열차 송정정거장에서부터는 철로 위를 걷는 것이 불가능(건널목이 있는 일부 구간 제외)하다. 해변열차가 달리기 때문이다. 송정정거장 좌우로 난 철로 옆길로 150~200m 정도 걸으면 철도 건널목이 있고, 이 지점에서 그린레일웨이 덱길이 시작된다. 덱길 왼쪽으로 송정해수욕장이 가까이 보인다. 눈을 돌리면 해변이 펼쳐지고, 백사장 한쪽에는 서핑 보드들이 늘어서 있다. 송정해수욕장은 서핑의 명소로 이름나 있다. 밀려오는 파도와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몸을 싣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유쾌해진다.
■청사포 전망대 오르면 수려한 바다 풍광
덱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송정해수욕장 끝자락에 있는 구덕포의 아름다운 바다 경치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덱길에서 구덕포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내려가니, 기이하게 생긴 갯바위들이 넓게 펼쳐지며 장관을 이룬다. 구덕포는 원래 양식업과 멸치 조업을 주로 하던 어촌 포구였지만, 지금은 어촌 기능이 대부분 사라지고 카페와 음식점이 자리를 잡았다. 구덕포 안쪽 길은 막다른 길이기 때문에 다시 덱길로 돌아간다.
블루라인파크 구덕포정거장을 지나자마자 철로 뒤쪽에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나무 덱 계단이 보인다. 계단 옆엔 갈맷길 표지판이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면 갈맷길 2-1코스라고 안내한다. 갈맷길 2-1코스와 욜로 갈맷길은 일부 구간이 겹치지만 다르다. 욜로 갈맷길 3코스는 블루라인파크 철로 옆 평평한 덱길이다. 갈맷길 2-1코스에 사진 찍기 명소인 ‘청사포 전망대’가 있어,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워 계단을 오른다. 청사포 전망대는 산길을 5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전망대에 다다르니 잠시 옆길로 잘 샜다 싶다. 전망대 덱과 옆 바위에 올라 청사포 앞바다를 굽어보니 해안 경관이 훌륭하다. 청사포의 명물 ‘다릿돌전망대’도 내려다 보인다.
왔던 길로 돌아가 덱길을 다시 걷는다. 300여m 정도 걸으면 다릿돌전망대가 나온다. 청사포 전망대에서 내려다봤던 그 다릿돌전망대다. 다릿돌전망대는 해수면으로부터 20m 높이에 72.5m의 길이로 바다 쪽으로 뻗어 있다. 명소답게 사람들로 붐빈다. 반달 모양의 투명 바닥이 설치돼 있어 내려다보면 스릴이 넘친다.
다릿돌전망대를 지나 블루라인파크 청사포정거장에 이른다. 청사포정거장은 스카이캡슐의 시종착점이기도 해 규모가 꽤 크다. 청사포정거장 2층에서 고가 궤도가 뻗어져 나오고, 장난감 같은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스카이캡슐이 궤도를 따라 천천히 오간다. 청사포정거장을 지나 만나는 철길 건널목에서 바닷가 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청사포다. 청사포는 원래 ‘푸른 뱀이 나타난 포구’라는 뜻으로 ‘청사포(靑蛇浦)’라 불렸지만, 지명에 ‘뱀 사(蛇)’가 들어가면 좋지 않다고 여겨 ‘모래 사(沙)’로 바뀌었다고 한다. 푸른 뱀이 푸른 모래가 됐다. 욜로 갈맷길 3코스의 이름은 블루라인파크에서 ‘블루라인’, 청사포에서 ‘푸른 모래’를 따왔다.
청사포에는 청사포 표지석 맞은편에 이곳 지명의 유래와 관련 있는 ‘청사포 당산 망부송’이 있다. 고기잡이를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아내가 소나무에 앉아 밤낮없이 기다렸다. 어느 날 아내 앞에 푸른 뱀 한 마리가 나타나 용궁으로 안내했고, 그곳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망부송’이라고 불렀다. 아내 앞에 나타난 푸른 뱀은 청사포 지명의 유래이기도 하다.
■청사포 몽돌해변에선 ‘차르르 차르르’
청사포 당산 망부송에 들렀다가 다시 덱길로 돌아와 미포 쪽으로 걷는다. 차르르 차르르~. 파도에 밀려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청사포 몽돌해변에서 나는 소리다. 덱길에서 몽돌해변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 약 200m 길이의 몽돌해변에 수박 만한 몽돌부터 구슬 정도 크기의 몽돌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미포 쪽으로 걷다가 덱길 옆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등 장승 무리들과 휴식 공간인 ‘바다소리 갤러리’를 잇따라 만난다. 바다소리 갤러리는 해안 경계용 옛 군 막사가 시민들의 문화 쉼터로 탈바꿈된 곳이다. 하얀 안내판이 ‘햇살과 파도 소리에 몸을 맡기고 잠시 쉬어 가라’며 발길을 이끈다.
달맞이터널은 일제강점기 때 건설된 동해남부선의 터널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알록달록한 아치형 기둥을 배경 삼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어 포토존으로 인기가 있다. 달맞이터널과 청사포 몽돌해변은 1985년 북한 간첩선이 침투했던 곳으로, 30여 년간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됐다. 달맞이터널을 지나 욜로 갈맷길 3코스의 종착점인 미포정거장에 닿는다.
걷기 앱을 이용해 측정한 순수한 완보 시간은 2시간 5분, 걸음 수는 1만 3702걸음, 거리는 9.32km다. 청사포 전망대까지 갔다 돌아온 거리와 시간도 포함됐다.
2023-03-0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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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 ②시크릿 커피로드-뚜벅뚜벅 누빈 40리, 커피 한 잔이 위로했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 갈맷길의 첫 번째 코스인 ‘갈맷길 더 비기닝’에 이어 두 번째 코스 ‘시크릿 커피로드’를 소개한다. 시크릿 커피로드는 욕심이 많은 코스다.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중 가장 길어서 그렇고, 등산길이 가미돼 가장 어려운 코스라 그렇다. 반대로 보면 산길과 해안길을 고루 걸을 수 있어 매력적이고, 장거리 난코스 완보 후 느끼는 보람됨이 가장 큰 코스이기도 하다. 해안가를 따라 바다를 조망하는 아담하고 멋스러운 카페가 군데군데 있어 골라 찾는 재미도 있다.
■등산으로 시작, 출발이 만만찮은데…
욜로 갈맷길 2코스는 기장군 기장군청~해운대구 송정항(송정해수욕장) 간 16km 구간이다.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중 가장 길다. 기장군청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동해선을 타고 기장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된다.
동해선 기장역에서 내려 기장대로를 건너면 기장군청이다. 2코스는 등산으로 시작한다. 헤매지 않으려면 등산로 입구를 잘 찾아야 한다. 기장군청을 지나면 기장군 보건소가 나온다. 보건소를 지나 죽성로를 따라 걸으며 첫 번째 길에서 우회전한다. 길 왼쪽으로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밭 옆길을 쭉 걷다 보면 우신네오빌 아파트 나오는데, 아파트에 조금 못 미친 곳에 왼쪽 방향으로 계단과 함께 나 있는 좁은 길로 들어선다. 밭길이라 제대로 가고 있나 긴가민가하지만, 봉대산 오르는 길이다. 밭길을 지나 산에 오른다는 느낌이 조금 들 때 무렵 작은 저수지(죽곡지 저수지)가 나타난다. 저수지를 거치면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등산은 만많찮다. 길이 꽤 비탈져 오르는 동안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일이 적지 않다. 간간이 이정표가 나오는데 ‘봉대산’이나 ‘죽성리’ ‘월전마을’ 방면으로 걸으면 된다. 등산객들에게 인기 있는 근교산이어서 그런지 등산객들도 종종 만난다.
봉대산 정상에는 ‘기장남산봉수대’가 있다. 우리 조상들의 통신 수단이다. 남쪽으로는 해운대 간비오산 봉수대, 북쪽으로는 임랑 및 아이 봉수대에 연결돼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봉수대 터에 있는 바위에 올라서면 동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일광신도시가, 남쪽으로는 해운대에 즐비한 마천루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왜 이곳이 봉수대로 이용됐는지 새삼 깨닫는다. 등산은 1시간 가량 소요된다.
■황학대, 죽성드림세트장… 안 들렀으면 후회할 뻔
봉대산에서 내려오면 월전마을회관을 거쳐 대변항으로 가는 것이 정식 경로다. 하지만 죽성리 해안가에는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문화재나 명소들이 많다. 경로를 잠시 이탈하더라도 충분히 들러 볼 가치가 있는 곳들이다. 봉대산 하산 후 마을 사이로 이어진 월전1길과 두호길을 따라 죽성초등학교 쪽으로 향한다. 도중에 마을의 중앙 둔덕에 고고하게 가지를 뻗치고 있는 소나무가 서 있다. ‘죽성리 해송’이다. 품 넓은 소나무가 멀리서 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다섯 그루가 하나인 것처럼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수령은 400년이라고 한다. 다섯 그루의 소나무 사이에는 작은 당집이 끼워져 있는 듯 들어앉아 있다. 죽성리 해송은 부산시 기념물(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죽성항과 죽성방파제 쪽으로 걷는다. 포구의 물량장 안쪽에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바위산이 보인다. 황학대다. 황색 바위가 바다를 향해 돌출돼 있는 모양이 마치 황학이 나래를 펴고 있는 모양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과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원래는 갯바위를 딛고 건너면 닿을 수 있는 섬이었다. 지금은 물량장과 해안도로로 둘러싸인 육지에 우뚝 선 큰 바위산이 됐다. 나무 덱 계단을 오르면 소나무 그늘 아래 고산 윤선도 동상과 그의 시 ‘영계(詠鷄·닭을 노래하다)’를 새긴 비가 있다. 조선 시대 정치가로, 시조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고산 윤선도는 죽성리에서 6년여간 유배 생활을 했다.
황학대에서 내려오면 오른쪽 해안가 끝에 이국적인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빨간 지붕과 흰 벽돌이 돋보이는 ‘죽성드림세트장’이다. 2009년 드라마 ‘드림’ 세트장의 일부로 건립된 성당으로, 죽성리 해안가의 드넓은 하늘, 바다 풍광과 잘 어우러져 인기 있는 관광 명소가 됐다.
죽성드림세트장에서 월전마을회관으로 가는 해안길도 눈이 즐겁다. 테트라포드 몇 개가 페인트로 물들어 있어 다가가 보니, ‘GIJANG CINEMA WAVE’라는 글귀와 함께 보안관, 군도 등의 영화 제목이 적혀 있다.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메바위섬(어사암), 놀래미섬, 꼭두방섬, 거북바위 등 바위섬들과 기암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오시리아 해안산책로 걸으면 심신이 힐링
월전마을회관에서 대변항까지는 봉대산 산허리를 탄다. 월전마을회관을 지나면 동오집이라는 음식점이 나오는데, 음식점 왼쪽으로 보면 갈맷길 이정표가 붙어 있고, 등산로가 나 있다. 30여 분 정도 걸으면 대변항에 닿는다. 가파른 구간은 거의 없지만 먀냥 쉽지는 않다. 하지만 겨울인데도 수풀이 차가운 해풍을 막아주고 따뜻한 햇살이 비춘다. 소나무 숲 사이로 하늘을 우러러보니 새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봄날 걷는 느낌이다.
대변항은 국가어항답게 많은 사람들과 어선들로 활기가 넘친다. 중앙 광장에는 특산물인 멸치를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이 있다. 대변항에 있는 용암초등학교 정문 옆쪽에는 부산시 지정 기념물인 ‘기장 척화비’가 있다. 학교 교정에 척화비가 있다니 신기하다. 초등학교 정문에는 ‘학교 이름 변경에 대하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용암초등학교는 원래 교명이 대변초등학교였다. 학생들이 놀림을 받아 교명을 바꿨다고 쓰여 있다.
대변항에서 연화리로 걸으면 예쁜 카페들이 속속 등장한다. ‘시크릿 커피로드’의 진면모를 드러낸다. 연화리에서는 사진 찍기 명소로 유명한 젖병 등대를 만난다.
대변항~연화리의 북적한 해안길은 오시리아 해안산책로에 접어들면서 한적한 해안길로 변신한다. 부산도시공사는 오시리아 관광단지를 조성하며 해안을 따라 산책로를 조성했다. 연화리 끝에서 시랑리 동암항까지 2.1km 구간이다. 더할 나위 없이 걷기 편하다. 탁 트인 조망과 아름다운 경치에 콧노래가 절로 난다. 산책로 안쪽으로는 공사장 가림벽이 쭉 늘어섰다. 안쪽에는 2025년 문을 열 예정인 ‘반얀트리 해운대’가 공사 중이다. 더 걸으면 ‘아난티 힐튼 부산’이 나온다. 이들 휴양 시설은 앞으로도 멋진 해안산책로의 덕을 볼 듯하다.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갯바위들이 절경을 뽐낸다. 일출 명소로 알려진 오랑대다. 기암절벽을 부딪는 파도는 하얀 포말을 내뿜고, 쏴악~ 쏴악~ 소리를 내며 공감각이 된다. 우뚝 솟은 기암절벽 위에는 용왕을 모신 용왕단이라는 사당이 있는데, 색다른 풍경에 시선이 멈춘다.
동암항을 거쳐 국립수산과학원 옆으로 난 동암해안길을 따라 걷는다. 15분가량 걸으면 해동용궁사가 나온다. 해안가 사찰이라는 신비로움과 절경에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해동용궁사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가면 ‘송정해수욕장’과 ‘제3주차장’ 방향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송정해수욕장 쪽으로 걸음을 옮긴 뒤 해안길을 따라 공수마을을 거쳐 송정항에 닿는다.
걷기 앱으로 측정한 2코스 완보 시간은 4시간 7분, 걸음 수는 2만 8091걸음, 거리는 19.1km. 죽성리 해안가에 들렀더니 거리가 제법 늘었다. 걷다 지칠 때 커피 한 잔은 시크릿 커피로드의 화룡점정이다.
2023-02-0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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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 ①더 비기닝-고즈넉한 어항·아기자기 등대 한 번에 즐긴다
새해가 되니 여기저기에서 ‘운동할 결심’이다. 의지를 불태우지만 곧 흐지부지 작심삼일이기 십상이다. 걷기는 어떨까? 인간은 ‘호모 에렉투스’(직립보행 인간)에서 진화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걷기 때문에 걷는 건 운동이 아니거나 운동이 되지 않는다고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결코 얕잡아 봐선 안 된다. 걷기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심폐 기능을 개선하고 성인병 발병률을 낮춘다. 허리 디스크와 무릎 연골을 튼튼하게 한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다. 걷는 시간만큼 수명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케빈 클린켄버그는 자신의 책 <걷기의 재발견>에서 “걷기는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했다.
걸으려 마음만 먹으면 주변의 모든 곳이 운동장이다. 걷기 좋은 길이 있다면 그건 최신식 운동장이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지난해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이라는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렸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는 MZ 세대 등에서 유행하는 ‘YOLO(You Only Live Once)’와 경상도 방언 ‘욜로(여기로)’가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중의적 이름이다. 욜로 갈맷길은 대중교통과 잘 연계돼 접근성이 좋다. 코스별 10km 안팎으로 부담도 적다. 코스별로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로 테마를 입혀 테마 재료를 찾는 재미도 있다. <부산일보>는 욜로 갈맷길을 한 달에 한 코스씩 완보한다. 숨은 매력을 널리 알리고 또 다른 걷기 초보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걷기 초보, 욜로 갈맷길에 도전하다
욜로 갈맷길 1코스는 기장군 임랑해수욕장~일광해수욕장 간 9.1km 구간이다. 첫 번째 코스인 만큼 코스 이름도 ‘갈맷길 더 비기닝’이다. 아점을 든든히 챙겨 먹고 길을 나섰다. 임랑해수욕장까지는 동해선 월내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벡스코역에서 동해선으로 환승했다. 걷기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으려면 자가용 이용은 금물. 철저히 BMW(Bus·Metro·Walk)여야 한다.
동해선 월내역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 샛길을 지나 월내해안길로 접어든다. 탁 트인 바다에 마음이 뻥 뚫린다. 월내해안길을 따라 나 있는 해맞이로를 20분 정도 걸으면 1코스의 시작점인 임랑해수욕장에 다다른다. ‘임랑’은 아름다운 송림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그 이름처럼 백사장 뒤쪽 병풍 같은 소나무 숲과 은빛 바다가 아름답다. 오래된 민박집들이 줄지어 있고 담장 벽화에는 ‘겨울아 어서 가라’ 봄꽃이 피었다.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들과 다르게 개발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아 고즈넉한 어촌의 정취가 남아 있다. 임랑해수욕장 끝자락 임랑문화공원에는 철강왕 박태준 포항제철 초대 회장을 기리는 박태준 기념관이 있다.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으며 작고 소박하지만 위엄과 품격을 갖췄다.
박태준 기념관에서 10시 방향으로 꺾어 해안으로 나 있는 일광로를 따라 20분가량 쭉 걸으면 문동방파제와 문중방파제가 나온다. 두 방파제는 양팔을 뻗어 바다를 끌어안은 듯하다. 문동방파제와 문중방파제 사이 항구는 중동항이다. 문중항과 문동항으로 분리돼 있던 어항이 하나로 합쳐져 중동항이 됐다.
중동항 부둣가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와이드샷으로 펼치니 문동방파제에 있는 빨간 등대, 문중방파제에 있는 하얀 등대에서부터 저 멀리 붕장어 등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까지 5개의 등대가 한 폭의 사진에 모두 담긴다. 등대 풍년이다.
■붕장어 마을 들렀다 신평소공원에선 잠깐 휴식
칠암항은 중동항과 나란히 붙어 있다. 문중방파제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칠암 붕장어 마을’이라고 써 있는 큰 안내판이 반긴다. 붕장어 횟집과 구잇집이 즐비하다. 일본말인 ‘아나고’로 아직도 많이 불리지만 우리말인 붕장어가 바른 말이다. 기름기를 쭉 빼고 잘게 썬 붕장어회는 고슬고슬한 흰 쌀밥 같기도 하고, 눈꽃 같기도 하다. 깻잎에 붕장어회를 올리고, 콩가루, 초장과 버무린 양배추까지 올려 싸 먹는 맛은 고소하고 담백해 일품이다. 칠암이 잘 알려진 이유도 지역 특산 붕장어회 덕분이다. 걷다 출출해지면 붕장어회로 식도락을 즐겨봄 직하다.
칠암항에는 붕장어 등대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가 있다. 붕장어 등대는 칠암항을 대표하는 붕장어를, 갈매기 등대는 부산의 시조인 갈매기, 야구 등대는 ‘구도 부산’을 상징한다.
칠암항에서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란히 붙어 있는 해파랑길과 갈맷길 이정표가 보인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을 이어 구축한 50개 코스(총 길이 75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길 3코스는 기장 임랑해수욕장에서 대변항까지 이어지는데, 욜로 갈맷길 1코스는 해파랑길 3코스와 겹친다.
해안가를 조금 걸으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신평소공원이 나온다. 신평소공원은 범선 모양 전망대를 비롯해 팔각정, 분수대가 있는 작은 공원이다. 전망대에 오르니 갯바위들이 오밀조밀 모여 빼어난 풍광을 선사한다. 신평소공원은 공원 해안가 갯바위 퇴적층에서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신평소공원 벤치에서 잠시 휴식한 뒤 다시 걷다 만난 어항은 동백항이다. 동백항 부둣가 연석에 그려진 새빨간 동백꽃들이 인상적이다. 동백항 끝자락에 있는 동백해녀복지회관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문을 닫았다. 고령화와 수산 자원 감소 등으로 사라져가는 해녀들이 떠오른다.
■바다 정취 만끽하며 걸으면 어느새 갯마을로
부경대 수산과학연구소를 두르는 길을 따라 걸으면 온정마을로 이어진다. 온정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에는 ‘온정마을 버스킹 공간’이라는 팻말이 붙은 공간이 나온다.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작고 아담한 공원이다. 온정마을은 고리 원전이 건립되면서 이곳으로 집단 이주해 만들어진 마을인데, 지금은 카페촌이 됐다.
온정마을을 지나면 왼쪽으로는 동해가 오른쪽으로는 해송이 이어지는 차로(일광로) 옆을 따라 2km가량 걸어야 한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30분 정도 상념을 떨치고 걸을 수 있다. 덕분에 걷기에 충실해진다. 간간이 나무 덱 길이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제대로 된 보도가 없다. 그래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일광로를 따라 쭉 걷다 삼기물산 건물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이동항이 보인다. 임랑항, 중동항, 칠암항, 동백항…. 벌써 다섯 번째 어항이다. 이동항에서 1코스의 종착점인 일광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에는 해안가 쪽으로 드넓은 공터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10월 열린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BTS 공연 후보지였던 옛 한국유리 공장 부지다. ‘여기가 거기구나’ 힐끔힐끔 쳐다본다.
일광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엔 이천항이 있다. 이천항이 있는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는 1953년 발표된 오영수의 단편소설 ‘갯마을’의 무대가 된 곳이다. 이천항으로 가는 길모퉁이 벽에는 영화 ‘갯마을’ 속 장면들이 액자 형태로 붙어 있다. 길모퉁이를 돌면 횟집이 빼곡히 줄지어 있다. 한 모녀가 얘기를 나누며 생선을 마리는 모습이 정겹다.
강송교를 건너 일광해수욕장에 다다랐다. 일광해수욕장 초입 별님공원에서 돌비석 하나를 발견한다.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다. 문학비에는 소설 속 한 구절을 새겨 놓았다. ‘서(西)로 멀리 기차 소리를 바람결로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소설 ‘갯마을’의 첫머리다. 그 기차 소리가 들리는 곳이 지금의 동해선 일광역이다.
걷기 앱을 이용해 측정한 1코스 완보 시간은 3시간 15분, 걸음 수는 1만 6837걸음, 거리는 11.45km였다. 1코스는 어촌·어항의 고즈넉함과 바다 풍광이 아기자기한 등대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코스다.
2023-01-11 [07:00]